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이민 간 것처럼 살아보기
우리 가족이 단독주택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북유럽에서 살다가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북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민 포기는 단독주택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단독주택이 한국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단점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 가족이 서울에 있는 단독주택에 정착하게 된 계기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파올로 코엘료의 명작 [연금술사]는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공 산티아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산티아고에게 아버지는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금발인 사람도 있고,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한다. 그럼에도 여행을 고집하는 산티아고에게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양치기라고 알려줬고, 그렇게 산티아고는 양치기가 된다. 아버지는 가지고 있던 금화를 산티아고에게 건네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금화로 한 떼의 양을 사서 여행해 봐. 그러면 언젠가 너는 알게 될 거야, 우리 마을이 최고로 살기 좋고, 우리 마을에 사는 여인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2000년대 중반에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는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나는 산티아고가 다른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너무 공감되는 반면에, 그런 산티아고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은 우리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유럽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 과정과 6개월 동안 유럽 일주 및 지금까지 40여 개의 나라를 여행하였고, 수년 후 가족과 함께 건너간 북유럽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지 취업을 경험한 지금은 산티아고의 아버지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무엇이 내 생각을 이렇게 극적으로 바꿔놓았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산티아고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북한으로 가로막힌 섬이나 다름없는 반도국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대한 동경을 특히나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스웨덴의 남부도시 말뫼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차로 20~30분 거리로 가깝고, 폴란드의 북서부 항구도시 슈체친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까지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이는 서울에서 강원도 강릉의 거리보다 더 짧은 거리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유럽 대륙에 사는 사람들과 섬나라나 다를 바 없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의 외국에 대한 관념은 크게 다를 것이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외국을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나 또한 그랬다.
나는 25살 즈음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고 목적지는 중부유럽에 있는 폴란드의 한 도시였다. 당시 1년 동안 교환학생 과정을 마치는데 마주쳤던 아시아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이유에선지 교환학생 과정과 유럽여행을 했던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인종차별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때 만난 친구들은 한국인 친구들만큼이나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당시 같은 그룹의 교환학생들 중에서는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에서 온 학생들이 가장 많았고 스페인, 벨기에,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 15명 정도 되는 무리가 항상 같이 몰려다녔고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함께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이후 교환학생과정이 끝난 후 고맙게도 이들 상당수가 나를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집으로 초대해서 짧게는 5일 길게는 3주 정도 머물렀다.
이들과 깊은 이야기 하면서 느낀 바는, 모든 국가가 저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초강대국인 독일에서 온 친구들마저도 이런저런 불만들을 토로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공통으로 다음 생에 국적을 정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은지를 질문했다. 재미있게도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답변을 하였다. 그들의 답변은 바로 스칸디나비아 즉 북유럽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국가와 스위스였다. 이 미지의 국가들이 너무 궁금해진 나는 이 국가들에서 각각 3주 정도를 머물며 여행했다. 그중 핀란드와 덴마크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나라가 평온하고 국민 대부분의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았으며, 우리나라만큼이나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와 함께 이 국가 중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혼 3년 차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북유럽에 있는 대학교의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나가보지 않으면 평생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 살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애초에 이민이 아닌 경험이 목적이었다. 지금 나가보지 않으면 평생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 살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딱 2년만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외국에서 살아본 적 없는 아내와 1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나는 덴마크로 향했다. 뒤돌아 보면, 아내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영어 말하기가 초급 수준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내는 외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덴마크어도 배우고 영어 공부도 꾸준히 했다. 아내는 이웃에 사는 덴마크인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내가 수업이 없는 날이면 나와도 여기저기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이주하자마자 우리 아이는 덴마크어로 교육하는 어린이집에 배정되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현지 회사에서 인턴을 한 후 취업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예상보다 잘 흘러갔다.
그렇게 계획했던 기간이 다 되어갈 때쯤 우리는 외국에서 더 살아볼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갈림에 섰다. 집세나 의료보험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아이에 대한 걱정이 컸다. 우리 아이가 낯선 땅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인종차별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과 달랐다. 피부색, 역사, 언어, 종교, 문화 등 어느 하나 공통분모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뒤돌아 생각하면, 우리가 살던 한국도 도망칠 정도로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공부 강요와 암기식 교육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였고, 권위주의, 세대갈등, 사회 부조리는 어느 국가를 가나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는 우리 가족에게 만족스러웠으며, 물가 또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고, 우리나라에서 경험하는 편리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는 문화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비슷한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기가 외국에서 비슷한 것을 누리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고령화, 높은 업무강도와 OECD 최고 수준의 주간 근무시간, 미세먼지, 전쟁, 그리고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와 같이 벗어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서방 선진국에 만연한 높은 물가, 마약과 총기, 인종차별 문제와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큰 문제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집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가 거의 없고 단독주택이 비교적 많은 지역에 있는 단독주택을 물색했다.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지역에서는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비율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생들보다 현저하게 적었다. 과도한 교육경쟁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긍정적인 부분들은 그대로 누릴 수 있다. 어느 유튜브에서, 대치동에서 교육을 받다가 심한 경쟁을 피해 캐나다로 이민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치동의 교육은 치열함 그 자체였고 아이들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며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꼭 캐나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고, 지방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한 지인은 서울살이가 힘들어서 경상북도 김천으로 이사 갔고, 또 다른 지인은 강원도 고성에서 2년 동안 살다왔다. 이들과 함께 간 자녀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지금의 한국은 여러 각도에서 보더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자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이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여러 측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사람들의 주관적인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여러 객관적인 지표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2022년 5월 유엔 통계국이 대한민국의 분류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늦어도 2010년부터 95% 가까운 지표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였다.) 누군가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건·사고 그리고 낮은 수준의 대처 수준 등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주관적인 관점으로도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은 여러 각도에서 보더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되었다고 느껴진다.
애플워치병은 애플워치를 사야만 낫는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에서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국가에서 살아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애플워치병'이라는 용어가 있다. 애플워치를 사고 싶어 하는 병을 일컫는데, 애플워치병은 애플워치를 사야만 낫는다고 한다. 이 점에서 이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경하는 나라에 살아보는 것은 여러모로 성장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릴 때 외국을 다녀오는 것은 이민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일단 한번 살아보면 더욱 더 경험에 근거한 비교가 가능하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만약 한국의 주류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아파트가 없는 지역에 있는 단독주택에 살아보기를 추천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다양성이 크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외국과 크게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