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는 왜 09화

우각호

by 김박은경

어떻게 우는 건지 잊어버렸어 이곳은 둥글고 비스듬하고 어둡고 쓰지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던 거니 맛과 향이 사라지도록 벽들이 흐물흐물해지도록 두 발이 퉁퉁 붓도록 흉터를 채우는 상처처럼 상처를 채우는 살점처럼 빈틈없이 가득히 울었어 포도알이 포도나무 이전 포도 씨앗 이전 바람과 햇살과 먼지 이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까지 울었어 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이 텅 비어 구불구불한 강이 구부러진 호수를 낳았어 하늘로 향한 심정 위로 약속처럼 뿔 나팔 소리, 퍼져가는 파문들 위로 가득 고인 울음들이 차가워 두려워 두 번 다시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어떻게 울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김박은경,『중독』, 문예중앙




KakaoTalk_20221109_225002805_06.jpg (2022 여름, 연안부두)

우각호(牛角湖)는 소의 뿔처럼 생긴 호수를 말합니다. 하천의 진화 과정 중 하나이지요. 흐르고 흐르다가 호수가 되고 시간이 더 흐르면 그나마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마르는 사람을 생각했어요. 너무 울면 울 수 없게 된다고 하지요. 신체적으로 그런 것인지 심정적으로 그런 것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크게 울 일을 겪고 나면 어지간한 일은 별것 아닌 것처럼 감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 정도는 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슬픔의 맷집이라고나 할까요. 슬픔의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속으로는 몹시 상해간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슬프지 않으면 좋겠지만, 슬픈 일 같은 건 생기지 않는 게 정말 좋지만 생겨버렸다면 그냥 슬퍼하려고 합니다. 슬프지 않은 척, 눈물이 안 나는 척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받아 안고 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강둑처럼 여윈 얼굴로 남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슬픔은 참을 수도 가둘 수도 없으니까요. 아닌 척 마른 얼굴을 하고 지내다가는 언제 가라앉을지 모릅니다.


울고 나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울기 시작하자마자 아파오는데 다음날까지 질기게 아파요. 다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 부비강에 남아 압력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매정하게 들리네요. 울지 않고 싶지만, 슬프지 않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더라고요. 울고 싶은 만큼 울어야 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것이 가난과 사랑과 기침이라고 했던가요. 거기에 슬픔도 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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