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게 빌리는 오늘

3부. 쉬운 사람

by 박나킨


마을 한쪽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일을 빌려드립니다]


사람들을 웃고 지나쳤다.

믿지 않았다.

내일은 빌리는 게 아니라 미루는 거니까.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미뤄 둔 숙제가 너무 많았고,

미뤄 둔 약속과 미뤄 둔 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가게 주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얼마나 빌릴 건지,

언제까지 갚을 건지.


“내일을 오늘로 쓰세요.”

한 마디의 말과 함께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다.


상자 안에는,

영화에서 볼 법한 특이한 시계도,

번쩍이는 계획표도 없었다.


가족과 나란히 앉아 먹는 저녁,

소리 없이 넘기는 책장과 내면의 고요,

천천히 걷는 두 다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


나는 그날

미뤄 두었던 말을 꺼냈고,

미뤄 두었던 나를 앉혀 두었고,

미뤄 두었던 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상하게도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았지만, 숨은 가벼워졌다.


상자가 의미하는 그것은

내가 빌린 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허락받는 용기였다.


사람들은 늘

젊음을 내일로 미루고

열정을 내일로 미루고

건강을 내일로 미룬다.


그러다 어느 날

내일을 믿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내일을 오늘로 데려와 의자에 앉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행복은 내일도, 먼 미래도 아니었다.

행복은 미뤄 두지 않은 오늘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내일을 빌린다.


그리고…

늘 오늘 안에서만 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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