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는 학교 번호만 떠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이번엔 무슨 일일까. 오늘은 수업하는 날이 아닌데.
‘점프업 수업’. 우리 때는 ‘나머지 공부’라고 하던 걸 요즘은 예쁜 이름과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준다. 강제도 아니다. 담임 선생님은 최대한 학부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예쁘게 잘 포장해가며 권유하셨다. 내 아이가 좀 느린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연우 엄마라는 여자는 뭘 그렇게 어려워하시냐고, 그저 감사하다며 거의 1대 1에 가까운 이 수업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런 꿀 같은 일이 있나. 단독 과외나 다름없지 않은가. 친구 한 명이 더 있긴 하지만 한글이 약한 연우 위주로 수업하신다고 했다. 평소 수업 때 시간이 없어 못 하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자음 모음 자석 교구도 활용하며 흥미롭게 해주신다. 아이도 그 수업을 꽤나 좋아했다.
그런데 대체 오늘은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걸까. 불안함을 감추려 되려 한 톤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연우, 난독 검사를 좀 해보는 게 어떨까요..?”
쿵. 아 이게 뭐지, 말로만 듣던 난독증. 그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뒤져가며 예비 검사도 혼자 해봤더니 연우는 아닌 것 같았는데, 왜?
“저도 저희 반 아이에게 시켜본 적은 없고, 제가 볼 때 아닐 것 같긴 하지만요, 학교에 담당 선생님이 계셔서 좀 여쭤봤어요. 교육청에서 무료로 검사도 해준다고 하네요.”
우울해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내 아이는 그래도 자음 모음 인지하고 받침도 넣을 줄 알아. 좀 천천히 하긴 하지만. 그럼 어떡하지? 아닐 수 있지만 해보지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맞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하는 게 효과가 빠르다고 하잖아? 게다가 무료라는데.
무료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는데 아니었다. 자꾸 그게 고맙고, 또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제도가 이리 가까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신청했을 수도 있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날 뭐하러 속여. 일단 검사비가 비싸면 우리 아이는 이 정도는 아니라고 최면부터 걸게 되는 게 현실인걸. 어쨌든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하고 입을 뗐다.
“네 선생님,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게 있는지 몰랐네요, 신청하겠습니다.”
고작 2년 차이 꼬물이 둘을 키우면서도, 둘째는 절로 크는 줄 알았다. 2년 먼저 한 육아 경험을 대입하며 형아가 이랬으니 동생도 이럴거야를 반복했다. 큰애 신경 쓰기에 벅차 눈치 있는 둘째는 알아서 잘할거야 최면도 걸었다. 그런데 둘째는 원래 눈치가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키우니 그렇게 된 거였다. 신경을 덜 쓰니 살아남기 위해 사회성이 길러졌고, 형아가 칭찬 받는 모습, 야단맞는 모습을 보며 눈치가 발달했다. 그것도 모르고 되려 첫째에겐 동생을 좀 봐라, 적당히 눈치껏 잘 하지 않니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해댔다. 내가 그렇게들 만들어 놓고.
이렇게 말하다 보니 잘못만 한 것 같지만, 잘했다고 자부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각각 넘치는 사랑을 줬다는 것, 또 하나는 막내가 여덟 살인 지금에라도 이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절로 크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대여섯 살부터 문자와 숫자에 대한 궁금증이 많던 큰아이는 언제인지 모르게 혼자 한글을 익혔다. 욕심이 난 나는 연령대별 꼭 읽혀야 한다는 각종 전집을 들여 매일같이 책을 읽어줬고, 아이 나이대의 육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나는 이 아이가 1학년, 2학년, 3학년이 되는 것에 발맞춰 함께 커가는 엄마였다. 그럼 둘째는? 야무진 막내는 알아서 잘 크고 있었다. 형보다 손도 빠르고, 소근육 발달도 빨라서 그림도 더 잘 그리고 레고도 척척, 유치원 생활도 걱정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놔뒀다. 넘치는 사랑을 주면서.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까. 형과는 정반대의 뇌를 가진 우리 막내. 글자도 곧장 잘 따라 써서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형보다 글씨를 더 예쁘게 따라 썼다. 풍부한 어휘력으로 말도 잘하고, 그림도 선이 또렷하게 색감도 예쁘고 꼼꼼하게 잘 그렸다. 그래서 몰랐다. ‘역시 둘째라 그런가 다르긴 다르네요, 알아서 잘 크고 있어요.’ 라고 하고 다녔다.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을 했고, 사단이 났다.
유치원 졸업 때까지도 한글을 못 떼었다는 건 사실 알고 있었다. 모르면 엄마가 아니지. 그래도 그때까진 여유로웠고, 형처럼 금방 알아서 터득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3월, 초등학교 입학을 했고 막둥이의 귀여운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큰아이가 커가니 나는 학부모 역할에 자신감이 붙었고, 많은 둘째 셋째 맘들이 그렇듯 나도 굉장히 여유 있는 1학년 엄마 컨셉을 유지했다. 본격적으로 일도 늘렸다. 계속 내 일을 조금씩 하긴 했었지만 이제 뭔가 나도 한 발 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큰아이 1, 2학년 때 영어학원 대신 엄마표로 해줬으니 됐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게 학기 시작과 함께 두 아이를 나란히 동네 대형 어학원에 등록해줬다. 큰아이는 레벨테스트를 보고 들어갔고, 둘째는 시작반이니 그냥. 엄마표는 이제 힘드니 둘째 넌 학원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의미였다.
그러던 중 학교 상담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전화 상담. 막내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워낙 글씨를 예쁘게 잘 따라 써서, 초반엔 한글을 잘 아는 줄 아셨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1학기이고, 다 같이 한글을 배우고 있는 단계이니 아직은 괜찮다고. 집에서 조금만 신경 쓰시면 될 거라고 하셨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웃음이 번진다. 잘 키워온 눈치로 아는 척 적당히 학교생활을 해나갔을 우리 꼬마 생각에.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도 걱정보다는 귀엽고 기특했다고 하면 다들 저 엄마 뭐야 할텐데, 나는 그랬다. 둘째에겐 일단 관대함을 깔고 가는 게 부모인가 보다. 게다가 사실 난 그때 막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점점 더 바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달이 지나고 여름방학 직전, 동네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 밝게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날 붙잡았다. 아이가 한글을 아직 익히지 못해 수업시간에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잘 모르는데 자존심은 있으니 자꾸 도움은 거절하고, 점점 수업시간에 참여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만약 이렇게 고학년까지 뒤처지는 상태가 계속되면 소위 ‘문제아’가 될 확률이 높으니 신경 좀 써달라신다. 이 부분에서 머리가 띵 했다. 문제아? 문제아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선생님?
그 여름의 길바닥에서, 큰 돌이 하나 가슴에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머릿속은 팽팽 돌아갔다. 우리 애가 이 정도라고?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를 돌아보니 이해가 됐다. 교실 안에서 문제아라 불리던 아이들은(슬프지만 그 시절엔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했으니까) 거꾸로 보면 수업시간에 참여도가 낮고, 학업도 뒤처졌던 기억이 났다.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던 길 위의 깜짝 상담은 어찌저찌 해서 훈훈한 척 마무리됐고 쓸데없던 영어학원부터 중단했다. 한글이 되어야 영어를 하지. 내가 뭘 한 건가. 대신 한글 학습지를 시작했고 수준에 맞는 짧은 책을 열심히 읽어주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한데 내가 더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여름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2학기가 시작되고도 아직인 아이에게 선생님은 바로 그 ‘점프업 수업’을 권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권유받은 난독증 검사. 아이는 모두 놀이처럼 생각하며 그 시간들을 즐겼고. 엄마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재미있다고 하니 되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둘째맘이자 산전수전 겪고 사는 아들맘, 웬만한 건 눈 질끈 감고 모른 척 넘어가게 되는 워킹맘으로서의 마음이 동시에 떠올랐다.
총 10주, 열 번의 수업 중 두어번 밖에 남지 않은 지금, 엄마의 마음은 기쁨 반 복잡함 반이다. 이런걸 웃프다고 하는건가. 난독증 검사를 왜 했나 싶게 이제 아이는 서툴지만 더듬거리며 책을 읽는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이른 편지도 썼다.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 친구들보다 느리면 어떻고. 자신감 있게 쓴 모습 자체가 너무 예쁘고 기특했다. 아이의 속도가 있는데 내가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도 첫째처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키웠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도 됐다. 얘도 이렇게 신경 써주니 금방 좋아지는데, 큰아이가 그랬으니 이 아이도 그럴거라 생각한 내가 오만했다.
막내는 수준에 맞는 책보다는 형아에게 읽어주는 책을 어깨너머로 보여줘도 되는 줄 알았다. 이제 다 키운 줄 알고, 입학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워킹맘을 선언한 엄마. 재택근무라고 만만하게 봤다. 퇴근 후 놀이터에서도 업무전화 받느라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고, 들고 온 책 간신히 읽어주다가도 대표님 전화에 컴퓨터 켜고 잔업을 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내가 뭘 위해 일을 시작했지, 내가 이기적이란 생각도 문득 든다.
웬만해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나인데. 이렇게 미안한 감정이 드는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보통 엄마인가 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치면서도 난 니들을 사랑하니까. 너희에게 한치의 부끄러움은 커녕 미안할 일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미안하지만 모든 게 엄마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어. 걱정과 불안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엄마 기준에서 엄마가 못 해준 부분, 아쉬운 부분을 떠올리게 되는 건 맞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으려고. 하필 연우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엄마가 일을 시작하느라 널 많이 못 봐줘서 그렇다고도 생각하지만, 사실 일을 하면서 높아진 자존감이 너희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게 도와주기도 하거든.
난독 검사가 뭔지도 모르고 오늘도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귀여운 너. 결과는 아직이지만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아는 무슨, 이렇게 똘똘하고 기특하게, 너의 속도로 잘 달리고 있잖아. 너의 1학년은 이제 시작인걸. 우리에겐 우리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방식이 있는 거야. 너는 너의 시간을,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살자. 천천히 가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