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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세 끼나 먹는 거지?_첫 번째

(1) 이 부부의 성격 차이

타닥타닥, 시계는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나의 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춘다. 그 와중 오른손은 마우스로도 왔다 갔다. 시선은 두 개의 모니터를 가로지른다. 정신없이 오전 업무를 마무리해 가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점심 뭐 먹을까?”


그럴 생각할 새가 없다. 귀찮다. 그냥 때 되면 아무거나 꺼내 먹고 싶고, 심지어 나는 아직 배도 안 고프다. 아침 먹은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또 점심이라니. 게다가 난 계속 앉아 있어서 소화도 안 된다. 휴. 아니다. 그래도 끼니때 챙겨 먹긴 해야지. 안 그러면 이따가 어설픈 시간에 배고파서 결국 또 먹어야 할 거야. 머릿속이 잠시 일을 떠나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일에 집중이 안된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니 사실 직장 동료라 생각하고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나가서 밥 먹고 오는 것도 참 그럴듯해 보였다. 남편은 밥을 제대로 꼭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12시 땡- 하면 집 앞에 나가 진짜 회사 동료 무리들 틈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누가 보면 우리도 직장 동료인 줄 알겠지?라고 킬킬거리면서.


직장동료 코스프레 중 맛보는 집근처 맛집의 순댓국


하지만 그것도 오래 못 갔다. 부부 사이니까, 현실적으로 매일 밥 사 먹는 돈이 아까운 걸 여과 없이 서로 표현했고, 공감했고, 이해했다. 사실 나는 돈도 아깝지만 짧은 점심시간에 나갔다 오는 게 버거운 날도 있었다. 일이 많은 날은 일의 흐름이 끊겨서 방해받기 싫었다. 물론 좋은 날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같은 상황이어도 이처럼 좋을 때도, 싫을 때도 있는 법인데. 결혼을 하니 이게 참, 쉬운 일인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내 감정을 다 드러내다가는 금방 각자 갈 길 가버리기 쉬운 게 또 부부라는 존재니까 말이다. 적당히 눈치 보고, 맞춰도 주고, 한 번씩 내 고집도 부려보고. 그러면서 살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어릴 땐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른의 기준이라는 걸 스무 살 성인이 되고 나서라고 한다면, 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본인 한 몸 스스로 건사할 줄 알고, 자유를 누리되 권리를 찾기에 앞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갑자기 왜 어른 타령이냐고?


사실 난 스물아홉 갑작스런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우리 자매를 엄청 싸고 키우셨다는 건 아니다. 평범하게 자랐지만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고, 정말 내 한 몸에 대한 것도 온전히 스스로 독립해본 적 없는 몸만 어른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직해 회사도 다녔고 돈도 벌어 더 이상 용돈을 받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집이 곧 나의 집이었고, 계획 없이 살아도 돈이 떨어진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밥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다 같이 먹을 땐 차려주시는 걸 먹으면 되었고, 나도 컸으니 설거지쯤은 잘했다. 과일도 잘 깎았다. 그 정도도 많이 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쩌다 집에 혼자 있게 되더라도 끼니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내가 뭘 먹고 싶으면 찾아 먹거나, 사 먹거나, 엄마가 해둔 밥과 반찬을 꺼내 먹으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봄날, 내 마음을 뒤흔든 일곱 살 연상의 멋진 오빠를 만났고, 한참 어린 날 귀여워해 주고 뭐든 다 해줄 것 같은 듬직함과 책임감 있어 보이는 남자다운 모습에 반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까지 해치웠다.

작정하고 신부수업을 받고 자란 세대도 아니고, 눈치가 빠르지도 않은 터라 관심이 전혀 없던 요리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인간은 하루에 밥을 세 끼나 먹었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나는 아침엔 좀 시원하고 가볍게 먹는 걸 좋아하니 내 스타일로 준비했다. 샐러드와 시리얼. 남편은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결혼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지 않나, 정성껏 준비한 샐러드와 시리얼은 매일 같은 모습으로 식탁 위에 등장했고 나조차도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에서 호기롭게 사둔 샐러드 거리는 냉장고 속에서 시들어가고, 안 되겠다 싶어 대안으로 식빵을 사서 잼을 발라 아침을 내놓을 때쯤 신랑은 드디어 속내를 얘기했다.

“이거 이제 솔직히 좀 질려. 그만 먹을게.”

그렇게 철없는 새댁은 남겨졌고, 새신랑은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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