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는 왜 07화

무(撫)

by 김박은경

없을 무(無)에 손 수(手) 변을 더하면 어루만질 무(撫)가 된다 누르고 쥐고 치고 위로하고 기대고 사랑하고 따르고 덮고 또 무엇이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손이라는 걸까 어루만지면 없는 것도 살아난다는 걸까 떨리는 손이 우주의 전부라는 걸까 어떤 마음이 이런 상형을 지어냈을까 불확실한 끄트머리를 타고 올라가는 줄기의 확신을 본다 구체적인 방향을 향해 떨리는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떨리면 떨게 될까 떨리면 울게 될까 자꾸 더듬으면 달아오르고 너무 더듬거리면 달아날 거야 겨울 산을 감싸 안은 안개는 가능한 모든 팔이 길고 희미해지는데 그 팔을 감고 올라간 당신의 떨리는 음성 떨리는 확신 떨리는 집중, 어느 세계의 음과 악이 오늘의 일몰을 사랑하여 어렴풋한 지상을 덮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말도 없이 쓰다듬으며 스며들겠지, 당신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만큼 충분히 사랑합니까




KakaoTalk_20221109_225002805_09.jpg (2021 겨울, 전시공간 피크닉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회장에서)

형사들은 살해 현장에서 혈흔이 튄 방향을 보고 범인을 상상한다고 하죠. 그것만 보고도 범인이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어떤 방식으로 칼자루를 잡았는지, 죽일 의도였는지 방어할 의도였는지, 악의를 가졌는지 안다고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고요.


사랑을 많이 받고 큰 사람은 표가 난다고들 합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성격도 좋은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 다정하고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이 된다고요.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사랑 또한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루만집니다. 언제요? 사랑할 때요, 소중할 때요, 아낄 때요, 좋아할 때요. 사랑하는 사람을, 동물을, 기억을 우리는 가만가만 조심조심 (강아지나 고양이라면 격렬하게) 어루만집니다. 모두들 그 손길 아래서 아득히 눈을 감곤 하지요. 그 마음이 모두 전해지니까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할 때의 제 손가락은 흰 자판을 어루만져요. 자판도 제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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