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詩 - 300] 사랑~♡ 그게 뭔데~?
[읽기 전에] 신나는 백수가 되어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브런치와 인연이 되어 『하루 한 詩』라는 제목으로 300번째 배달하고 있습니다. 詩에 대한 식견이 좁아 쉽고 재미있는 것들만 골라 배달했는데, 그것도 망구 혼자만의 착각이겠지요. 오늘은 ‘300’이란 숫자를 기념하는 기분으로 자서전 같은 긴 詩 한 편 올립니다. '황진이' 단편소설이라 생각하시고 읽으시기를~!
세상의 남정네를 품기 위해
스스로 자애할 수 없었으니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구나
나 죽거든 수의도 꽃가마도 쓰지 말고
동문 밖 강가 모래밭에 던져
천하의 사람들이
나에게 돌팔매를 던지게 하시고
늑대와 개미와 파리가
내 몸을 갈기갈기 물어뜯고 나누어
허공중에 한점 흔적도 남지 않게 하시오
달같이 곱다 하리, 양귀비 같다 하리
으스름 달밤에 거문고 타는 소리에
왕산악이 울고 가는구나!
아! 진현학금이여!
폐주 연산이 보낸 채홍준사에
절색에 기예를 보태 천과흥청으로
낙점을 받았구나!
하지만 어이 하리!
폭군에 꺾이는 꽃이 되느니
약을 먹고 맹인 되어 팔도강산 유람할 제
황한량과 배가 맞아 핏덩이를 낳았구나!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며
양반은 높고 천기는 짐승과 같은 세상이니
본처의 꼬임에 핏덩이를 넘겨주고
세상을 등졌구나!
곱다 고와
황진사댁 맏딸이여!
선녀가 하강한 듯 나비가 춤을 추듯
서희가 환생한 듯
백 리를 간다는 백련향이
물씬 물씬 묻어나는
곱디고운 저 자태 깨물어 주고도
으스러지게 안아보고도 싶구나!
비익조를 꿈꾸고 연리지를 상상하며
열다섯 처녀 가슴 부풀어 오르건만
아!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더니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 농으로 놀리던 말이
신씨부인의 절명에
맹인천기 현금의 소생으로 드러나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줄 뉘라서 알았으리
하늘이 무너진들 이보다 무서우랴
땅이 꺼진 단들 이 아픔보다 깊으랴!
이 세상 보기 싫다
까무라치고 곡기를 끊다보니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말았구나!
고집불통 황진사는 가문의 채신이
두려워 눈먼 딸 진이를 진관스님에 딸려
절로 보내는구나!
종은사 종소리에 진이 가슴 열리고
진관스님 설법에 사상이 깊어
감겨진 눈이 떠지는구나!
인권이란 오로지 하늘만이 주는 것이요
반상이니 서얼이니
남존이니 여비니 하는 것이 모다 허무맹랑한
유학이니 사림에 물든 상투쟁이들의 주장이다
생로병사는 무엇이며 이 험하고 덧없는 세상
그저 점하난 찍었다 가는 게 무에 그리 어렵겠나
동안거에 든 스님들 삼부족에 시달리니
선녀 같은 진이 볼까 별채에 깊숙이 숨었구나
홀어머니 봉양하는 떠꺼머리 선비 하나
눈밭에서 만난 진이
백 여시에 홀린 듯 몽롱히 꿈속을 헤매이다
홀어미 여의고 서신 하나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구나!
유기공방 집 아들 수근이
품어서는 아니 될 사랑을 품었구나!
선녀가 하강한 듯
한 마리 나비인 양 너울대는 진이를
한번 보면 설레지 않을 사내 있으랴!
더구나 황진사댁 맏딸에서 천기 출신으로
수직 하강한 천하디 천한 상것이 아닌가?
산 위로 올라가 화전 농가 바라보며
수근이 꿈을 아씨에게 펼치누나!
우리 손잡고 도망가서
저들처럼 정인으로 살자구요
차라리 그리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운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거늘
어찌할꺼나!
청모란 골방에서 퇴기 옥섬으로부터
진현학금 어미 일과
출생 내력을 알아내는 진이
아비와 어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놀음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몸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죄인이고 누가 선인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벌할 수 있단 말인가?
천근만근 같은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고
목이 찢어지는 고통이 엄습하는구나
아! 박연이 그립다.
미련 없이 아무런 미련 없이
큰 소리 지르며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자신을 낮추며 흘러가는
저 박연 폭포가 그립다.
가문의 위상으로 보아
그래도 반가의 소실 자리나 후처로라도
보내려는 집안에 멍울진 꽃망울
너무 아퍼 붉은 피 토하는구나
아! 이건 또 무슨 횡액인가?
절에서 본 떠꺼머리 선비가
상사병이나 온몸의 피가 말라붙어
저승으로 가고 말았구나!
상사로 죽은 자는
은애하는 여자의 속것을 상여에
덮어주어야 상여가 움직인다는구나
이 또한 업보로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길래,
고심하던 진이 맨발로 빗속을 걸어나와
두 번 절하고 속것을 씌워
한 많은 총각 상여를 저승길로 보내는구나!
옥섬에게 달려가
기생수업을 받는구나
노래도 배우고 거문고도 배우고
이니 정해졌던 운명의 굴레
어찌 피할 수 있으리오
노류장화에 헤어화든
눈밭에 향기를 흩날리는 매화든
진흙속에 피어난 연향이든
옥황상제에 죄를 지어 귀향 온 선녀든
천지간에 집도 절도 없는
들꽃으로 피어나려 하는구나!
진흙땅에 떨어진 연의 씨앗이니
그 땅에 향기 나는 꽃을 피우려 하는구나!
기생 수업 이태만인 열여덟에
진이 머리 올리는구나!
이름도 밝은 달 높이 떠
이 어두운 천지를 밝히고자 명월이라 했던가?
몰려든다 몰려든다
조선팔도 호색한들
방구깨나 뀐다하는 한량들!
옥섬이모 매니저에
송도 방송 발 없는 말들 파발마를 띄우니
명월이 개런티가 하늘로 솟는구나!
송도 제일 천하절색 명월이
처녀 딱지 떼는데
생화를 꺾는데 천금이 아까우랴
만금인들 아까우랴!
아! 드디어 낙찰자가 생겼구나!
대리로 문서를 보내어
고대광실 같은 집을 장만하고
홍등을 내걸고 목욕재계 한 후
첫날밤을 기다리는구나!
하늘이 울고 땅이 우는구나!
검은 점 다섯은 오성인가! 오복인가!
남녀결합의 이치도 완벽하게 배우고
분 바르고 연지곤지 찍고
비단 보선에 명월이라 수놓아 기다리건만
하지만, 첫날밤
정인은 새벽닭이 울고
동창이 밝아 노고지리 우짖어도
어이해서 안 오시나!
길이 멀어 안 오시나
부끄러워 못 오시나!
활짝 핀 꽃잎은 꿀물을 머금은 채
다시 봉오리를 오므리고 마는구나!
송도 유수 젊은 서생
대낮에 뜬 명월에 입이 벌어지는구나!
빼어난 자태에 풍부한 식견에
거문고의 선율에 나자빠지는구나!
사랑채에 불러들여
시문답을 주고받으니 더욱 놀라워라
진이는 먹을 갈고 유수는 시를 쓰고
밤이 깊어 귀또리가 조는 줄도 모르는구나
자다깨다를 예닐곱 번
유수는 명월의 발에 雪泥와 鴻爪를
써놓고는 너무 좋아 다시 끌어안고
방 안 가득 백련의 꽃봉오리가 터져
흐르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사흘 낮밤을 그렇게 유수는 꽃을 탐하고
명월은 토끼의 절구공이를 받아들였구나!
이렇게 명월이의 땅은
처음으로 하늘을 맞이하였구나!
명월관에는 비단과 쌀가마가 쌓이고
유수는 말을 한 필 선사하고
만월대니 박연폭포니 절이니 예성강이니
조선의 절경을 가보자 한다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사랑에 풍경에 흠뻑 취하다
유수는 한양으로 부름 받아 떠나고
명월을 소실로 탐을 내나
명월의 길은 그게 아니다 했다
이렇게 첫 정인과 이별을 하고
열아홉 명월은 인생길에 접어든다.
가야금 선생 따라온
서얼 출신 미남 서생
이야기를 나누니 대화가 되는구나!
가진 것 없는 떠돌이 신세건만
진의 눈에 사랑스런 남정네가 되었구나!
정분난 남녀는 떨어질 줄 모르누나!
가야금 선생은 천재적인 기질에
가르칠 바를 잃어 지리산으로 떠나가고
서생은 연꽃을 송두리째
잘근잘근 깨물어 삼키는구나!
하지만 어이하리!
관기의 사슬에 매인 몸뚱아리
수청을 드는 날 눈물로 정인을 떠나보내고
밤새도록 사내에게 꿀물을 퍼주어야 했다
백옥 같은 연꽃잎은
생채기 난 홍련으로 붉어지고
님 떠난 빈 가슴은 갈가리 찢기누나!
소낙비는 사흘 동안 줄줄 내리고
명월은 구름 속에 자취를 감췄구나!
떠났던 님이 못잊어 돌아오매
불붙는 두 몸은 하나인가 둘인가?
애끓는 정 싹둑 잘라 치마폭에 넣어두고
오년을 기약하고 이별주를 나누누나!
선녀가 하강한 듯 경국지색의 미모에
누에가 고치를 짓듯 빼어난 시작에
천상의 음률로 빚어내는 거문고 솜씨에
명월의 줏가는 하늘로 치솟는다
소세양이란 판서가 화담을 찾는다는 핑계로
명월관에 여장을 풀고
온갖 선물을 내놓고 산해진미에 배불리고
명월의 거문고 선율에 취하는구나!
연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너무 아까워 차마 첫날에 덥썩
꽃을 취하지 않는구나!
만월대에서 시흥에 취해 마주보고 웃고
침실에서 다시 시문답을 하다가
댓잎에, 장독에, 기와에, 유기대야에, 명월이 가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둘은 한 몸을 이뤄 어둠을 밝히는구나!
서경덕의 제자들 안내받아
오관산 화곡 화담으로 드는구나!
화담은 절세미인 명월을
그저 소 닭 보듯 담담히 대하매
명월이 존경심에 가슴 부풀어 오르누나!
학문의 말뜻을 배우고
기와 이 수를 배우고
티 없이 맑디맑은 화담의 호수에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풍덩 빠져 버린다
소세양도 떠나고 울적한 마음에
수근이 보내온 놋쇠 신을 번쩍번쩍 닦는다
명월관에 홍의원 찾아와
내자가 될 것을 간청하나
자신의 길을 끝내 고집하는 명월이
조선팔도에 없는 외국의 여자 같다 하니
이 나라와 이 시대가 낯설다 하는구나!
어쩌면 천상에서 귀양 온 선녀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방인이 아닐까?
홍의원 욕정을 불태우며 다섯 번을 사정하고
어르고 달래며 원대로 할 것이니
같이 살자 하건마는, 사서 드시란다
명월은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잡고
노래를 부르다 몸살이나 드러눕는다.
옥섬 이모 관아에 가
진이를 기적에서 빼냈구나!
아! 이제 멍에를 내려놓은 소요
새장에서 풀려난 새로구나!
푸른 창공을 훠어훨 날아보고 싶고
대로를 질주하여 보고 싶구나!
매니저 이모 옥섬은
화류계에서 진이를 건져내고
영원히 깊은 잠속으로 빠져버렸다.
창공을 잡아 노래하고
거문고 줄 타는데, 박연폭포 노랫소리
꿈인 양 들리더니 정인이 연기처럼 나타난다
눈물로 바다를 이루며 재회를 기뻐하나
아! 약조한 님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구나!
미어지는 가슴 쓸어안으며 잘했다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계약 동거를 약조한다
풍덕군수 도와 민정을 살피고
낭군님 내직에 부름 받아
한양으로 들어가
본부인, 시모님 지극정성 봉양하고
계약기간 도래하여 송도로 돌아온다.
송도 거상의 사별한 뒤
매파 보내 본처 자리 간청하나
단칼에 거절하고 화담에 들어
청산리 벽계수를 노래하고 춤을 추어
서화담을 불러내는구나!
노자를 논하고 도덕경을 논하며
화담의 명쾌한 설법에
세상을 내려놓고 스르르 잠이든다
화곡동에 담객이 하나 더 늘었다고 남녀차별 없이
대하라 화담이 말하고 모두들 수긍한다.
황진사 와병으로 찾아가니
노망이 들어 진을 현학금으로 알고
횡설수설하는구나!
영화롭던 생가는 허물어질 듯
퇴락의 길로 달리고 있어
추억이 깃든 옛일들이 아스라이 스쳐간다
황진사는 도솔천을 건너가고
진은 장례를 치르고 명월관으로 돌아온다.
기다리는 정인 이사종은 아니 오고
간혹 비몽사몽 중에
피에 젖은 모습으로 사라지고
화담의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나
이미 정해졌던 일이니 희노하지 마라 한다
인왕동에 기별 넣어
정인이 왜구와 싸우다 전사한 소식 전해 듣고
진은 까무러치는구나!
무당패를 불러 사흘 낮밤으로 살풀이를
치르고 드러누웠다 일어나니
천지 사방에 깔린 봄눈이 온통 핏빛이다.
청량봉 지족사에 청년 스님 하나
훼불책에 반기들고
천일단식으로 등신불을 꿈꾸누나!
아! 알고 보니 이게 누구더냐!
명월이 머리를 허공중에 올려주고
명월관을 장만해준 짝사랑 수근이가 아니더냐?
가산을 진에게 털어 바치고
인삼 장사차 연경에 들었다가
화적떼에 밑천 다 뺏기고 혀조차 잘렸다나
지족사에 들어가
혀 짤린 벙어리 앞에 번쩍이는 놋쇠 신 끌러놓고
그래! 화전 살자! 우리한번 살아보자!
얼르고 달래나 묵묵부답 눈물만 흐르누나!
성불을 했는지, 체념을 했는지
진이 우유빛 젖통으로 수근의 목을 채우고
치마말기를 풀어 생불을 감싸누나!
말 못하는 수근이!
아! 이미 늦었소! 아씨, 아씨, 아씨
나는 이미 극락에 들었소이다
내가 화전살자 했을 때
나비처럼 훨훨 날았으면 좋았으련만!
천일을 채우고 수근은 순교하고
지족사는 화마에 휩싸이고 마는구나!
생불한 수근이의 원망을
깡그리 불살라 버리는구나!
여우 같은 이생과 평생소원이던
금강산 유람에 나서는 우리 진이
어찌 내가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분할 수 있으리오
인생이란 뜬구름 같은 것
어디서 오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
금강산에 속죄하러 들어간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청산유수로 흐르며 부처도 모시고
남사당 패거리도 되었다가
몸 팔아 문둥촌에 간호도 했다가
산골에 산림도 살았다가
자신을 불태워 빛을 주는 촛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젖과 꿀을 나누어 주는구나!
이년이 흘러 명월관에 비루먹은 망아지로
돌아와 가산을 정리하여
지족사에 아미타 절을 짓고
화곡동에 들어 화담과 문답하니
속세를 떠난 신선들의 선문답이 이 같을까
진이 몸은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밟아 버리고 온 길처럼
진의 몸도 여기에 이르렀다.
사내들은 진의 몸을 지나 제 길로 갔고
진이도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돌아왔다
화담은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진은 이별 노래를 눈물로 부르누나!
화담이 도솔천을 건너간 후
삼년이 지나
진은 초파일에 지족암에 돌아왔다
등신불이 머물렀던 자리란
소문이 돌고 돌아
영험한 기운이 돌아 병자가 낫고
원근에서 수많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죽었단 소문이 송도에 파다한데
유령인 듯 우아하게 현신한 진을 보고
사람들은 홀린 듯 수근댄다
법회를 마치고 나비처럼 훨훨 내려가는
진을 따라 이목구비 반듯한 젊은 사내
대금을 등에 지고
사뿐사뿐 진의 발자국을 되밟아 내려간다.
아!
백리를 간다는 백련의 향인들
월궁의 항아인들
옥황상제 시중드는 선녀인들
어찌 내 사랑 진이를 따를 소냐!
진아! 진아! 내 사랑 황진아!
이 몸이 유수요!
이 몸이 이사종이요!
이 몸이 소세양이요!
이 몸이 수근이요!
이 몸이 서화담이니
오늘밤 오작교에서 우리 한번 놀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