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놀이터의 왕따 엄마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에 대하여

한 때는 동네 반장이란 소리까지 듣던 나였다.

타고난 친화적인 성격에 늘 웃는 편이었고, 잘 모르는 사이어도 먼저 인사할 줄 아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코로나 전에는 표정이 참 중요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고, 눈이 마주칠 때 어떤 표정인지 눈코입 모두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집 근처에서는 조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사오기 전 살던 집은 동네 한복판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 앞으로 나가기만 해도 곧바로 아는 사람 서너 명을 동시에 만난 적도 있었다. 아이들 등하원, 학원 픽업 등을 다니다 보면 수시로 만나는 게 동네사람이요, 곧 아는 사람인 셈이었다. 그때의 나는 남을 의식해서인지, 마스크를 안 써서인지, 성격이 밝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잘 웃는 애기엄마였다.

어릴 때는, 특히 청소년기 이후 대학생 시절엔 동네에 별로 아는 이도 없고 인사할 일도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그때의 삭막함 보다는 그때의 그런 삶이  좋았다. 시끌벅적 인사하고 다니고, 얼마나 좋은가.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나는 보통 처음에 친해진 사람들과 오랫동안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큰 아이 어린이집 보낼 무렵 친해진 동네 친구와 언니들과는 모두 이사를 두세 번씩 다닌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고,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친해진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마찬가지다. 주로 많이 교류하는 그룹이 있고, 그 외의 사람들과도 굉장히 잘 지내곤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무척 밝다고, 성격 좋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도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이 더욱 밝아지고 에너지가 생긴다. (이건 진짜다) 동네 반장감이라는 말도 그때부터 들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은데, 남들이 보면 내가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크고 밝게 인사를 하고 다녀서 그랬나 보다.


저학년 땐 하교 후 놀이터에 거의 출근 도장을 찍었다. 친해진 동네 엄마들과 언니 동생 하며 사적으로도 무척 가까워졌고, 그 시간들은 주부인 나의 힐링타임이었다. 애들 키우며 생기는 크고 작은 고민들과 남편과의 소소한 다툼, 시댁 얘기 등등 매일 대화를 해도 소재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영원하진 않았다. 방학과 학기를 기점으로 다들 생활 패턴이 한 번씩 바뀌었고, 어떤 이는 일터로 어떤 이는 집으로, 주된 터전도 조금씩 변해갔다.

첫째의 초등 입학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는 우리에게 마스크를 선사했고,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친해진 소중한 지인들 외에는 예전처럼 많은 교류를 하기가 힘들어져 갔다.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혼자 뻘쭘하게 가서 그네를 밀어주다가도 예전 같으면 옆에 서있는 동지 같은 애기엄마와 눈인사를 하다가 한두 마디 인사도 하곤 했겠지만 점점 그런 빈도가 낮아져 갔다. 마스크를 쓰니 모자만 쓰고 눈만 내리깔면 아는 사람도 못 알아볼 판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찬란했던 애기엄마 시절도 지나가고, 큰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미 프리랜서로 일하며 늘 공사다망하던 내가, 진짜 바쁜 워킹맘이 된 것이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간 걸까. 뒤돌아보니 아이들의 한 학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내 생활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재택근무여서 맘 편히 시작한 일이었지만 대강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열중하다 보니 내 삶의 중심이 어느새 아이들에서 나로 옮겨져 있었다.

매일 만나던 친한 엄마들도 아이들이 커가며 더 이상 놀이터 출근을 하지 않았고, 나도 자연스레 거의 나갈 일이 없었다. 바쁜 엄마 덕에 둘째는 1학년 입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단독 등하교를 무척 일찍 시작했다. 형아는 2학년 때까진 손잡고 데리고 다녔는데 말이다.

엄마들 오전 티타임과 점심 모임에도 당연히 나갈 수 없었고 그곳에서 잡는 오후 놀이터 약속에도 당연히 멀어져 갔다. 아직도 그들과는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지만 나갈 일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 와중 이사까지 했다. 그래도 학교 바로 앞이라 창문만 내다봐도 아이들이 보이던 집이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파트로 옮기다 보니 더욱 나갈 일이 줄어들었다. 나가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1년 전만 해도 너무나 친근했던 동네가 점점 어색해져 갔다.





오랜만에 놀이터에 가면 이젠 참 어색하다.

그동안 아이들도 자라면서 놀이터를 지키는 엄마들도 싹 한번 바뀌었다.

큰 소리로 밝게 웃으며 누구 엄마 누구 엄마 인사하던 나는 이제 없다. 검은색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외투를 여민 채 구석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내가 있을 뿐.

이제 굳이 모르는 엄마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네지도 않는다. 이건 코로나 때문일까, 워킹맘이 된 탓일까, 내가 변해서일까. 내 생활이 빡빡해져 그럴 여유가 없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막내는 1학년인데, 나는 왜 놀이터에 자주 못 가냐며 천진한 얼굴로 이야기할 때마다 '겨울이니까 추워서 못 가지' , '여름이라 더워서 못 가'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그나마 놀이터가 내다 보이던 이전 집에서는 혼자 갔다 오게 허락하기라도 했지만, 이사 온 후로는 그러지 않기에. 아이는 더 놀이터가 고팠을 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이제 놀이터 왕따 엄마인걸. 자연스러운 최고다. 왕따여도 슬프지 않다.

이제 나 말고 또 다른 동네 반장감 엄마가 나타났을 거라 믿는다.

세상은 계속 변하는 거니까 말이다.




이전 13화 이만 감정 끌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