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는 왜 10화

우주 마루

by 김박은경

비틀스가 쏘아 올린

Across the Universe를

듣다 생각하다 잠든 밤,

이 떨림이 북극성까지 닿으려면

431광년이나 걸린다는데

아이 옆에서 쪽잠 든 채 가위눌릴 때

별들이 내달리는 소릴 낼 때

시커먼 별의 죽음 속으로 뛰어들 때

괜찮아요 괜찮아, 놀라 깬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데

이건 오래 전의 엄마가

마루를 건너와 해 주던 말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가닿을 수 없는 경계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 친다 해도

가닿을 수밖에 없는 경계

어떤 마루는 북극성보다 더 먼데

아이는 어쩌면 이리도 푸르고 무성할까

아이의 고른 숨소리와 없는 엄마가 함께하는

괜찮아요 괜찮아,

이 따스한


-김박은경, 『중독』, 문예중앙




E2951D8B-644F-4134-9C7F-A66950AE166C.jpeg (2022 여름, 지리산)


올여름 이 풍경을 바라보던 밤은 제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행복했습니다. 눈으로 별을 보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밤, 불안도 걱정도 없이 모든 것이 완벽했어요. 비록 높은 산을 아슬아슬 올라가는 위험이 있었지만, 날은 덥고 신경은 날카로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평탄치는 않았지만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밤으로 돌아갑니다. 그 밤하늘을 보고 나서는 한낮의 하늘도 그냥 보이지 않습니다. 밝아서 안 보이는 그 너머로 찬란한 별들이 다 보이는 것만 같아요. 거기 그것이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기록해두어야 하고, 사진으로 찍어두어야 합니다. 언제나 증거가 그것을 증명하니까요. 바쁜 척 자주 잊어버리고 자꾸 딴생각을 하고 딴짓을 하다가도 정신이 퍼뜩 듭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사랑해주시던 그 방식으로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제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아이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얼마나 귀한 숨인지, 얼마나 위태로운 숨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길을 가다가 어디선가 엄마, 하면 모든 여인들이 돌아봅니다. 모두 내 아이 같거든요.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정작 7편과 함께 저의 지난 시 중 3편을 골라 보았습니다. 시만 올리기 서운하여 마음글도 조금 추가하였습니다. 책장 속에 잠들어 있던 제 시집을 남의 것인 양 들추어 보았습니다. 등단이 2002년이니 오래 전의 일이네요. 심정적으로는 아직도 습작기 같은데 시간은 제 뺨을 호되게 후려칩니다.


시는 무엇일까요. 브런치를 통해 시를 읽고 계신 당신은 시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시는 친절하고 편안하고 어떤 시는 불친절하고 불편하고 당최 알 수 없는 시들도 많으니까요. 혼자 일기장에 써두어도 좋을 시도, 쓰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은 시도 있으니까요. 제가 쓴 것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수두룩 합니다, 압니다. 뒤늦게 휴지통에 던져버리는데 명명백백 인쇄가 되어 나온 것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들은 잡아올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런 시를 쓰는 순간에는 쓸 수밖에 없어서 그랬습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썼을 겁니다. 그 시를 쓰며 잠시 간신히 살고 조금 지나서 현타가 오고 버리고 후회하는 되풀이가 이어지지요. 그렇다면 왜 시를 쓸까요.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왜 굳이?


시는 불편한 평화를 줍니다. 시는 불안한 안정감을 줍니다. 시는 모호한 행복을 줍니다. 시는 불온한 만족감을 줍니다. 시는 비현실적인 생기를 줍니다. 시는 주관적인 확신을 줍니다. 이런 이득에 대해서는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어요. 효용은 확실치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 줍니다, 확실해요. 쓴다는 행위가 주는 무진한 이득 중 하나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요.


그러니 여러분 뭐든 씁시다. 이미 쓰고 계시겠지만 더욱 씁시다. 시도 좋고 일기도 좋고 편지도 좋고 SNS의 짧은 글도 좋고 뭐든 씁시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의 증거와 증명을 만듭시다. 그것이 두려워서라도 매 순간 조금은 더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너무 힘든 일, 아픈 일, 슬픈 일들 속에 있을 때는 글 같은 걸 쓸 수 없습니다. 어지간히 독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지요. 그럴 땐 단어라도 남겨주세요. 그것이 우리가 소중히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시절의 작은 단추 같은 것이 될 겁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열어보면 차가운 돌멩이처럼 가라앉은 단어 하나하나가 환한 궤적을 그려줄 것만 같습니다.


내내 무사하고 태평한 날들 찾으시기 바랍니다.


2022 늦가을에 김박은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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