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저녁에 무슨
축하할 일이 있었던가,
접시 위의 살점과
살점을 집는 살점이 다르지 않아서
한 입을 삼키기도 전에
아픈 건지 슬픈 건지
한 마리 물고기의
비늘이 아가미가 지느러미가
붉고 흰 내장 덩어리가 뭉클뭉클
쏟아져 떠내려갈 때까지
흰 접시 위에
없는 죽음은 정갈하고
아름다운 선홍색
살점 한 토막
조심해, 우리는 말하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어간과 어미 사이로
날카로운 가시도 있고 뼈도 있고 이빨도 있고
짐승도 있고 사람도 있고 귀신도 있고
모든 것이 제 방식대로
숨을 쉬고 웃음을 웃고
울음을 울고 삶을 살고
잠을 자고 죽음을 죽고
다시 또다시 돌아오겠지
저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동의하니
숲에는 살이 올라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꽃나무 아래 꽃 무덤은 밤이 깊도록 향긋하고
우리는 가벼워질 때까지 조금 걷는다
고교동창들을 만난 토요일, 우리는 여전히 어린 새들처럼 소란스러웠습니다. 서로의 기억과 추억이 충돌하더군요. 그러니까 속리산에 갔을 때 너도 갔니, 나는 갔니(?) 이상한 질문도 하고요. 우리 엄마가 양갱을 만들어줬다고? 너의 엄마가 유자차를 만들어주셨다니까. 떡볶이는 어떻고, 우리집 아니었니? 파를 넣은 계란말이도 먹게 되었어! 파를? 파를! 웃느라 정신 없었어요. 일부러 알면서 모르는 척도 합니다. 놀리려고요.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지만 조금씩 달라졌다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친구를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땐 제가 정말로 어렸으니까요. 그 마음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제 마음까지도 어쩌면 알것 같습니다. 철이 들 때도 되었으니까요.
문래의 핫플이라고 소개된 곳에서 맥시코 음식을 먹었어요. 짜고 느끼하고 배가 고팠는데 차를 마시며 디저트를 먹으니 포만감이 밀려오데요. 달콤한 디저트 탓이 아니라 사랑 탓이겠지요. 사라졌던 시간과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피부 가득 생기가 차오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시간의 축이 전후좌우로 확대되면서 광대한 우주 속을 활보하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다음엔 고기 구워 먹는 데서 만나자고 누군가 제안하니다. 회도 좋다고 누군가 말하네요. 고기와 회라니 전국민 대표메뉴인데 그걸 함께 먹은 적이 없네요. 그럼 뭘 먹었냐고요? 스파게티, 스파게티, 스파게티 그리고 가끔 중국요리... 왜 그랬냐고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꽃나무 아래 꽃 무덤>은 꽃들이 휘몰아치는 4월 말에 썼습니다. 목련나무를 보았어요. 나무 아래 목련꽃들이 잔뜩 떨어졌는데 삶의 자리가 고스란히 죽음의 자리구나 싶었어요. 삶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죽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요.
정말이지 저마다 최선을 다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