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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강의를 마치고 알게 된 두 가지

어찌어찌 하다보니 강의를 마쳤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한 달, 총 일곱 번.

나의 소중한 첫 강의, 첫 수강생 분들.


이번 강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대중 앞에서 떨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강연'보다 '강의'가 더 어렵다는 것.




첫 번째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선, '카메라 앞에서 그리 잘도 말하면서 대중 앞에서 떨지 않는 게 새롭게 알게 된 거라고?'라고 하실 분들이 좀 있으실 게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 내가 정말 궁금했고, 한 번쯤 꼭 확인해보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어린 시절, 아니 대학생 시절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나는 남들 앞에서 무척 긴장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소그룹에선 밝고, 적극적이었다. 나서서 뭘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분명 하고는 싶은데, 이상하게 앞에 나가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호흡이 가빠오고,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부터...(덜덜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내 호흡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고,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발표자료를 움켜쥔 채 식은땀을 흘리다 들어오기 일쑤였다. 얼굴색? 물론 잘 익은 토마토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니겠다고 선언을 했고. 부모님께 당당히 요청드렸다. 제대로 된 알바도 해본 적 거의 없는(당시, 스무 살 적 어설픈 동사무소 아르바이트 경력 1년 보유) 용돈 받아 쓰는 한심한 대학생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그 학원을 다니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막 아나테이너들이 생겨나던 시기라, 잘못 보면 헛바람 든 걸로 보일 수 있는 때였다. 뭐 아주 아닌 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나는 남들 앞에서 멋지게 말하고 싶었다. 이대로 가면 대면 면접이 필수인 취업전선에서도 무리가 있을 테니 말이다. 

학원을 다닌 건 신의 한 수였다. 말이 아나운서 아카데미지 사실 언론고시를 위한 학원 아닌가. 똑똑한 데다가  예쁘고 멋지기까지 한 친구들과 한 반이 되었다. 조금 쫄렸지만 다 같이 초보였기에 으쌰으쌰 서로 응원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몇 달간의 아카데미 생활 결과 그동안 나의 떨림은 자신감 부족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떨림은 연습 장면을 녹화해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처음 본 나의 화면 속 얼굴은 정말 못생김 그 자체였지만,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한 인상으로 비추는지 점점 알게 되면서 나중엔 화면 속 모습이 맘에 드는 날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얼굴이 커 보일까 봐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빼서 덮게 되면 화면상 얼굴이 더 커 보인다. 귀 뒤로 깔끔히 넘기고 눈도 또렷하게 뜨면서 호감 가는 눈빛과 입꼬리 미소까지 장착하면 제법 봐줄 만한 인상으로 변신하곤 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멘트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대학 졸업 후 리포터 일을 할 때에는 길거리에서 촬영을 해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쳐다봐도 나는 카메라만 바라보며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것. 아주 익숙하게 잘 해냈다. 남들 눈에 나는 그냥 리포터로 보일 테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생각하고 자신 있게 했다.

다만 몇 년 후 회사에서 진행한 컨퍼런스에서 사회를 보며 이런 나의 무떨림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방송 진행이 아닌, 대규모 행사장에서 사회를 보는 일이었다. 갑자기 맡은 일이고 심지어 공동사회라 내가 준비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더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내가 전체 내용을 꿰고 있지 않고 갑자기 투입되다 보니 무대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수에 압도되었던 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오랜만에 홀로 떨었고, 남들이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 기준에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카메라와 소수 스텝들 앞에서는 잘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발표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쌓여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랜 기간 방청객이 있는 촬영, 야외 넓은 곳에서의 촬영, 라이브 방송, 댓글로 소통하며 하는 방송 등 다양한 방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 카메라 없이 설 때에 대해서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상태였고, 그 와중 스피치 강의라는 좋은(?)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결론은 그랬다.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너무나 신나게 강연을 마쳤다. 온전히 내가 준비하고, 내가 홀로 말하며 채워가야 하는 그 1시간 30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번 전체 프로세스의 첫 순서는 해당 기업 센터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스피치 기본 이론이었는데, 후에 소수 대상 여러 회차로 이어진 심화 과정이 실습이 포함된 '강의'였다면 이건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연'인 셈이었다.

이전 실패 경험의 원인이 자신감 부재였다면, 이번엔 내가 내용을 꿰뚫고 있어서일까, 준비를 많이 해서일까. 예상과 달리 너무 즐겁게 진행했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역시,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전 백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알게 된 사실, 나에겐 강연보다 강의가 어렵다는 거다. 강연과 강의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 강연 : 일정한 주제에 대하여 청중 앞에서 강의 형식으로 말함

✔ 강의 : 학문이나 기술의 일정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가르침


강연에도 '강의 형식'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에 어찌 보면 둘은(당연히) 비슷한 부류다. 다만 강연은 여러 청중 또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하는 일회성(대부분)이라는 특성이 있고, 청중과 일대일 소통보다는 일대 다수로 소통하게 된다. 반면 강의는 소수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우에 따라서 명과도 소통하고, 실습 시 일대일로 잡아주는 수업도 가능하다. 학교나 학원에서의 수업이 강의, 대강당에서 연사가 나와서 혼자 말하는 게 강연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번 나의 스피치교육 전체 과정에는 이게 다 들어있었다. 1강은 강연 형식, 이후 세 번은 실습을 동반한 강의 형식. 너무 좋은 구성이었고 흔쾌히 수락 후 준비했다. 결과는? 내 예상과 반대였다.

너무 떨릴까 봐 오히려 준비를 훨씬 많이 한 첫 시간은 외려 전혀 떨지 않고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즐거웠고, 그 시간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감사했다.

그다음 주부터 이어진 강의. 물론 첫 시간보다 훨씬 소수였고 떨리는 것은 이미 남의 일, 긴장은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약간 불만족스러웠다. 내가 교생실습을 해봤거나 교대를 나와서 교수법을 배운 사람이 아니기에 그랬을까, 나는 스스로 시행착오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 수업은 더 열심히 준비했고, 계속해서 강의안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자료를 찾아보고, 주변에도 물었다. 책도 찾고 강의도 들었다.

내가 준비하는 것과 현장에서의 일은 전혀 다른 결이었다. 그래서 탁상공론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컴퓨터와 책을 붙잡고 상상하며 준비하는 것이 현장에서 모두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준비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하려고 했던 걸 다 하지 못하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다만 실전 경험이 쌓일수록 실습은 어떻게 해야 좋고, 시간 배분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등 노하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같은 수업을 세 번씩 이어가야 했기에 총 여섯 번의 강의를 더 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한참 모자라다. 내가 준비한 걸 훅~ 털고 진심으로 다가가 이야기하는 '강연'과 진짜 선생님이 되어 수강생들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강의'. 이 두 가지를 확실히 느끼고, 각각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마무리는 좋았고 따로 또 봐달라는 요청에 감사 인사도 받았으니, 수업 후기는 감히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참 감사한 시간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드문드문 조금이라도 이어지게 될지 어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두려움은 무지로부터 비롯된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토록 떨리던 몇 달간의 스피치교육 준비도 겪어보니 두려움이 사라지듯, 앞으로 내 삶엔 더 많은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또다시 설렘이 막 휘몰아치는 기분이다.

물론 스트레스 상황을 굉장히 싫어하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일을 계속 도모하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 이런 쫄림과 두려움은 꾸준히 생겨날 같다. 운명이라 생각해야지.


자, 올해 상반기는 이렇게 흘러갔고. 하반기는 어떨까? 

이 세상엔 계속해서 새롭게 배우고, 경험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어떤 일이 나를 찾아올지, 아니면 내가 무언갈 찾아갈지 문득 궁금해진다. (욕심이지만)부디 스트레스는 좀 적기를, 그리고 많이 깨닫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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