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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02. 2022

시어머니의 언어

결혼하고 처음 맞는 여름. 서울에서 어머님이 신혼집에 왔었다. 점심을 차려야 하는데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김치찌개밖에 없던 나는 신랑 옆구리를 찔러 외식을 하기로 했다. 날씨가 무더워서 메뉴는 냉면으로 정하고 두말할 것도 없이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집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갔다.


당시 우리가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인천이었고 어린 시절 잠시 인천을 떠났던 적은 있었어도 그래도 나름 토박이였기에 삼계탕 하면 인현동, 닭 강정하면 신포동, 냉면 하면 화평동 만 한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의 명물이었기에 당연히 어머님도 좋아하리라 확신했었다.


즐비한 화평동 냉면집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고 평이 좋은 곳으로 모시고 갔고 그날도 명성만큼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직원 아주머니는 앞 손님이 나가자마자 테이블을 쓱쓱 행주로 닦"앉으세요."라는 말만 툭 던지시고는 주방 쪽으로 사라져 버렸 여기요! 이모! 를 몇 번 외친 끝에 겨우 냉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양이나 맛이나 어머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비록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어머님이 맛있게 드셔준다면  뿌듯하겠다고 생각했다. 


"냉면 나왔습니다."

어머님이 냉면을 쳐다보시는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냉면을 보고 처음 내뱉은 말은 놀랍게도

"오메 우라지게 많기도 허네."

서빙을  아주머니는 어머님을 힐끗 쳐다보았고 나는 얼른 주위를 살폈다. 우라지게 라는 말이 냉면집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어머님의 거침없는 표현은 심심치 않게 계속되었다. 나름 미식가인 어머님의 그 거친 표현은 주로  식당에 갔을 때 자주 발현이 되었다. 그날도 서빙하는 분을 붙잡고 무언가를 묻고 있는 어머니. 나는 불안했다.

" 이거 뭐래?"

 "생선찜이에요 어머님.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 근데 왜 이렇게 시커머니 드럽게 생겼대."


그렇다고 해 어머님의 욕을 꼭 식당에서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웃은 물론이고 심지어 손주들에게까지 가리는 곳이 없었다.

한 번은 딸내미가 말대꾸를 해서 씩씩거리며 혼을 내고 있던 차에 어머님께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감정 조절안 됐던 나는 화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어머님은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니 애가 자꾸 말대꾸를 하잖아요."

" 뭐여? 그걸 가만 놔두냐? 주둥이를 지쪄버려라. "

이제는 랍지도 않았다. 되려 그 순간만큼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화가 살짝 누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참 동안 나의 마음을 괴롭히던 사건이 있었다. 요즘 딸내미가 사춘기라 집이 전쟁터인데 그래도 난 이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으며 애를 쓰고 있다.

'사춘기 아이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원활한 소통을 위한 부모의 마음가짐, 사춘기 우리 아이와 진정시키는 방법' 등등.  무수한 강의들을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지 정답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고 어느 정도는 잘 실천하고 있고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말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딸이 나를 부엌데기 취급한다고 느낄 때. 자기 속옷을 잘못 빨았다고 얼마나 쏘아붙이던지...  이럴 때 올바른 대처법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 아끼는 속옷이 망가져서 속상했구나. 그래도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정답을 알면서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야!! 내가 네 식모냐?"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딸은 나를 사춘기 특유의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눈빛이 얼마나 기분 나쁘고 모멸감까지 들던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던 나는 순간 시어머니가 빙의된 듯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와 버렸다.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욕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난 그때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뇌와 입은 기관이 철저히 다르다는 것을. 뇌에선 아니라고 하는데도 입은 멈추지 않았고 그나마 바로 정신을 차리고 딸에게 사과도 했다. 엄마가 실수한 거라고, 다시는 너에게 그런 식의 표현으로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죄책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애가 상처 많이 받았을까? 배우게 되면 어쩌지? 더군다나 남들보다 기우가 많은 나는 꼬리를 무는 걱정들 때문에  괴로웠다. 이럴 때 누군가가 괜찮다고 말을 해주 정말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소리를 꼭 들어야만 했던 나는 생각 끝에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형식적인 안부인사만 급하게 본론을 꺼내버렸다.

"형님, 어머님이 형님들이아빠 키우면서 욕도 많이 하시고 그랬었죠? 제가 어제 한테 욕을 했지 뭐예요."

내가 생각하는 , 아니 원하는 대답은 이거였다.

"그럼 그럼. 말 도 . 너도 알잖아 우리 엄마. 그런데도 우리 삼 남매 이렇게 잘 컸잖니. 그리고 지속적으로 한 게 아니면 마음에도 크게 남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마."

그런데 뜻밖에 형님의 대답은

"아니. 우리 엄마는 우리 키울 때 욕 한마디도 안 하셨어. 그래서 내가 욕을 안 하나 봐."

아니 그럼 내가 결혼 17년 동안 들었던 어머님 입에서 나왔던 수많은 욕들은 뭐란 말인가! 젊을 때는 욕을 한 마디도 안 다가 갑자기 노인이 돼서 욕쟁이 할머니로 변해버린 거란 말인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나의 맘은 오히려 무거워졌고 끊고 나서도 도저히 형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원하던 대답을 꼭 듣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신랑에게 전활 걸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여보, 어머님이 당신이랑 누나들 키우실 때는 지금처럼 욕 같은 건 절대 안 하셨다고 큰누님이 그러시더라. 맞아?"

신랑은 대뜸

 "무슨 소리야!! 누나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러냐. 엄마가 얼마나 욕을 많이 하셨는데 그래. 지금 어머님 보면 모르겠어?"

체증이 내려가 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치 드라마 속 악녀처럼 입고리 살짝 올라간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처음 시집와서 얼마 동안은 어딜 가나 거침없는 표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어머님이 부끄럽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그런 어머님 모습에 익숙해져 갔고 오히려 어머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올 때마다 이제는 되려 박장대소를 한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욕을 먹는 손님들의 마음이 이런 건가? 그래서 그런 식당들이 명물이 되기도 하는구나 다.


형님은 부끄러워서, 내게 숨기고 싶어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형님은 어머님의 거친 표현을 어머님의 언어로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어머님은 욕을  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욕이 아니라 어머님의 언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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