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을 벗기자 얼굴이 나왔다 눈은 뜨고 있었다 입도 열려 있었다 희희낙락 게임을 하다가 멈춘 것처럼 하찮은 승리라도 거둔 것처럼 라이더 라이어, 뭐가 좋을까 이것은 진짜고 저것은 가짜고 진심이지만 농담이라고 신은 지우고 기도는 잊어버리고 나태한 사랑을 되풀이하면서 뭘 하든 괜찮아 미래 따위 궁금하지도 않다고 점퍼를 걸치고 문을 열고 나가며 웃으며 손을 흔들며 소리쳤겠지 야아, 이따 보자 그러나 이따가는 오기도 전에 거의 가고 약간만 남은 너를 어쩌면 좋을까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콜을 부르는 분주한 소음 오늘 갱신할 최고 목표치 달려가서 전해야 할 방방곡곡의 성찬이 차마 식기도 전에 이러는 건 무효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봄밤의 후크에라도 걸린 듯 하이라이트는 끝났다고 같은 구절이 끝없이 반복될 거라고 뜻 없이 되감기는 후렴을 따라 입은 딱 그만큼 벌어져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속도로 어쩐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고통은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을까요. 고통과 고통을 비교할 수도 있을까요. 고통 속에 있을 때 다른 고통은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통은 눈 감게 하고 귀 막게 하고 입을 연다 한들 신음만을 토해내니까요.
10월 29일 토요일 밤, 문래에서 고교 동창들을 만났어요.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고 즐거운데 출발하기도 전에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노는 것도 힘든 나이가 되었을까요. 일찌감치 돌아와 잠들었습니다. 무겁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었습니다. 휴대폰 포털도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습니다. 무서워서 볼 수가 없었어요.
월요일, 화요일 목이 아파서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를 했는데 멀쩡했습니다. 안심했지만 목의 통증이 더해져서 수요일에 이비인후과엘 갔는데 재검사 결과 양성, 돌아와 약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엉엉 울던 밤이 하루 이틀, 오늘이 확진 5일째인데 슬슬 살만 합니다. 모든 음식들이 질기거나 부드러운 종이처럼 느껴지지만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아픈 저를 위해 언니는 밀키트들을 한가득 배달시켜주었습니다. 청국장, 불고기, 부대찌개 등등. 그다음 날에는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장어를 초벌구이 해서 보내주셨어요. 역시나 배달 박스에 담겨 집 앞으로 총알같이 배송되었습니다. 언니는 엄마 같아요. 미안하고 고맙고 그립고 예쁘고 안쓰럽고... 많이 사랑해요.
위의 시 <라이더 라이어>는 배달 청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치킨집 아르바이트생이 죽었던 곳은 집 앞 사거리입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천천히 가져다 달라고 말을 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지요. 무의미하고 무책임하고 빈번한 죽음들은 누구 잘못일까요. 맹렬히 달리는 배달 청년들을 봅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잠시 담배 한 모금, 커피 한 모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는 더욱 달립니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달립니다. 제발 무사히, 안전히 도착하길 바랍니다.
마스크를 하고 베란다로 나가봅니다. 햇살은, 구름은, 새들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네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슬픔의 복판에 있습니다. 고작 코로나 정도로 울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부끄럽습니다. 이것저것 다 너무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