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괴물(최영미)

[하루 한 詩 - 253] 사랑~♡ 그게 뭔데~?

by 오석연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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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때

시인은 이 시를 쓰며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인 En을

고발하며 미투에 동참했다.


과거에 예사롭게 이루어졌던

불편한 진실이 폭로될 때마다

몇몇은 쿨하게 인정하며

부족함을 백배사죄하고

대부분은 세월이라는 뒷문에 숨어

기억에 없는 일로 치부하며

증거 없음을 무기 삼아 맞대응했다.


진흙탕 싸움 같은 치부를 보인 끝은

세월이란 지우개가 깨끗이 지워버리고

언제 누가 호수에 돌을 던졌냐는 듯

파문이 몰아쳤던 호수는 말이 없다.


분명 오늘도 어느 곳에서는

갑과 을의 갑질이

남과 여의 희롱이

은밀하게 판을 칠 터인데

이미 학습된 무기력증 때문인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갑과 을도 한 식구

남과 여도 한 식구

배려와 사랑의 밥은 먹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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