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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09. 2022

어머님의 미신

어머님은 미신을 좋아했다. 미신에 빠진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어머님은 미신에 진심이었고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첫애를 임신했을 때 어머님께서 금기시한 음식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금기 음식은 바로 오리고기. 단백질과 비타민B가 풍부한 오리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셨던 이유는 손발이 붙은 아이가 나온다는 거였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말도 안 돼요."

"오메, 얘 좀 봐라. 그게 왜 말이 안 되니?"

나는 어머님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내 일그러진 표정을 어머님은 읽은 듯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얘기를 들어 버린 나는 임신기간 내내 굳이 오리고기는 먹지 않았다.


딸을 낳자마자 어머님은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매해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 먹어야 다치지 않고 잘 큰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의 대답은 너무도 원초적이었다.

"애기가 먹는 것도 아닌데 왜요?"

생일은 5월 말이라 수수팥떡은 당일에 다 먹지 않으면 쉬어버리기 일쑤였다. 맛도 없는 수수팥떡, 아무도 먹지 않는 수수팥떡하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매해 5월이 되면  떡집에 수수팥떡을 주문해야 했다.


그리고 의 첫 생일에 어머님은 내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제시하셨다.

"너 있잖니. 애기 생일날 아침 일찍 목욕을 깨끗하게 하고 너희 집 안방 장롱 있는 그쪽에다 정안 떠놓고 삼신할머니께 빌어야 한다.

우리 아기 잘 크게 해달라고 말이여."

"네?"

"빌어. 다 좋은 거니께."

독실하진 않아도 우리 친정은 대대손손 기독교 집안인데 이걸 꼭 해야 하나? 해도 되나? 나는 분명치 않은 목소리와 발음으로 대답도 아니고 대답이 아닌 것도 아니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을 흐려버렸다. 그러고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아니, 우리 어머님이 정안 떠놓고 삼신할머니께 빌라신다."

내가 웃긴 얘길 한 것도 아닌데 친구는 한참을 웃어댔다. 그러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빌어. "

친구의 대답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냥 어머님께 빌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 찝찝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여러 시간 고민을 했던 나는 결단을 내리고 의 생일날 아침에 그냥 늦잠을 자버렸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속이 깔끔하지가 않은 건지... 나는 주변 사람들 여러 명에게 전화를 돌려 물었다.

"삼신할머니가 정말 있다고 생각해?"

없다는 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제야 나는 마음 편하게 그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10살 생일날. 이제 어머님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자라 있던 나는 한번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말을 꺼냈다.

"어머니. 수수팥떡이 금방 쉬는데 올해는 안 하면 안 돼요?"

"너 싫으면 하지 말어. 그깟 껏 안 하면 어떠니."

너무 뜻밖의 대답이라 재차 물었다.

"정말요? 정말 안 해도 돼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런 거 아무 소용없더라."

기다리던 대답이었지만 나는 덜컥 마음이 무거워져 버렸다. 어머님의 열정은 이제 끝이난 걸까?

막상 어머님이 그렇게 나오 오히려 어머님만 좋다면, 그렇게 해서 마음이 의지가 되고 편하다면, 미신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다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지...

"어머님. 한번 남았는데 그냥 할래요."

"아녀.  하지 말어. 그거 누가 먹는다고 하니?"

"왜요. 저 수수팥떡 좋아해요."

나는 처음으로 어머님 앞에서 가식을 떨어댔다.


의 10번째 생일날 수수팥떡을 주문하는 내 마음은 지난 9년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머님 마음이나 편하시라고 시원시원하게 하라는 대로 했으면 되려 내 마음도 함께 편했을 것을... 어머님께 미신은 종교이자 열정이었을 텐데...


열정의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어머님께 미신은 얼마만큼의 무게였을까?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중학교 때 열렬히 좋아했던 변진섭 오빠에 대한 열정,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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