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조금 느린 아이를 위해 아빠가 하는 다짐 9가지
다행히 지금은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우리 아이는 말이 느렸다. 4살 정도 되었을 때, 또래 아이들은 여러 단어를 사용한 문장을 구사하는 데 반해, 우리 아이는 부끄러움이 많고 간단한 단어를 띄엄띄엄 말하는 정도였다. 이러다 말을 제대로 못 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조급함이 생겼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대학교의 아동상담센터에서 사회성 증진을 위한 상담치료를 약 10개월 정도 받았다.
아이가 느리다 보니, 답답함과 조급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곤 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냥 조금 느릴 뿐이야.' 그러면서도, 걱정되는 건 부모로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쉼 없이 올라오는 걱정을 진정시키고자 했던 다짐이 있다. 그때부터 수년간 반복했던 다짐이라 지금도 버릇처럼 되뇌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러 상황에서 아이가 굼뜬 부분이 있더라도 기다릴 수 있도록 마음의 안정을 준다. 아이가 많이 발전해서 지금은 또래 친구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이야기도 곧잘 한다. 이번 장에서는 아이를 기다리는 데 도움이 된 다짐을 공유하려고 한다.
1. 아이가 질문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 맞춰주기
'이건 뭐예요?',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등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우리 아들도 그렇다. 가끔 너무 질문이 많다 보니 하나하나 대답을 다 하기 어렵다. 그래도 아이가 질문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맞춰준다. 내가 서재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아이는 아빠가 무얼 하는지 항상 궁금해하며 서재로 들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서 아이와 눈을 맞춘다. 바쁜 일이 있으면 아빠가 급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놀러 오라고 하면, 그러겠다며 발걸음을 옮긴다.
2. 아이가 시험을 망쳐도 혼내지 않기
아이가 말이 느리다 보니, 글쓰기도 조금 느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받아쓰기 시험, 산수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다짐했다. 아이가 시험을 잘 못 보더라도 혼내지 않기로. 그리고 혹시라도 시험을 잘 보더라도 너무 좋아하지 않기로. 시험을 잘 봤을 때 너무 좋아하면, 시험을 못 봤을 때 부모 실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점수보다는 지식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응원해주고 있다.
3. 하기 싫은 공부는 최소한만 시키기
요즘 아이들은 해야 하는 공부가 너무 많다. 주변에서 이것저것 많이 시키다 보니, 안 하고 있으면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하는 공부는 역효과가 난다는 신념이 있다 보니, 아내를 설득해서 아이가 원하지 않는 공부는 시키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농구, 그림 등) 수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영어와 같이, 어릴 때 들으면 효과가 좋은 수업은 아이에게 한 달 정도만 권해보고 그래도 싫다고 하면 두 번 묻지 않고 그만둔다.
4.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최대한 허락해 주기
어릴 때 나는 오락실을 좋아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오락실에 간다고 단 한 번도 혼낸 적이 없다. 그래서 오락실 간다고 하고 가서 반나절이 있다가 와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1~2년 오락실을 다니다가 나중에는 별로 감흥이 없어져서 친구들이 갈 때만 따라갔었다. 게임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쁜 게임이 있을 뿐. 그래서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어 하면 무슨 게임인지 검열(?)을 하고 문제없다 싶으면 하게 해 준다. 단, 시간을 정해 놓고 너무 오래 하지는 않도록 한다. 이는 공부도 마찬가지다. 활동적인 시간과 정적인 시간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도록 공부든 놀이든 한 가지만 너무 오래 하지 않도록 한다.
5. 남은 음식을 모두 다 먹으라 하지 않기
9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쌀 한 톨에도 농부들의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모님은 특별히 맛있지도 않은 식사를 남기지 않고 다 먹게 하였다. 지금도 소식가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큰 고역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상의해서 아이에게 적당량의 음식만 주고, 아이가 음식을 남길 때는 고루 먹지 않은 채소 등만 조금 더 먹으라 권장하고, 이마저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을 대체 음식을 고려한다.
6. 재미있어하는 것은 응원해 주기
우리 아이는 광화문에서 하는 분수 놀이를 좋아한다. 분수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아이보다 2~5살 어리다.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분수 놀이를 하는 아이 중에 우리 아이가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 분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서툴기는 해도 열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임한다. 우리 부부는 이런 우리 아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7. 능력 없는 아빠가 될지언정 아픈 아빠 되지 않기
나는 직장에서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다. 의식은 있었지만 일어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119 구급에 실려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일이었다. 그때 집에서 거의 한 달을 요양하며 느낀 점은, '아, 내가 아프면 가족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내가 아프면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능력이 없을지언정 아프지 말자고 다짐하고 건강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8. 매일 안아주며 사랑한다 말하기
내가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는 스킨십이나 사랑한다를 말을 부끄러워했다. 부모가 자녀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을 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가족처럼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모와의 스킨십은 아이의 정서와 지능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과학적 근거가 상당히 많다.
9. 아이가 늦잠을 잘 때 우악스럽게 깨우지 않기
내가 어릴 때 늦잠을 자고 있으면 우리 부모님은 이불을 걷어 내며 '늦었다. 일어나라.' 라며 큰 소리로 단잠을 깨웠다. 그러면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데 한동안 시간이 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땐 다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좋아진 지금의 나는 우리 부모님과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 밤에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고 아침에는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며 천천히 잠에서 깨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아이는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고, 부모는 아이가 기분이 좋으니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또래 친구들과 교류하고 느리지만 배움의 즐거움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를 보면서 무엇인가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 아들아,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맙다. 이대로만 커 준다면 엄마 아빠는 더 바랄 게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