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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게임 만들고, 엄마는 유튜버야!"

경력단절 주부가 1년 동안 매일 일을 하면

지난 글에서 예고한 대로, 오늘은 사무직 경력단절 주부가 일을 시작해 1년 동안 매일(휴일 제외)같이 재택근무를 지속할 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물론 나는 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프리랜서로서 다른 여러 가지 일도 한다. 그래서 2시 퇴근이라고 해서 그게 업무의 끝은 아니다. 다만 우리 아름다운 보스와 함께하는 이 일. 반쪽짜리지만 진짜 사무직 회사원 다운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1. 빠른 해독, 요약 능력

유명인사인 우리 대표님 섭외 관련, 회사로 매일 새로 들어오는 수십 개의 메일을 빠른 속도로 읽고 파악하여 대표님께 요약 전달한다.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원래 '오타 찾기'가 특기이긴 했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점점 더 늘고 있다. 역시 사람은 꾸준한 훈련으로 안 되는 게 없다.

아이들 아침 먹이고 가방 챙겨주고 옷도 꺼내주고 등등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매일 아침 8시 출근하면 서둘러 굿모닝을 외친다. 곧이어 전날 퇴근 시점부터 쌓인 소복한 메일을 하나하나 확인 후 요약, 첨부파일 등등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한다. 그렇게 십여분 몰입하며 아, 나도 집중 좀 하는 여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타자가 이렇게 빨랐구나 싶을 때도 있고. 대표님이 메일을 직접 확인하기도 하지만 일단 안 봤다는 가정 하에, 요약해 본다. 그러면서 나도 업무를 숙지한다. 일석이조다.


2. 중단됐던 사회생활 스킬 업↑

이 일을 하기 전 프리랜서로만 일할 때는, 보통 단독 방송 진행이나 녹음 등의 일이었기에 일반 회사에서 타 업체 담당자들과 교류할 일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결혼 전 회사를 다닐 때도 내 일만 하면 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능청 지수도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메일로만 주고받는 게 편하고 갑자기 울리는 전화도 부담스러웠었는데 어느새 전화도 뭐.. 아무렇지 않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면 사회생활 완전 초짜 신입인가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20대 시절 내내 회사에 다녔고, 일을 했다. 결혼 후 조금 쉬다가 프리랜서 복귀 후 회사원으로는 1년 전부터 일하는 중인데 나이가 드니 오히려 멀티가 더 잘 된다. 어찌 생각하면 겨우 1년인데 참 많은 일이 있었네 싶다.


3. 양육 스킬 업↑

주부 시절,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주부의 직업은 주부. 하지만 나는 주부의 메인 업무인 '살림'이 너무나도 재미가 없어 하루하루 끼니때만 되면 괴로웠던 기억이다. 오히려 나는 집안 살림보다는 아이들 책육아에 더 신경을 썼다. 많은 책을 읽히고 싶었고, 하루 세 번 뭐 먹을지 고민하고 요리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어주고, 엄마표 공부도 하고. 그런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더뎠고 아이들과의 갈등도 많았다. 주부에게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살림이란 건 없었다. 싫어도 해야 했고 맞지 않아도 해야 했다. 잘 못하고 늘어지고 쌓여가면 남편 눈치도 보였다. 엄마표로 하던 아이들 공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집안일도 잘하고 맛있는 요리도 척척 해내면서 초등 내내 진득하게 아이와 잘 해내는 엄마들이 대단하고 신기했다.

그러다 프리랜서를 거쳐 재택이지만 워킹맘이 되고 나니, 시간이 더 빨리 흘렀고 이전보다 아이들을 대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다만 시간을 쪼개 쓰는 습관이 생기면서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을 더 임팩트 있게 대하는, 효율적인 양육 스킬이 늘어갔다. 시간이 많아 길게 늘어지던 것에서 절대 시간은 짧지만 효율적인 엄마가 된 것이다.


나는 종종, 오히려 바쁠 때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시간이 더 많을 때 늘어져버리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다른 사람도 그럴까? 소설 속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면 여유롭게 집안을 돌보며 할 일 다 하고, 가뿐하게 장을 봐 와서 삼시세끼 맛난 밥을 잘도 해낸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왜 이리 어렵고 더 늘어지는지. 물론 바쁜 일상 중 하루 이틀 쉬고 또 달리고 쉬고 그런 건 좋다. 다만 나의 무대가 오로지 집일 경우엔 말이 달라지는 거다. 더, 더 게을러진다.


아무튼 지금은 나의 1순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진하고 여유로워졌다. 적절한 사교육을 활용하고, 2년 차에 들어서며 어설픈 연장업무를 없애고 퇴근 후 아이들에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은 비록 아이들을 방치하고 일에 휘둘리는 초보 워킹맘이었지만 2년 차부터 급 달라진 걸 스스로도, 아이들도 느낀다.





역시 난 엄마는 엄마다. 아이들 관련 내용이 가장 할 말이 많았다. 뭘 해도 아이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해가며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격려하고 응원해 준 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린 이제 그럴 일이 거의 없는 성인이지 않나. 어릴 때처럼 부모님이 일일이 바라보며 우쭈쭈 해주지 않는다.

이젠 스스로 느끼고, 반성도 하고, 인정도 하고, 격려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택 워킹맘이 1년간 매일 쉬지 않고 같은 일을 이어갈 때 달라지는 것들에 관해 돌아보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무슨 일이든 시작했다면 한번 꾸준히 밀고 가보자. 물론 더 많은 기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나도 어느 분야에 있어서는 더 오랜 기간 쭉 하고 있는 일도 있듯이. 다만 새로이 시작해 쉬지 않고 매일 무언가에 몰입해 보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보니 뭔가 더 뿌듯함이 밀려온다.


퇴근 후에도 프리랜서로서 여기저기 달려가는 날에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방치하는 기분에 속이 상하기도 한다. 그 와중 아이들은 커 가고, 남편과 분담하는 합도 잘 맞아 가고, 내 스킬도 늘어간다. 일 년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 있다. 매일 지켜보지 않은 날이 없는데, 문득 보면 새삼스레 커 있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느낌일까.


힘든 날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엄마가 일해서 좋아? 응 좋아.

남자아이들이라 이런 질문에 눈치 없이 단답형이지만, 어쨌든 엄마아빠가 일 하는 걸 아이들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문득 큰아이가 1학년 때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 아빠는 게임 만들고, 엄마는 유튜버야!"

어찌나 민망하던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가 들으면 엄청 잘 나가는 부부인 줄 알겠네,라고 친한 엄마들이랑 깔깔 웃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저 말투 어떤가? 자랑스러워하는 느낌 아닌가?

안 되겠다. 더 잘 나가는 엄마가 되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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