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옆방으로 출근합니다.

지이잉-

아침 일곱 시, 익숙한 진동 소리에 반짝 눈이 떠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5분 후 다시 울림’ 글자를 더듬어 터치한다. 격하게, 더 자고 싶다.

기계는 연민이 없다. 야속하게도 정확히 5분 뒤 무심한 듯 또 나를 깨운다. 감정이 없는 자에게는 기대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기계처럼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겨울이 되어가니 아직도 어둡다. 의도적으로 더 잠을 깨려고 거실 불, 부엌 불 모두 환히 밝힌다. 그리고 곧장 욕실로 가서 머리를 질끈 묶고 물을 쏴아, 세수를 하고 나니 아직 따끔따끔 반 밖에 떠지지 않은 두 눈이 이제야 맑아진다.

아직 깨지 않은 가족들. 내 사랑 두 꼬맹이들.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곧 4학년이 되는 큰아이는 키며 몸무게며 나를 따라잡아 가고, 아직 1학년 막둥이는 음, 마냥 아기 같다. 얘는 어른이 되어도 그럴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큰애야, 미안하다. 너는 너대로 예뻐. 언제나 마음 쓰이고,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내 마음이 같이 아픈 그런 예쁨.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감미로운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현실은 반대다. 자는 아이들에게 뽀뽀와 부비기를 끝낸 후엔 거침없다. 일어나!



거실 TV 아래엔 전날 밤에 꺼내둔 두 녀석의 옷가지가 단정히 놓여있다. 바지, 티셔츠, 그리고 양말. 나의 아침은 바쁘니까. 요즘 내 생활의 루틴에 맞춘 또 하나의 루틴이다. 흡족하게 옷을 한 번 바라보고 어제 씻어둔 물통 두 개를 꺼낸다. 보리차나 돼지감자차는 잘 상하니까. 나름 치밀하게 생수를 담아준다. 물을 많이 마시는 큰 아이 물통엔 물을 더 꽉 채워준다.

그리고 가방. 이건 아직 루틴에 완벽히 들어오지 못했다. 사실 너무 귀찮다. 되는대로 하고 싶은 게 바로 나란 엄마다. 어떤 날은 전날 밤에 챙겨두고, 어떤 날은 아침에 챙겨준다. 자기주도를 위해서 아이가 스스로 하게 하라는데 정말, 오래도록 그리 놔둬 봤지만 돌아오는 건 선생님의 알림장 한 줄 메모. ‘지우개가 며칠째 없습니다, 챙겨주세요 어머니.’

어쨌든 그렇게 가방까지 챙겨와 물통을 고이 넣어주고, 문 앞에 나란히 세워둔다. 이제 아침만 먹여서 보내면 된다.


해가 짧아지니 자꾸만 그놈의 ‘5분 후 다시 울림’ 기능을 찾게 되고, 나의 아침은 점점 어수선해진다. 아침에 그다지 배가 안 고프고, 고파도 간단히 떼우는걸 좋아하는 난 아이들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 어린 시절 억지로 아침 먹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들어가는 만큼만 먹인다. 오늘 하루 머리가 돌아가야 하니 먹이긴 해야 한다. 적당히.

그런 반면 신랑은 밥을 먹어야 한다. 결혼 전에는 아니라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었다. 그 때는 내 얼굴만 쳐다봐도 배불렀나 보다. 이제는 먹어야 힘이 나고, 든든한 사람이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보여준다. 어떤 날은 그냥 미안해지는 걸 택한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8시 5분 전, 신랑을 깨운다. 아이들은 이미 일어나 TV 시청 중이고, 혼자 바스락대던 난 이제 바톤 터치할 준비를 한다.

올해 들어 재택 근무가 많아진 신랑. 특히 오전 시간은 더 널널하게 일하는 사업가이다 보니 가능한 구조다. 이제부턴 그의 시간이다.

“오빠 밥 먹어, 난 들어간다?”


나는 대충 담은 시리얼과 커피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시커먼 모니터 두 대가 날 보며 웃고 있다. 전원을 켜고 카톡부터 연다. “굿모닝, 오늘은 날이 왜 이렇게 흐릴까요. 어제 강연은 잘 다녀오셨죠?” 이른바 출근 도장 찍기.

그렇다. 나는 하루에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5시간씩 일하는 ‘반일 워킹맘’이다. 원래 9 to 3 이었지만 여름방학 때부터 8 to 2로 바꿨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대로. 아니 뭐, 사실 우리 대표님이 자율출퇴근을 권하기도 했다. 난 그걸 알고 시작한 건데도 이상하게 8시에 딱 출근하지 못하면 잘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8시에 꼬박 굿모닝을 외치던 내가 8시 10분에 카톡창을 열었을 때, 나는 15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지각했던 느낌을 떠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코끼리 족쇄처럼, 구속받던 회사원의 습관은 이리 오래 지나도 남아있었다. 그때 무척 크게 웃던 우리 대표님이 생각난다.

“자율출퇴근 신식기업인 모릅니까, 나 좀 웃어도 되지? ㅋㅋㅋㅋ 스스로 8시 출근하더니 10분 늦었다고 자책. ㅋㅋㅋㅋㅋ ”


입사 선물로 받은 노트북은 저 옆에 예쁘게 놓여있다. 물론 잘 쓰고 있지만, 메인은 우리 집 데스크탑이다. 이것 역시 오래 전 회사 생활의 흔적인 듯한데, 답답한 걸 못 참는 난 일을 편히 하려면 큰 화면이 필요하다. 한 대로는 부족하다. 두 대는 있어야 마우스로 왔다 갔다, 인터넷 창도 여러 개 띄워놓고 알트+탭을 눌러댄다.

전날 온 메일을 뒤적여 정리하고, 보고한다. 논의하고, 회신한다. 물론 논의는 우리 대표님이 자기 자신과 논의하실 때가 많지만, 나도 점점 회사 일에 익숙해져 가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내 생각이다.

차림새는 자고 일어난 복장 그대로지만, 세수도 했고, 양치도 했다. 출퇴근 시간 10초, 교통비 0원. 번듯한 사무용 책상에, 내가 직접 정한 전망 좋은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일하는, 그야말로 꿀보직이다. 물론 사무실이 아닌 내 소유의 기자재를 사용하고, 그로 인한 전기세와 자릿세가 좀 발생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큰 모니터를 통해 나의 눈 보호, 거북목 보호를 위함이기도 하니 괜찮다. 자릿세는 농담이다. 옆방일 뿐인걸. 10년 전 혼수로 가져온 내 사랑 네스프레소 커피머신도 열일을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10줄씩 주문하던 캡슐이 요즘은 한 달만 지나도 똑 떨어진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심심할 때 한잔 씩. 다만 이건 일하기 전엔 나가서 사 먹었기에 캡슐 소비가 적었던 것이고, 요즘은 거의 집순이가 다 되었으니 이렇게 된 거라는 결론이다. 출근하는 회사를 다녔으면 4~5천원 짜리 커피를 매일 두 잔은 마셨을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참 좋다. 재택러의 탕비실은 부엌이니까.


바톤터치를 하고 들어는 왔지만 내 옆에서는 일상이 돌아간다.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귀엔 나를 찾는 소리만 쏙쏙 내리 꽂힌다.

“애들 마스크가 어디 갔지?”, “오늘 학교 끝나면 애들 어디로 가?”

“...”

아, 아직 그것도 몰라? 애들 하교 후에 스케줄을 도대체 몇 달째 물어보는 거야, 내가 다른 일에 그래 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모르면 노력을 하라며! 속으로 이렇게 외쳐주고 다정한 표정으로 일어난다. 사실 싫지는 않다. 대부분의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남편이 모르는 것도 좀 있어야지, 라고 생각한다. 엄마인 나만 챙길 수 있는 게 괜히 뿌듯하다. 알아보기 쉽게 표로 적어서 붙여둘까 하다가도 그러기 싫어진다. 이건 엄마만 할 수 있는 영역이야. 알겠지?

참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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