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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Jul 18. 2022

기꺼이 돌아가기

돌아보기 돌아가기 다시걷기

"선생님, 아무래도 아이 학원을 조금 쉬어야할 것 같아요."

한 달 전쯤부터 고민을 하다가 아이의 수학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간 가끔씩 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아이가 공부 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으니 우리 아이 수준에 맞추어서 가르쳐 주시길 당부 드렸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느정도 성과를 내 주어야 엄마인 내게 면이 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여 그런 부담 갖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아이에 대해 솔직하게 오픈하고 말씀을 드렸다.    

  

5년전 개두술을 한것에 대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아이의 병명을 굳이 말하지 않고 수술 했다정도로만 얘기하는 것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본인 선택에 의해 결정하고 오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자기 입으로 많이 떠벌리고 다닌 듯 했다. “네가 아픈건 잘못한 일도 숨길 일도 전혀 아니야. 다만 네가 더 자라 성인이 된 후에 너를 솔직히 말해도 되는 사람인지 알고 말해도 충분해. 모두에게 다 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아직 성인이 아닌 너에 대해 엄마라는 이유로 결정하기는 싫었거든.”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는 선생님이 지켜 보는 중에 문제 풀이를 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자주 저 쪽으로 가서 혼자 풀어 오겠다고 했단다. 그러면 영락없이 대부분은 오답이었다고 했다.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수 년 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떻게 매일 네 앞에서 너만 지켜 보면서 앉아 있으란 말이야!” “왜 엄마가 볼 땐 되는게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안 되는게 되는건데!” 아이를 다그쳤다. 그땐 그랬다. 그땐 내 생각이 그렇게 밖에는 미치치 못했다.     


"어머니, 이제 6학년이면 다른 아이들도 주 3, 1시간 30분씩은 수업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고민했지만 그럼 일단 해보고 벅차면 원래대로 주 31시간 수업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어달 후 다시 1시간으로 돌아왔고 그마저도 30분이 넘어가면 집중력이 모두 소진되어 이후의 시간은 그냥 낭비 되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말씀드리고 학원을 중단했다. 선생님께서도 내 생각을 인정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아이가 6학년 학습을 분명히 해 낼 수 있고, 실제로 앞에 두고 보면서 문제 풀이를 할때에는 잘 풀어 냈기에 선생님께서 더 욕심을 내셨을테고 안타까워 하셨을 것을 안다. 하지만 매번 아이를 앞에 두고 지켜 보면서 학습을 할 수는 없었기에 앞으로는 지켜보지 않아도 잘 풀어 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것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학습 양과 시간이 아닌 이것에 목표를 두는 방향으로 살짝 틀어서 가기로 했다.     


일주일에 3시간을 아이의 상황에 맞게 쪼개어 매일 30분씩 하기로 상의하고 결정했다. 2학기에는 매일 35, 중학생이 되면 매일 40분으로 조금씩 늘려보자고 함께 계획도 나눴다.      

큰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도 6학년이 되면서 수업 시간이 주 31시간 30분으로 늘어났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주 32시간으로 늘어났다.

2가 되어서는 오답을 하는 날에는 3시간을 수학학원에서 보낸다.     


학원에서 정해놓은 기준을 우리에게는 적용할 수가 없었다.

큰 아이는 수학을 좋아하고 무난하게 잘 따라가고 있으므로 5학년때부터 지금까지 큰 고민없이 학원에 잘 다닌다. 심지어 재미가 있단다. 수학이... ...

방학 특강을 안해도 괜찮다는 나에 반해 큰 아이는 내가 너무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수학을 너무 너무 싫어하고 괴로워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룹안에서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더더욱 벅차기에 형아가 다니는 학원처럼 5~6명이 한 그룹으로 수업을 하는 학원은 맞지 않는다. 처음부터 소규모로 최대한 선생님과 1:1 혹은 2:1 정도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을 찾았다.

둘째 아이는 수학 학원 가는 걸음걸이에 그야말로 괴로움을 실었다.     


사실 나는 아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부정했다. 믿어지지 않아서, 믿고 싶지 않아서 꽤 오래 부정하며 아이를 다그쳤다. 모든 다른 사람이 내 아이를 이해 못할 지언정 나는 그러면 안되었다. 나는 지금의 아이를 인정하고 응원해 주어야 했다. 아이가 잘하고 싶어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알아주어야 할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는 말이 맞았다.      

마음속에서는 변명을 하기에 바빴다. 내 아이의 모든 선생님들께 솔직히 말하기까지 참 많이 불편했다. “아이가 제 학년의 학습을 못 따라간다면 4학년, 5학년 것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학원에서 다른 아이들 다 한다는 선행학습은 제 아이와는 맞지 않아요. 제가 더 많이 관심갖고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내려 놓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고나니 편했다. 부정하고 싶어서 힘들게 돌고 돌아 여기에 왔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같이 같은 학년이 되었다.      


MKYU 김미경 학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내 인생을 살으라고.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 가라고. 예를들어, 아이가 4학년인데 내가 4학년인 것처럼 하지 말고 해주지 말라. 이 부분이 핵심 부분이었다. 말 그대로라면 애는 내팽개치고 내 인생만 살으라는 것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바로 알아 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신 해주며 뒤꽁무니 는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전의 나는 아이와 같은 학년을 살아 내면서 갑갑했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무언가를 계속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그랬을터였다.

생각과 마음과 방식이 틀린지도 모르고 그저 불만으로 가득 채워져 갔다.      


"고통이여, 괴로움이여, 엎친 데 덮치며 오너라.

그 뒤에는 그만큼 즐거움이 있으리니!"

- 셰익스피어 -     


!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서야 평화가 온다는 것인지 셰익스피어마저 원망스러웠다.

힘든 일 없이 즐거움이 바로 오면 안되는거야? 꼭 힘든 고통을 겪어야만 평화가 오는거야? ?” 웃기지도 않았다. 별 웃기지도 않는 말을 지껄였군... 그렇게 생각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이 말을 소중히 품에 안고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먼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후, 아이와 같은 학년을 사는 것은 자못 이전과는 다른 같은 학년의 삶이었다.      

아이와 함께 공부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아이와 함께 숙제를 했다. 정확히는 아이와 함께 같은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서 각자의 공부를 했다.

아이는 아이 학년의 공부를,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그렇게 일주일, 한달, 두달, 1, 2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만 과제를 내주고 다그치지 않았다. 내가 함께하는 내 학습을 하면서는 많은 변화가 따라왔다. 답답하지 않았고 짜증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바꿔 먹었을 뿐인데 그 효과는 대단했다. 아이의 학습 속도와 진도에 몰두 하지 않았다.

같은 학년을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서 갑갑해 미치겠다는 생각을 바꾸었다. 무언가를 계속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이의 것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이 아이 덕분에 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함으로 찾아 왔다. 더 이상 아이와 같은 학년을 사는 삶이 갑갑하거나 감옥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삶을 비탄하며 변명했었다. 심란한 내가, 내 신세가 책이 눈에 들어오겠냐며 내 삶을 비탄하고 변명하고 있었다. ‘아이 때문에억지로 시작되었던 일이 아이 덕분에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20년전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 무언가에 계속 도전을 했다. 내 인생을 사는 것이, 도전이라는 것이 사치라고 여기며 살았던 내게 더 이상 그것은 사치가 아니었다.     

그렇게 내 아이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내 생각과 마음을 바꾸었고 성장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매일 함께 공부한다. 이제는 제법 아이와 나의 시간 균형도 잘 맞출 줄 안다. 함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각자의 공부를 하면서는 아이가 하는 질문에 바로 답을 해줄 수 있고 나에게도 집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 여러조다.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너희와 같이 학생 같은 생활을 하고 살란 말이야.” 하면서 매일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면 지금은 아이와 같은 학년을 살아가면서 내 성장을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고 평온한 삶이 되어가고 있다는걸 스스로 느끼면서는 모든게 만족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닳았다.     


엄마는 우리 준이가 없었다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 우리 준이로 인해 기쁘고 행복하고 재밌고 웃기고 즐겁고 바쁘고 정신없고 화나고 짜증나고 슬프고 힘들고 무너지고 일어서고...”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고 나쁜 것 같지?” 같이 배 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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