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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강의를 해달라고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몇 달 전의 글을 뒤늦게 발행해 본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고, 처음이 있다. 해당 경력란이 짧다고 해서 속이거나 부풀리지 말자. 강의 담당자에게도 나는 방송은 해왔어도 기업강의는 처음이라 솔직히 말했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40 인생까지 쌓아온 내 노하우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해냈다. 두려웠던 그 시작 즈음 써 내려갔던 서랍 속의 글을 꺼내본다.



(2023.04.27 작가의 서랍 중)


글을 쓰려고 제목 아래 소제목을 써 놓고도 와- 너무 식상하다 생각할 만큼 평범하다. 하지만 난 이제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기에, 자꾸 특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나도 보통의 여자 사람인 나는 학업도, 취업도, 결혼도 정말 심심하게 잘 해냈다. 남들 다 하는 만큼. 때가 되면 학교에 갔고(그렇다, 재수는 했지만 자연스러운 1년이었다) 휴학 없이 돈 낭비 안 하고 물 흐르듯 취업을 했다. 그 흔한 유학 한 번 없이 세상 편한 회사에서 하고픈 일하며 지내다 소소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음.. '결혼에 골인'이라는 이런 식상한 표현도 오늘은 다 용서해 본다. 주제가 '평범' 이니까.


안 그래도 이미 충분히 노말하게(평범 이라는 단어를 너무 써서 영어로 말해본다) 살아왔는데 왜 그리 평범 타령이냐고? 내가 너무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한 나머지 자꾸 넘치는 꿈을 꾸는 것 같아서다. 뭔가 더 해봐야 할 것 같고, 특별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솔직히 자꾸 새로운 걸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 결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고 금방 아이를 낳고 키웠다. 조용히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했어도 되지만 집안일은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좀 커서 기관에 가자마자 동네 센터를 어슬렁댔다. 운동을 시작했고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너무 재밌어서 수묵캘리그라피를 배우러 인사동으로 진출했다. 그 분야에서 유명하고 조예가 깊은 선생님을 찾아가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인사동 수업이 무척 즐거우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편도 40분의 지하철 이용도 엄청 먼 곳에 가는 거라 생각했다. 다녀와서 부랴부랴 아이들 받고 저녁 준비하며 아, 내 취미생활 하는 것도 주부는 쉽지 않구나 생각하며 버거운 행복을 느꼈다. 취미는 점점 가속도를 붙였지만 전시회 참여까지 해보고는 아이의 초등 입학과 코로나가 동시에 터지며 막을 내렸다.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2년, 코로나를 겪는 도중 일거리가 생겼다. 잠시 놓고 있던 나의 본업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기회.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방송 활동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어딜 가면 "우리 엄마는 유튜버야"라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마치 잘 나가는 유튜버인 줄 안다)


이 일도 오랜만에 하니까 다니는 게 힘겨웠다. 왕복 2시간이 넘는 지하철 코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전에 후딱 다녀오지만 그날만큼은 내 아이를 내가 직접 픽업하지 못하고 친정아빠 찬스, 동네 언니들 찬스를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니었는데 그땐 그게 힘들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방송 진행 행보를 넓히기 시작했고, 우연히 한 촬영장에서 지금 나의 보스를 만나게 된다. 만날 때부터 이미 핫해지고 있던 인플루언서 그녀. 그녀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내 삶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가볍게 일을 돕기 시작하다가 프리랜서에서 직원으로, 덜컥 계약을 한 것이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신랑까지 보내면 기지개 한 번 쫙 펴고 어디든 갈 수 있던 자유부인에서 하루아침에 재택근무 노동자로 변신을 했다. 잔뜩 긴장한 신입사원에서 시작해 어느덧 1년. 이제 이 일을 한지도 1년이나 되었다. 그 1년간 프리랜서 방송진행 일도 놓치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방구석에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이후엔 왕복 2시간 거리 회사로 촬영을 간다.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게다가 무슨 욕심에선지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고 난리, 글을 써보겠다고 난리, 그러다 내 유튜브 채널까지 만들었다.


아니 예전엔 작은 일 하나 하면서도 힘들고 버겁더니 자꾸 욕심에 욕심이 생겨 이 일 저 일 벌인다. 사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만들어하는 일이고, 누군가 이런 나의 적극성을 보고 '이 일 해보지 않을래?' 하면 냉큼 달려들어 집어드는 것도 나 자신이다. 정말,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최근 우리 보스 그녀의 책,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에도 내가 나온다. 이은경 작가가 책에 담은 수많은 예시 중 한 명이지만, 어쨌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키지 않아도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나가는 사람.


남들은 다 너무 대단하다, 잘한다, 아무나 못한다 등등. 칭찬과 부러움을 쏟아낸다. 그들의 칭찬이 거짓이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나? 종종 생각한다. 일을 벌이긴 하는데 더불어 버거워하는 나 자신이 참 아이러니해서다.


누군가는 말한다. 발전이 있으려면 고통이 수반된다고. 쉽기만 한 일이 어찌 쉽게 발전을 가져오겠냐고. 맞는 말이다. 다만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때론 이렇게 평범한 삶을 다시 소망하기도 한다.(뭘 했다고 고통이 심하냐 하겠지만 내가 심하다 느끼면 나에겐 그게 심한 거다)



최근에는 내 촬영물을 보고 대기업 스피치 교육 의뢰가 들어왔다. 내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수락했다. 이건 기회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멋진 기회. 한 계단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수락 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아나운싱, 즉 말은 잘 하지만 그걸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심지어 교육 대상이 사회 초년생도 아닌 어느 정도 레벨이 있는 분들인데, 수많은 명강사들의 강의를 들어봤을 텐데 내 강의가 먹힐까? 뭘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지? 강의를 하기 위해 강의하는 법을 배워야 하나?별 생각을 다 했다. 이런 고민이 생기니 그간 내 삶은 또 너무너무 쉬운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은 또 다른 세계를 접해봐야 하는구나, 나보다 훨씬 바쁘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최근 몇 주간의 강의에 대한 고민 덕에 그동안의 내 생활은 정말 쉽고 안정된 거였구나 새삼 느꼈다.


강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수락 의사를 표했지만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조율 중이다. 올 여름엔 이미 해외여행 일정도 잡아 놨고, 무엇보다 가장 우선인 가족과 관련된 일들이 빡빡한 계절이다. 나의 발전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쫄림과 어려움. 이미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이 많은 과정의 몇 배를 이미 다 겪고, 이겨낸 거겠지? 좋은 기회인 걸 알면서도 하고는 싶으나 어렵다고 걱정된다고 난리 치는 나 자신을 보며 그래서 그들과 내가 다른가보다 생각했다. 


시크릿의 확언처럼 좋은 생각만 하고 잘 될 거라고만 되뇌어야 하는데, 오늘 나의 글은 그에 비하면 완전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그럼 어떤가. 자고로 글은 솔직해져야 하고, 난 브런치 등단 이후 꾸준히 솔직한 글을 위해 노력해 가고 있는 걸. 이 부분에선 스스로를 칭찬한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요 몇 주간 부쩍 느끼고 배웠다. 이 와중에도 미리 계획했던 캠핑을 다녀오고, 해루질을 하고, 아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등 바삐 지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 고민이 하나 있으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별거 아닌 듯 매주 강연을 해내는 우리 대표님이 너무 멋져 보였고, 그러면서 또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고 쉽게 촬영을 하는 내가 남들에겐 그렇게 보일까 생각도 해봤다. 나도 한 단계 올라가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별게 아닌 게 되겠지. 하지만 결론은 평범의 소중함이다. 지금 나의 생활을 사랑하자. 지루하다고 징징대지 말고, 충분히 즐기고 누리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고 즐기고 감사할 줄 알고 나서도 늦지 않다.


오늘의 글은 지극히 나의 내면에 기반한 글이라, 다른 사람이 읽을 때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일기장에 써야지 왜 여기에 쓰냐고? 


"그냥, 내 서랍이니까. 내 브런치니까. "


자신 있게 끄적여 본다. 더 나은 나를 위해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참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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