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민법상 가족의 범주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와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한다. 가족은 주로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사회의 기본단위를 이룬다.
가족 간의 사랑은 부성애, 모성애, 형제애, 부부애, 효(孝) 등이 있다. 먼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라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말로 ‘내리사랑’이라 하는데, 손아랫사람에 대한 손윗사람의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일컫는다. 모성애와 부성애를 아우르는 단어다. 반대로 손윗사람에 대한 손아랫사람의 사랑은 ‘치사랑’이라고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부모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없고 한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에는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잘못된 방향의 과한 자식 사랑은 자식을 성공시키기보다 잘못된 길로 빠뜨리기에 십상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도 자식에게 속 것까지 내어주는 과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는 것은, 자식에 대하여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이다.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 애가 어떤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켜주었거나 특별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아이기 때문이다. 가장 미숙하게 태어난 아이가 성숙할 때까지 무조건 품는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보호하고 모든 것을 감싼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에 통제되거나 획득될 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있으면 사랑받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성애는 어린아이에게 살려고 하는 소망과 삶에 대한 사랑을 천천히 길러준다. 그 사랑이 없으면 상실감과 궁극적인 절망감이 생긴다. 모성애는 강한 상실에서 오는 사랑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모태 안에서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탄생은 어머니는 자식의 상실이고, 자식은 어머니라는 집을 떠나는 상실 경험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본능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이 시작된다고 한다.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 원칙은 ‘너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너는 네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닮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가족을 이끌고 나갈 힘과 조건이 갖추어져야 상속하고 자리를 물려주는 사랑이다. 부성애의 본질은 아버지가 명령하고 원칙과 법칙을 수립하는 것이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아들의 복종이 필수 조건이다. 아버지는 가장 자신을 닮고 가장 잘 복종하고 자기 재산 상속자로서 자기 후계자가 되는 데 가장 적합한 아들을 가장 좋아한다.
어머니는 자식의 어떠한 잘못된 행동에도 사랑은 변함없으며 행복을 기원하고, 아버지는 자식의 잘못에 관한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여야만 하며 아버지의 마음에 들도록 자식이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형제들의 평등에 기반을 두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형제들의 경쟁에 기반을 둔다.
형제애는 모든 인간에 대한 배타성이 없는 사랑이다. 사랑의 능력이 발달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를 먼저 사랑한다. 형제애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결합, 인간적 유대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사랑이 성숙한다. 형제애는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경험을 습득하는 중요한 기회이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사랑이라면 모성애는 무력한 자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집착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가족 간에도 집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린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과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로 대변되는 어머니의 집착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 분리되어 나온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삶을 시작한다. 어린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어린아이는 사랑은 사고와 행동의 지도 원리인 아버지에게로, 같은 조건의 형제에게로, 나아가 사회로 영역을 확장해간다. 완전히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면 그는 보호하고 명령하는 힘으로서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독립하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의 원리를 획득하여 자기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가 나이고 내 자식이다.
어머니의 집착은 자식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아이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랑 뒤에 숨겨진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더 크다. 부모는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식을 위한 것이라,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비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부모의 원(願)을 자식이 들어주어야 한다는 이기심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으랴. 이런 형태의 집착은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무지의 결과이며, 사실 진정 사랑할 능력이 없는 부모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집착도 상실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늘 내 몸 안에, 내 품 안에, 내 팔 안에 두려는 과거로의 귀환이 자식을 삼켜버리고 파괴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어머니들은 때로는 사랑이라는 구실로, 때로는 의무라는 구실로, 어머니라는 동아줄을 이용해 어린아이와 청년, 어른을 자기 자신 안에 묶어두려고 한다. 일종의 정신병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가장 현명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부모는 아이에게는 재능보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역시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온 적도 없지 않은가? 너무 지식과 재능을 따지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간섭보다는 사랑을, 잔소리보다는 칭찬을 더 많이 하는 따뜻한 부모가 되는 것이 먼저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대상이 가족이다. 너무 가깝게 지내는 사이는 애증의 관계가 되기 쉬운 관계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자신을 열고 상대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 그게 잘 안되는 관계가 가족이다.
가족 간의 사랑도 약자와 강자가 뒤집히는 역설이 심하다. 사랑은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에게 진다.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약자가 된다. 사랑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듯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에 논리라는 잣대를 갖다 대면 영원히 해결책이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은 논리로 맞서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항상 부모가 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더 사랑하는 쪽이 반드시 지게 마련이다. 부부간도 마찬가지다. 각자 다른 주장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로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한쪽이 자신의 ‘참’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할은 남편이든 부인이든 더 사랑하는 쪽이 하게 된다.
일본의 영화감독 겸 작가 비트 다케시는 “가족은 누가 보지 않는다면 내버리고 싶은 존재”란 독설을 남겼다. 한때 가장 사랑하고 목숨까지 던질 수 있는 가족이 실상 가장 징글징글하고 때로는 누구보다 아픈 상처를 주는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도 힘든 존재가 가족이란 말이다. 사랑의 핵심은 설렘이다. 하지만 가족이 되어 버린 이후의 설렘을 설 자리가 없다. ‘가족끼리 왜 이래?’, 부부간에 관계를 ‘근친상간’이란 말로 표현하는 중년들의 가족관계가 진짜 슬픈 거다. 가족끼리 무디고 의무적으로 평생을 사는 게 훌륭하고 행복한 것인지는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가족은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릴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다. 언제든 깃들어 쉴 수 있는 최후의 안식처다. 식구들은 굳건한 믿음과 사랑을 기반으로 강력한 유대와 관계를 공유한다. 친밀한 스킨십과 따스한 대화는 그걸 확인하고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의 일종이다. 부모의 그런 손길과 말길은 자식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가족 사랑을 밑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족은 나의 소중한 것을 주기 가장 쉬운 상대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관계없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가족 사랑으로 인해 생명이 태어났고 세상을 헤쳐가는 힘을 얻으며 그 생명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늘 주는 사랑으로 가정의 평화와 가족의 행복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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