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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갈 줄 아는 기술, 첫 번째

(1) 혼자 좀 있고 싶다고요

언제였더라. 맘 편히 정말 푹 제대로 쉬었다고 느꼈던 때가.

아마 혼자만의 공간이 사라지고부터인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우리 집에 '내 방'이라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은 가끔씩 불쑥 들어오는 가족들 외에는 오로지 나 혼자 쉴 수 있는 편안한 장소였다.

아담한 체구의 내가 맘껏 뒹굴 수 있는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 때 되면 갈아져 있는 보송한 침구. 누군가 깔끔하게 개어 넣어준 서랍장 속의 옷들... 까지는 아니지만(빨래는 내가 개기도 했고, 부모님이 거실에 개어두시면 내 서랍장에 직접 가져다 넣곤 했다) 참 소박하고 정겨웠던 그 시절의 내 방.

학교 갔다 집에 오면 간식 먹고 들어와 벌렁 누워 책도 보고, 가족들과 거실에서 TV를 보다가도 언제든 들어와 문을 닫고 혼자 쉬던 곳. 친구랑 싸우고 속상할 땐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 수도 있고, 애틋했던 애인과 밤새 속삭일 수도 있던 그런 곳이 바로 나의 방이었다.

내키면 언제든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나는 바로 그런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 픽사베이


결혼 전 잠시 외국에 가서 살고 있는 언니에게 놀러 가 2주일가량 머물렀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형부, 온 마음으로 예뻐했던 첫 조카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하는 형부가 나가고 나면 그때부턴 우리 셋의 시간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인 만큼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나란 사람은 매일 조금이라도 혼자만의 충전이 필요하다는 걸.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내 공간이 있는 우리 집이 아닌, 외지로 나가 며칠 살아본 것이 거의 처음이라 몰랐었나 보다. 뭔가 자꾸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건 그냥, 잠시 홀로 있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 안 그런 사람 있냐고, 사람은 누구나 다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거라고 쉽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속은 내가 모르겠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얘기다. 한창 육아에 정신없던 언니는 그때, 왜 자꾸 혼자 방에 들어가냐며 "민규야, 이모 진짜 이상하지? 그냥 같이 옆에서 쉬면 되잖아."라고 쉽게 얘기했고, 나는 왜인지 잠깐 그렇게 충전하지 않으면 푹 쉬지 못한 기분이 느껴졌다.

훗날 육아 전쟁을 겪으며 떠올려 보니 그때의 언니는 쉬고 싶다고 쉴 수 없는 두 돌배기 아기의 엄마였고, 싱글 이모랍시고 이제 힘드니 좀 혼자 쉬겠다는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자꾸 한 번씩 혼자 충전하고픈 욕구를 아직도 버리진 못했고, 내 방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결혼 이후로는 초등 아이들을 둔 지금까지 아직도 그 욕구를 채우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고 있다.


나는 내향성이 짙은 외향인이다. MBTI 검사를 간략히 해보면 보통 E로 나오긴 하지만 I의 비율도 꽤 높다. 언젠간 그 비율이 E를 넘어서며 I로 나온 때도 있었다. (사람은 살면서 MBTI도 조금씩 변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날 밝고, 친화적이고 에너지 있는 모습으로 보통 알고 있지만 속엔 나도 모르게 쌓아두고 있는 I의 그림자가 반쯤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컷 밝음을 불태우고 집에 들어온 나에게는 한 번씩 비워진 에너지를 채우는 과정이 필요한 셈이다.


© 픽사베이


결혼하고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출근하는 신랑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가서 일만 하는 건 아니고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나름의 쉼이 있긴 하겠지만 혼자 있을 시간이 너무 없어 보이는 게 안쓰러웠다. 나가서는 직장 동료들, 들어와서는 나와 아이들이 항상 북적대니 집에 와서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 먼저 잠든 그 새벽, 남편이 혼자 거실에서 보고 싶은 채널을 돌리는 그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 반대로 내가 그런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반증 아닐까.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된 이후부터 주부로 지내는 동안은 난, 그런 쉼을 충분히 가진 셈이다. 모두 나간 오전 시간, 가만히 있진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성격 덕에  혼자의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하루 중 그저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기에, 괜찮았다. 그때까진 그렇게, 그럭저럭 버틸만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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