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누군가의 존재를 통해 나도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또 하나의 존재인지 확인하거나
(버스 창 밖에서 바라본 빈아.)
거기에 상대적으로 조용히, 가만히 있는 나를 자각하며 상반된 고독을 즐길 때,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빈아의 얼굴 클로즈업.)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인지 확인될 때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살아갈 이유를 얻곤 한다.
(미소 짓는 빈아.)
나는 '집 근처에 산책할만한 곳이 있는가'가 자취방을 구하는 데에 가장 큰 고려사항이었다. 그것이 있음으로 인해 내게 선택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사람 냄새를 맡으러 나갈 수도 있다는 것.
시끌벅적한 곳보다 조용한 곳을, 사람이 많은 곳보다 적은 곳을 더 선호하지만, 사람 냄새가 아주 적당히 나는 곳은 좋아하는 편이다. 동네에 작고 알차게 자리 잡고 있는 시장이나 귀여운 아이들이 꺄르르 거리며 뛰어노는 놀이터, 정거장마다 한두 명씩 타고 내리는 버스의 햇살이 잘 드는 자리.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존재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스스로도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면 결국 나도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일 뿐임을 자각하게 되면서, 오히려 어렵게 살 필요 없이 그저 살아가면 된다는 답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풍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히, 가만히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느끼는 고독감 역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 그 고독을 통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하늘,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감싸고 있음이 느껴지면서, 그걸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이곳에 있는 내가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고, 그래서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즉, 사람 사는 곳을 찾아 나섰으나, 그 '사람'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