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는 왜 06화

인주(人柱)

by 김박은경

성벽 밑에서 그녀가 발견되었다

유리구슬 목걸이와 팔찌 같은 것들도

건물을 지을 때 주춧돌 아래 묻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주라면 산 제물이라는 건데

그럼에도 유적마다 폐허가 되겠지

폐허마다 유원지가 되겠지

절룩절룩 걸어가는 저 연인들도

언젠가 다정한 일이 되겠지만


서로의 마음에 서로를 묻으며 안녕을 기원하고도

어김없이 무너지는 폐허 속에 살고 있으니

마음은 첩첩산중의 소용돌이,

새로 짓는 집집마다 가라앉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면

그녀가 누워 있다는 뜻인가요


성벽 밑의 성벽 밑까지 파 내려가면

더 많은 그녀들이 누워 있다는 뜻인가요


몸 위의 몸 위의 몸들이

두렵고 외로워 허우적대는 안간힘이

성채를 다리를 둑을 아니 온 세상을

얼기설기 떠받친다는 것일까요


이곳에는 죽은 사람들이 정말 많군요



서울 사당동 근처 쇼핑몰을 지날 때면 외삼촌 생각이 납니다. 그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벽이 붕괴되면서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외삼촌은 키가 작고 피부가 검고 얼굴에는 얽은 자국이 가득했어요. 말주변이 없고 잘 웃고 화가 많은 분이셨습니다. 외숙모는 흰 피부에 가늘고 긴 눈썹에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분이셨어요. 오래 전의 일인데요. 그 근처 일이 있을 때도 그 쇼핑몰만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돌아가고, 절대로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 건물은 지금도 단단하게 우뚝 서서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뱉어냅니다.

이 도시는 그냥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생의 제물들이 가득해요.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22년 1~3분기 사업장 내의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이 5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작년보다 신고 건수는 줄고 사망 인원은 늘었다고요.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깔리고 파편에 맞는 등의 사고가 이어진다고요. 지하철 자동문을 고치다가, 샌드위치 재료를 배합하다가,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열차 연결을 하다가, 거대한 국솥 앞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은 말도 안 되는 인주(人柱)의 악습과 얼마나 다른가요. 의도하지 않았으나 죽음이 즐비하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악하고 무지하다는 것인가요.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셨다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마음들이 그 어떤 인주보다 힘세고 단단하게 당신을 보호해준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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