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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04. 2022

시어머니의 뭇국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시댁에 추석. 설날 포함해서 1년에 제사가 5번이 있다는 것을. 뭐 이 정도면 남들에 비해 크게 많은 건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힘이 들다고 느끼는 건 기제사가 하반기에 몰린 터라 9월부터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지내게 된다는데 있다. 그렇다고 제사가 힘들다, 뭐 런 얘기가 하고 싶어서 내가 지금 얘기를 꺼내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이야기의 초점은 제사 때 시어머니가 끓이뭇국에 있다.


거두절미하고 시어머니 뭇국은 정말 맛이 있다.

그 진하고 깊은 맛은 내가 아무리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뭔가 시어머니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께 그 비법을 따로 물은 적은 없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알아질 테니까.


구정 전 날이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시어머니가 오셔서 둘이 장을 보고 늦은 시간까지 제사음식 준비를 했다. 산적에, 전에, 나물 미리 무쳐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뭐 기타 등등... 내일 아침에 상만 차리고 제사만 올리면 되게끔 완벽하게 준비를 해두었다. 국은 어머님이 끓여야 한다며 가스불에 올려놓은 상태로 이제 내일을 위해서 이부자리에 누울 준비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때  당시 6살이었던 딸내미가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밤늦게 먹이면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딸을 그냥 재우려는데 그걸 어머님이 한마디 호통을 치셨다.

"아니. 너 같으면 배고픈데 잠이 오겠냐? 있어봐라 뭇국이 좀 덜 끓긴 했지만 여기다 밥 말아줘야겠다."

아니 이미 4시간은 끓인 것 같은데...


나는 방에 들어가 로션을 찍어 바르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어머님이 딸에게 밥을 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 먹고 처벅처벅 방으로 걸어 들어오는 딸. 근데 표정이 왠지 좋지 않아 보였다.

"밥은 다 먹었어?"

그러자 딸이 아주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엄마. 엄마 있잖아. 할머니가 국에다 이상한 거 잔뜩 넣었어"

"뭐? 뭐를 넣었다고 그래"

딸은 내 손을 잡더니 주방 쪽으로 끌고 갔다.

"저거. 할머니가 저거 엄청 넣었어."

딸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국솥 옆에 소고기 사진이 찍혀있는 MSG떡 하니 보였다. 뭇국은 계속 끓고 있었다. 새벽까지 끓일 모양이다.


결국 시어머니 뭇국의 비밀은 MSG? 그리고 좀 더 특별한 비법이 있다면  끓이고, 또 끓이고, 끓이고, 또 끓이고... 무와 고기가 힘없이 축축 늘어질 때까지 장시간 끓인다는 거?


나는 그때까지 시어머니 옆에 꼭 붙어서 펜을 들고 적어가면서 비법을 배우는 내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쉽게 비법을 알게 됐으면 기분이 홀가분하고 좋을 법도 한데 나는 왜 서운해하고 있는 걸까?


그다음 해에 어머님께서는 힘들다며 집에 오않았고 나는 혼자서 제사음식을 만들고 뭇국을 끓였다.

뭇국을 먹어본 신랑이 말했다.

"어머님이 끓이신 거랑 똑같다 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래? 내가 원래 하면 잘해."

그다음 해에도 어머니는 오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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