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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Aug 15. 2022

정상과 이상(2)

우리 가족은 이상한 사람들일까?

“준 어머니시죠?” “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내게 “어머니 아이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있게 말했다. 본인과 어머니가 모두 전직 교사였고 그래서 알아보니 학폭으로 넘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체육시간 유독 승부욕에 불타는 내 아이가 본인의 아이때문에 졌다며 교실에 온 이후로도 비난을 했다고 한다. 배를 찼다고도 했다. 과정이 있었을테고 싸움과 갈등의 과정중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 아이도 같이 때렸으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내 아이의 행동에 대해 긴 말 없이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내 아이를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고 더 주의깊게 살피겠다고 했다.

본인의 아이는 지금껏 아빠와 오빠에게 엉덩이 한대도 맞아본적이 없는 아이여서 사색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당연히 내 아이의 행동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본인의 딸은 성격이 좋아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다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아이들과 함께 하교 하는 길에 준이 “너네 사귀냐”고 놀려서 자신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얘기했음에도 몇 번을 더 놀렸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준이 다른 음흉한 생각으로 자신의 아이에게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녀와 친한 관계의 다른 그녀가 뒤이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이것 저것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아마 학교에서 준이 수술한 걸 모르는 사람 없을걸요?”


아이가 가끔 얘기했다. 

“우리 엄마가 너 수술했다고 되도록 건드리지 말래”     


건드려서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아파 진다는 의미였을까.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였을까.     


한달이 넘도록 울고 다잡고 울고 다잡고를 반복했던 작년 여름이다.     


아이는 본인의 계획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다. 학교에서 일정기간동안 서로에게 도우미가 되어주는 활동을 했었나보다. 말이 늦고 자신감 없는 아이를 맡아 도우미를 하게 되었단다. 계속 챙겨야 하는 것이 가끔 힘들기도 했다고 했다. 제대로 놀 수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또 다른 놀 기회는 계속 있고 그래도 같이 놀아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나는 이 기회를 틈타 나가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살짝 주었다. “네가 어른이 되면 불편하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일을 하면 너무 잘할 것 같아. 그러려면 우선 공부를 해서 아는 힘이 있어야 해. 그러면 그들에게 더욱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어.” 했더니 “나는 공부는 좀 그런데...”ㅋㅋㅋ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를 남발하는 그들이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길 바랬던 마음에 그 시절에는 원망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아이의 잘못을 알고도 무조건 감싸기만 하고 액션을 취하지 않는 부모들도 제법 많기에 나를 기다려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못내 아쉽기는 했다.


방방 뜬다고 해야하나? 아이의 행동으로 나는 늘 기가 죽어 있었다.

마음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늘 죄인처럼 다녔다.    


큰 아이와는 달리 둘째 아이는 운동을 너무너무 무지 많이 좋아했다.

수술전에는 친구들과 그룹으로 축구수업을 하기도 했고, 수영을 다니기도 했다.

2학년때인가? 축구경기가 열리게 된 때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못하게 하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축구선생님이 딱 잘라 말씀 하실때에도 당연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정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경기에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얼마나 슬펐을까.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자랑도 많이 하고 으스대기도 많이 하지 않는가.

슬픔과 부러움이 가득한 그 얼굴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미술학원에도 다녔지만 당시 젊은 미혼 여선생님은 아이를 이해하는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산만함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진다며 전화가 왔다. 다른 아이들의 집중력까지 흐트러뜨린다면 그만 두어야 했다. 다시 한번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섰다.     

또래 중 몇 명의 친구와 놀았고 한 두 살 어린 동생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동생들에게는 인정 받으며 형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테니까. 

동네에서 다 아는 이웃들이었지만 아이가 한창 한 두 살 어린 동생들과 어울려 놀던 때가 있었다. 이미 형성된 같은 학년인 동생들과 엄마들 무리에 온전히 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를 잠깐씩 살피러 갔다. 가끔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들고 가는 발걸음도 무겁고 눈치가 보였다.     

“동생들과 놀지 말고 같은 학년 친구와 놀아” 짜증섞인 말을 했지만 아이는 동생들과 노는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 나는 눈을 딱 감기로 했다. 서로 다치거나 피해주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아이가 즐겁다면 기꺼이 외로울 수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거의 1년 가까이 동생들과 어울리던 시간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긴장이 풀렸다.     


또래와의 공간에서는 제대로 칭찬 한 번 받을 수 없었고 늘 부족한 아이였을것이다. 학습적인 부분이나 생활 태도 면에서 “나는 항상 못해,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래와만 비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니까.     

틀안에 갇혀진 교육 현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또래들과 비교 당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졸업 후에는 보다 폭 넓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 한다. 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뚜벅뚜벅 걸어 갈 것이다. 아이의 부족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칭찬할 것이다.     


큰 산 작은 산 넘다가 힘들면 쉼도 누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어디만큼 올라가 있겠지. 문득 나무들 틈에 햇빛 세어 들어와 반짝 반짝 비추어 주겠지. 

느린걸음으로 걸어 가야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걸어가야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든 그건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아이를 칭찬할 것이다. 잘못된 점은 가르쳐 주고 열개가 부족해도 한개를 찾아서 칭찬할 것이다.      


우여곡절 초등 시절을 지나고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여 울컥해진다. 이제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놀고 있어 다행이다. 힘든 초등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래도 아이의 마음 한켠에 남아있을 외로움과 서글픔이 있을꺼다. 반드시 엄마가 네 편임을 얘기해주고 싶다. 다른 많은 좋은일들로 함게 채워가려고 고민하는 일을 차분히 해나가는 중이다.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준 사람들, 아이가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응원하고 격려해준 지인들에게 고맙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되어주어서 덕분에 빠르게 마음 다스릴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들 중 하나였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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