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주셔서 넘 감사해요! 안 바쁘시면 담주에 커피 마실까요? 동네 주민끼리 다정하게.”
답장이 왔다. 가까이 있지만 멀기만 했던 그녀. 인기 유튜버이자 작가인 그녀를 알게 된 건 지난해 5월. 봄기운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인터뷰어, 그녀는 인터뷰이로 마주했다, 파주의 한 출판사 사옥. 투명 전면 창에 푸르른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고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멋스러운 곳이었다.
솔직히 인터뷰할 사람이 누구인지,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됐었다. 유튜브도 하고 강의도 하고 책도 쓰는 분. 아이들 교육에 관심 많던 내가 배울 점이 많고, 유튜브 채널들에서 프리랜서 진행자로 일하는 나와 뭔가 공통점도 느껴졌다. 만나보니 성격도 시원시원하신 분. 게다가 나처럼 아들 둘 엄마에 같은 지역 주민이라니. 이 넓은 서울에서도 딱 우리 동네라니. 이건 인연이다 싶었다. 인터뷰 촬영 틈틈이 신나게 동네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인기 작가이자 유튜버로 유명세가 있는 분이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번호를 땄고, 집으로 오며 메시지를 남겨 눈도장도 찍었다.
그 후 네 달쯤 뒤,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는 핑계로 쿨한 척 안부 카톡을 보냈고, 다행히도 저런 답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심한 일상에, 마치 단비 같았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했던가. 우리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각자 아이들 학급의 코로나 확진자로 인한 자가격리. 그때만 해도 코로나 정책이 수시로 변하고, 모두가 불안에 떨던 때였지 않은가. 이날로 잡으면 이쪽 아이 때문에, 저 날로 잡으면 저쪽 아이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만나러 나가기 30분 전 학교에서 확진자 알람이 울리는 식이었다. 결국 우리가 만난 건 저 카톡이 오가고 정확히 한 달 뒤였다. 귀한 만남인 만큼 어려웠던 거라 생각하며 웃었다. 오히려 의미 부여가 되었다. 진짜 그런 것 같았다.
그 후 우리는 소소한 연락과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하는 일이 다 잘되어 저변을 넓히던 그녀는 감사하게도 나를 떠올려주었고, 내 경력과 재능, 의욕 모두를 실제보다 귀하게 생각해주었다. 살림하고는 전혀 친하지 않은 나를. 예쁘지만 늘 혼을 쏙 빼놓는 아들 둘 육아의 틈 속에서도 항상 꿈을 펼칠 기회를 엿보는 이 아줌마를 알아봐 준 것이다. 너무 오랜만에 나의 가능성과 숨겨진 능력,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신 없는 집안일과 요리에 밀려 자존감이 바닥이던 와중,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곧 그녀 사업체의 프리랜서 직원이 되었고, 세 달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생활은 크게 변했고, 모든 초점이 회사 일에 맞춰져 갔다. 대표님은 정말이지 탁월했다. 소위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무시무시한 호칭을 달고 있는 나에게서 십수 년 전 다니던 회사 생활의 기억과 능력을 스멀스멀 끄집어냈다. 물론 ’프리랜서 방송 진행자‘라는 나름 오래된 나의 직업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 중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일은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처음부터 모두 다. 다시 배웠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던 난,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은 없었다. 아이를 맡기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내 방식이고, 계획이었다. 그러니 이 일 역시 아이들 케어를 직접 할 수 있는 걸 전제로 시작했고, 보스 역시 나처럼 육아를 우선시하는 터라 함께 하게 될 수 있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나의 업무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보스와의 소통은 필수인데, 이것 역시 카톡을 활용해 모든 업무를 할 수 있으니. 정말 편해진 세상이다.
사무실이 필요 없다. 결국은 각자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을 하는 건데 굳이 불필요한 절차를 만들지 말자는 주의. 업무 시간도 때론 탄력적으로, 내 할 일만 잘 마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재택근무하는 워킹맘은, 어떤 면에선 참 꿀보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