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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 Oct 29. 2022

영화 <노스맨> 리뷰 및 분석

영화 노스맨은 기원 후 853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존재했던 암레스의 설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암레스라는 설화 속 전사는 북방민족이 기아닌 동양권에서는 꽤 생소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관통하는 전반적인 주제가 '복수'인 만큼, 한 인간의 유약한 유아시절기부터 점점 세상의 풍파를 경험해가며 복수라는 단 하나의 일생일대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강인한 전사로서 성장해 나가면서 복수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서사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아꼈던 이를 지키지 못한 무력감과 자기 파괴감으로 인해 내면적 세계의 균열 이라는 심연으로 빠지고 있을 때, 의문의 여인을 만나면서 내면 깊숙이 내재돼있는 보호본능을 발휘하여 본인이 천성적 운명이라고 여기는 사명을 죽음이라는 생의 극한을 직면하기를 불사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내는 강인한 모습을 옛적 바이킹 설화에서 보여줬던 정교하고 세밀한 디테일함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암레스 설화는 현재 물적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10세기 제창된 시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알려져있으며, 이 작품과 상당한 이야기적 유사성을 지니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작품을 통해 현대까지 이어지는 모든 복수극들의 근원적 틀을 제공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암레스라는 인물은 그의 삼촌인 펭(이 작품에서 피욜니르라고 이름지어진 인물)이 그의 아버지를 처형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목도하고 본인의 목숨을 부지하여 존속의 가능성을 남겨놓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도망가는 것으로부터 이야 전개를 시작해서 훗날 펭을 포함해서 그와 혈족이 이어지는 이들을 전부 소멸하는 복수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그 또한 각각의 종교에서 이음동의어로서 다뤄지는 유토피아적 사후세계로 돌아가며 자손 보존을 하는 신화성이 다소 짙은 순환적 구조의 결말을 선사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암레스의 설화에 살짝의 변형을 가한 고전원작 <Saxo Grammaticus>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더 위치>, <라이트 하우스>라는 오컬트 장르라는 공포와 주인공들이 맞서야 하는 존재의 근원은 바로 인간이라는 종에게 비가시적으로 접근하는 성장환경에 영향을 받는 내재적인 불완전성과 불확실함으로 인해 형성되는 불신과 파괴감으로 본인이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타인을 해치는 것도 모자라 자아의 파멸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래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영화적 분위기를 유지하여 심리적 공포를 점진적으로 촉발하는 슬로우 번 호러의 계승자로서 아리 에스터와 더불어 미국 영화계에 입지를 다졌습니다. <더 위치>에서도 논리적 사고에 근간한 실증적인 결과와 물증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는 영역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중세시대의 잉글랜드에 마녀사냥이라는 일그러진 군중심리의 폐해적 온상을 상징하는 의식이 유행하던 시기를 다루어 평범한 소녀가 물증적 해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의 일련을 목도하면서 스스로가 악마에게 잠식되어가는 과정을 상당히 느린 호흡이지만 과정적 빌드업에 집중하면서 기존의 논리적 인과관계를 기초로 한 엑소시즘에 초점을 맞추었던 공통의 장르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하는 토속신앙이 활발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종일관 회색 빛깔의 색채를 유지하여 생기가 소멸된 황무지와 같은 일상공간을 형성하여 관객들에게 마치 말라비틀어가는 여윈 나무들이 무성한 음산한 숲속의 심상을 연상케하는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전통 관악기의 부조화적인 연주소리에 맞춰 다채로운 구성을 지닌 음악이라기 보다는 의식(chant)에 가까운 사운드트랙을 가미하여 불온감을 자극하는데 일조합니다. 또한 라이트하우스에서는 개개인이 환경에 의해 타인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고 더 나아가 본인이 알고 있던 사실들까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정신적 착란에 도달하는 과정을 인어라는 판타지적인 요소에 나올 만한 존재의 등장으로 혼란을 가하고 어느 정도의 한계까지 봉착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지에 대해서 느린 호흡과 바람 불듯이 서서히 흘러나오는 뱃고동 소리와 광활한 바닷가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감으로부터 천착하는 공허감의 청각적 심상을 전달하는 사운드트랙으로 또 하나의 신화적 공포라는 전통의 틀에서 살짝 변주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합니다. 여기서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발현되는 불가지적인 공포감과 심리적 착란을 일으켜 극한의 상황까지 도달한 인물들이 정상적이거나 안전한 방향을 택하지 않고 드라마틱한 노선을 택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쫄깃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서스펜스를 중간정도의 강도로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연출방식을 택하고 있는 감독으로서 이번 <노스맨>에서도 신화적 설화에서 비롯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판타지 액션 드라마의 장르의 탈을 쓰고 있는 어딘가 모르게 심리적 불안감과 불쾌한 압도감을 조성하는 장르적 변주를 통해 또 한 번 현대의 뉴에이지 호러 신예로서의 입지를 명확히 합니다. 



이 작품은 일상을 3인칭의 시점에서는 표면적으로 다루지만, 그의 이면적 시선에는 불가지적인 범우주적 존재의 1인칭 시점처럼 다룬 것과 같은 여운이 내재하는 선형적인, 혹은 혼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착란을 위한 비선형적 전개구조와는 달리 전형적인 ㅔ부제형 서사를 통해서 한 개인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 다큐멘터리나 소설처럼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첫 번째로 북 대서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회색빛의 바다와 공허하게 공명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통해 단시간에 영화의 매정하고 약한 자는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냉소함이 도는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기존 그의 영화에서 선보였던 비스타 버전(1.85:1과 같은 상하 블랙바가 ) 구현된 한 시점에서 고정된 와이드 샷의 구도에서 줌인/아웃을 하는 경제적인 연출이 아닌 배우들의 사전에 합의된 동선으로 철저히 계산되어 움직이는 블로킹을 통한 트래킹 샷으로 영상에 역동성과 시선의 다채로움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애니미즘 의식 장면 이후 이어지는 틸트 업, 다운 구도와 Invisible cut이라는 편집기법의 융합을 통해서 시간의 인지적 선형성을 넘어서 시각적인 선형성까지 부여하여 개성을 더할 뿐더러 같은 주문을 반복하는 의식과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 배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주문처럼 복수의 결의를 다지는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배치는 감정을 건드리는 서사 빌드업을 성공적으로 하도록 해줍니다.

두 번째로는 the land of Rus라는 부제로 시작하면서 암레트가 개개인으로서 혼자서도 우뚝 일어설 수 있으며 한에 맺혀있는 늑대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늑대 가죽 털, 늑대 흉내 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Spherical lens를 통해 정중앙에서 타오르는 불을 원형의 렌즈 플레어가 렌즈의 잔상으로 남게 하여 마치 태양처럼 보이도록 비춰준 뒤, 트랙킹 샷 + Pedestrain shot(상하수직의 방향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카메라 무빙 기법) +블로킹 + 패닝 + 틸팅과 같은 기교 없이 단순한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서 완성한 플랑 세캉스(Le plan-séquence)를 선보입니다. 이는 컷편집 없이 특정 시퀀스를 원테이크로 이어나가는 방식을 말하는데, 정확한 차이는 의식 후에 잔존하는 강인한 정신을 그대로 다음 장면에 이식함으로서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를 처연히 따라가면서 감정의 변화를 동시에 잡아낼 수 있는 연출이라는 것입니다. 상황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위주로 포착하고, 그 밖에도 삼등분 법칙과 아이 트레이싱(Eye-tracing)과 같은 카메라 연출 방식을 통해서 철저히 계산된 시퀀스를 일컫습니다. 또한 특정 공간을 주인공이 환상을 목도하여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는 연극무대와 같은 단독적인 배경으로서 활용하며, 현실 속에 존재하는 환상이라는 것을 건축물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집약한 연출을 Shift lens를 통해서 피사체만을 강조하고 이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 블러처리가 되는 효과를 통해 세련된 시각적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를 토대로 피욜니르를 향해 가는 서사까지 담아냅니다. 북대서양과 러시아 땅이라는 구간에서는 establishing shot (익스트림 와이드 샷으로 잡아낸 배경설정 샷)을 1.85:1의 비스타 버전으로 주요하게 활용함으로서 인물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인간중심적인 효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배경을 전반으로 잡은 상태에서 인간이라는 피사체는 그저 일부일 뿐이라는 자연주의적 관점이 내재된 카메라 구도를 설정하여 기원 후 835년에 벌어진 '복수극'이라는 테마에 집요하게 집착하도록 관객을 유도합니다. 

세 번째로는 아이슬란드로, 노예로서 끌려가 피욜니르를 접하고, 그곳에서 의문의 여인인 올가를 만나면서 본인에게 얽혀있는 계보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되는 서사적인 장치가 포함된 구간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접하는 모든 의식을 하는 이들을 진주황색의 조명을 키 라이트로 하고, 곡선이 진 머리 위 쪽 부분의 림 라이트 부분은 '암'이 짙은 배경으로 설정하여 Shift lens를 사용한 환상장면과는 구분되는 실제상황임에도 마치 환상처럼 보이도록 하는 Chiaroscuro라는 조명 연출을 함으로서 신비성을 첨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욜니르의 자식인 군나르가 글래디에이터처럼 노예 선수들이 하는 공놀이에 참가하는 모든 장면들을 플랑 세캉스가 이루어지는 블로킹이 기반이 된 원 테이크 액션신으로 이어나가면서 피욜니르에게 다른 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을 연출합니다. 그 후 피욜니르에게 정체가 발각되어 그의 부하들과 육탄전을 벌이다가 일당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그는 포박되어 고문을 받는 시퀀스에서 오딘이라는 북방민족의 구원자와 같은 존재가 자연광과 같은 백 라이트(Back light)를 통해 와이드 샷인 상태에서 로우 앵글 기반으로 푸쉬 인(카메라를 앞으로 밀고 들어가서 확대 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카메라 움직임)이 된 카우보이 샷(카메라의 프레임이 피사체의 골반 부분까지 잡히는 구도)으로 잡으면서 포박되어 있는 암레스의 모습을 마치 예수와 비슷한 형상으로 보이도록 잡는다. 그리고 난 후 밤 중, 까마귀가 날아가는 장면으로 establishing shot을 와이드 샷으로 비추면서 틸트 업을 하여 페이드 아웃을 시킨 후 틸트 다운으로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화면 전환을 하는 편집기법을 사용하여 시각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네 번째로는 복수의 밤 (The night of blade feeds)에서는 기존에 establishing shot으로만 쓰이던 화산이라는 공간적 배경 장소를 smash cut이라는 화면 전환 연출로 마침내 피욜니르와 암레스의 세기의 대결을 그린 장면을 연출한다. 이 때 암레스가 피욜니르의 안식처로 침입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1인칭의 시점으로 그의 뒤를 트래킹 샷으로 따라간 뒤 문을 열어 안을 살필 때 푸쉬 인으로 세밀한 공간 묘사를 함으로서 암레스가 마치 관객에게 그 안을 보여준다는 제 4의 벽을 깨는 듯한 연출을 선보임으로서 극영화의 연극적 속성을 은연 중에 드러냅니다. 또한 그 이후 암레스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속으로 들어갈 때 자연스럽게 페이드 아웃이 되고 마침내 복수심이 끓어오르다 못해 분출하여 넘쳐 흐르는 심리적 상태를 상대적 규모가 큰 공간적 배경으로까지 전이시킴으로서 극적 효과를 최대치로 하며, 3장에서 드러난 피욜니르-어머니-정자-군나르-복수심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활활 끓어오르는 피의 흐름을 연상케하는 마그마의 흐름의 이미지를 빠른 템포로 나열함으로서 인지적 몽타주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런 이미지의 나열이 곧 복선으로서 작용하여 인지적으로 의문점으로서 남아있던 요소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해소와 동시에 긴장감을 다시 조성합니다. 그리고 로버트 에거스답게 느린 호흡이지만 둔탁하고 육중한 타격감을 자랑하는 1대1 액션신 이후 등장하는 크로스아웃(교차편집)편집 기법을 통해서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정신적인 소명을 다한 대신 육체를 정신의 극락세계인 발할라로의 도달로서 표현하여 뿌리내렸던 암레스의 유년시절과 올가의 유년시절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육체의 소멸이 발할라로서의 도착이라는 그들의 궁극적 목표의 해소를 암시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암레스가 행하는 복수극만이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를 띄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라는 비가시적인 가치를 마치 토속신앙과 같이 비과학적인 것으로부터 오직 직관에 의존하는 맹목적인 믿음을 상징하는 매개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암레트의 아버지인 아우르반딜이 죽었을 때, 암레트를 강인하게 만드는 영이 깃든 드와구르라는 검을 활활 불타는 복수심에 가득 찬 그를 시각적으로 강조시켜주는 진주황색의 키 라이트를 통해 굳건함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줍니다. 그리고 암레트가 바서커라는 전사족들과 함께 이행하는 늑대 흉내를 내는 의식은 보호를 받아야 했던 유약한 어린아이의 시절에서 단독적으로 주체적인 힘을 발휘해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강인함이라는 결의를 상징하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성장서사를 시청각적인 긴장감으로 치환하는 효율적인 연출로 선보이고, 더 나아가 어릴 적 아우르반딜이 죽기 전, 아들과 함께 했던 애니미즘적 의식에서는 개의 흉내를 내면서 본인들은 그들의 적으로 대변되는 짐승과는 다른 강인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차별성을 굳히면서 성장이라는 이미지 이외에 아버지와의 정신적 유대, 연결성을 비언어적으로 전승하고 pass-by 효과를 기반으로 한 편집기법으로 아버지의 심장에 뿌리깊게 계승 돼온 아우르반딜의 직계조상및 자손을 어우르는 나무 줄기를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하고 그 위에는 아들이 다음 계보의 존속을 위한 운명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그러한 유(being)에는 무(death)가 함께 곁을 같이 한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함의합니다. 이런 컴퓨터 그래픽으로 등장하는 나무뿌리의 족보는 영화 내에서 새로운 인물인 올가를 만나고 나서 더욱 견고하게 다뤄지는 도상으로 영화 내에서 부유하게 되는데, 후반부에도 올가의 심장과 암레트의 심장이 갖가지 줄기로 얽혀있음으로서 그들이 같은 피를 공유하는 혈족임을 상징적으로 비춰줌과 동시에 그 뒤에 비춰지는 동공으로 상치되는 원형모향의 포탈은 발할라라는 북방민족에게 있어 유토피아적인 사후세계로서 현세에서의 모든 행위에 근원적인 이유를 제공하는 전지적 매개체로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발할라의 상승적, 원형적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군나르와 피욜니르가 보이는 나체 상태의 제물 의식에서는 암레트와 아우르반딜이 거행한 애니미즘 의식과는 유사성을 띄지만 병치되는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단지 육체적, 물질적 전승만이 아닌 가치있게 여기는 끈기나 인내심, 강인함과 같은 개인을 지켜주는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산물까지 계보로 이어주는 유대를 형성하는 의도와는 달리, 물질적이고, 사후세계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으로 유대감과 비가시적인 가치를 간과한 채 오직 미신에 근거한 기계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분리성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대조연출 역시 인물의 성격과 비극적 운명으로 도달하는데에 코즈믹한 이유를 제공함으로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다음 작품도 큰 기대감을 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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