어느 섬나라에서는 나무에서 용감하게 떨어진 아이만 어른 무리에 낀다고 했지, 우리들은 떨어졌던 걸까 떨어지려는 찰나 떨고 있는 걸까 여기저기 농담을 달리하는 붉은 상처들을 보면 몇 번이고 떨어진 것도 같고 시시때때로 어질어질한 것을 보면 아슬아슬 매달린 채 두려운 것도 같고 혀끝의 단맛에 홀려 의지가지마다 결절의 위급인 줄도 모르고 두 팔을 들어 항복하려는 건가 어차피 한 번은 끝내주게 떨어질 텐데 그게 끝이 될 텐데 아직은 곁마다 순정한 천사가 있어 손을 더해 주어 두 손이 네 손이 수만의 손들이 얼기설기 나를 감아 거미인간처럼 허공에 매달린 것도 같고 봄밤이 열리는 매화나무 아래 처음 포옹하는 연인들 온통으로 매달리고 잡아 주는 황홀이라니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붉은 불빛이 꽃불놀이처럼 열리고 두 발은 허공으로 둥둥 떠올라 세상의 소음은 까마득히 먼일이 되고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요. 어떻게 어른이 될까요. 어느 섬나라에서 어른이 되는 방식은 나무에서 용감하게 떨어지는 것이랍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요. 잡고 있을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늘 그런 것도 같습니다.
시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혀끝의 단맛’ 이야기는 짐작하셨던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입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삶의 순간들이 일상 같아요. 어차피 떨어질 테니 그냥 손을 놓아버릴 것인가, 그것도 아니지요.
누구나 나의 사람, 실재하거나 실재했거나 절절하게 혹은 은근하게 품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있습니다. 힘들 때 그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좋던지요. 모르는 사람의 따스한 댓글에 힘이 나기도 하고요. 모르는 사람의 빈소에서 울음이 터지기도 합니다. 모두 다정한 마음 그리움이 벌이는 짓 아닌가요. 얼음공주인 척하는 사람도 실은 온기 쪽으로 기울 거예요.
그런 존재가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혹여 정말 아무도 없다면 내가 나의 사람이 되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해줘야지요.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해주면 됩니다. 내가 위해주고 내가 기도해주고 내가 지켜주면 됩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쉬며 살 수가 있어요.
이 시는 봄밤에 썼는데요.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미지의 마음들이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착각일 수도 있지만 허무에 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시월의 밤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는 게 자꾸 허무해집니다.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안달복달 애걸복걸 학교를 가고 시험을 치르고 학원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출근을 하는 순간순간들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간을 나누고 또 나누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세고 또 세고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따지지도 않고 지고 가려는 일상 만사가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애를 쓰면 뭐하겠어요. 지치고 질리고 힘들어 무너지는 게 차라리 편할 것도 같아요. 끝내 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허무에 져버리는 건 더 허무한 노릇입니다.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하려고요. 이렇게나 힘들 때 입 안으로 떨어지는 꿀 한 방울 맛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온갖 미뢰를 동원해서 그 맛을 백 프로 음미하는 집중의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쓴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