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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세 끼나 먹는 거지?_두 번째

(2) 철없는 재택맘의 끼니에 대한 고찰

지금 와 생각하면 참 남편이 이해가 간다. 그 당시 나는 일도 그만뒀었고, 남편은 아침 일찍 홀로 출근했다. 내가 충분히 해줄 수 있었지만 나는 할 줄 몰랐고,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다. 마냥 힘들었다. 끼니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재료도 조금씩만 사서 소꿉장난처럼 요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댁에서 매번 어마한 양의 식재료를 공급받았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버거웠다. 왜 이렇게 많이 주시는지 불평하며 내가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서 내가 스스로 배워가고 싶다는 오만한 생각도 했다. 결혼을 하며 회사를 관두고 신혼생활을 즐기면 행복하기만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게 신혼의 삶이라니! 아직 아이도 없는데 하루 종일 신랑만 기다리며 아침밥 저녁밥 차리는 게 나의 직업이 된 거라니, 절망적이었다. 너무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금방 아기가 생겼고, 정신없이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또다시 임신과 출산, 육아. 두 번을 반복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아들 둘 엄마에 마흔을 바라보고 있고, 재택근무하는 초등맘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10년 전의 저 상황은 이제 좀 해결이 되었냐고? 아니, 해결은 덜 되었고 내 성격은 어디 안 갔으며 짬밥이 생겼으니 할 줄 아는 요리는 많아졌다. 다만 아직도 난 끼니 생각을 자꾸 깜빡하고, 몇 번은 적당히 대충 때워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대충맘이다. 집에만 있는 주말이면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치우자마자 점심 뭐 먹지를 외치는 남편과 배고파를 달고 사는 한창 크는 조무래기 둘이 날 바라본다.

10년의 세월 동안 남편은 이런 아내 덕에 요리 실력이 너무 늘어 버렸고, 흰머리도 늘었다. 지금도 시댁에서 가져온 감사한 식재료들을 어찌할 바 모르는 철없는 아내는, 철저한 계획 식단으로 그 많은 재료를 어찌 다 소진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남편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남편이 메인 요리사인 날은, 아내는 슬쩍 빠져 보조 역할과 설거지를 도맡는다.

전날 회사일의 여파로 늦게 일어나 아침을 못 먹고 일을 시작하면 남편은 여지없이 식사 거리를 자리로 가져다준다. 한 번씩 과일이며 커피 등 소소한 요깃거리도 배달한다. 솔직히 그럴 때면, 짜증 나게 너무 고맙다.



근무 중 남편이 갖다준 먹거리. 꼭 사식 넣어주는 것 같다며 한번씩 같이 웃는다.


아직도 난 집에 혼자 있는 날은 점심을 대충 때운다. 일하면서 먹기도 하고, 한 그릇에 대충 퍼서 간단히 먹고 끝낸다. 먹는 것에 그리 큰 에너지를 들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오면 달라진다. 내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준비하고, 먹고, 먹여야 한다. 싫어도 현실이다. 이게 가족이고, 나는 어른이니까. 남편 흉 좀 보려다가 존경으로 끝낸다. 그간 남편한테 들은 잔소리만 나열해도 글 열 편은 족히 넘을 텐데, 그런 건 이제 다 내려놨다. 전업주부로 있을 때보다 오히려 재택맘이 되고 나니 더 철이 들었나 보다. 시간의 힘인지, 일의 힘인지. 어찌보면 직장인이 되고 얻은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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