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들리 Wadley Feb 08. 2024

lovely, sweetie!

잠깐 두근거리지 말고

호주에 온 다음날, 스쿨 슈즈를 사러 구두 가게에 갔다. 빨간색 염색 머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점원 언니는 학교 신발 선반을 보여준다. 사이즈 7? 8? 몇 켤레를 내놓더니 아이가 신자마자,


Wow!

Lovely, Lovely 사랑스럽다

Beautiful, Beautiful! 아름답다

[러블리 뷰티풀]


연발한다. 잠깐, 뭐 이 아이가 내 눈에는 너무 예쁘지만 뭘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쁘담! 그 특유의 영국식 강한 악센트로 듣는 러블리 뷰티풀은 몇 달이 지난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러블리! 뷰티풀! 표정은 정말 심각하고 구두를 보는 시선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 러블리와 뷰티풀도 진심 귀에 꽂히고 말았다.


호주 학교 신발은 온통 검은색


맞다.

이 언니 장사 잘한다.


그렇게 절도 있는 자세와 집중하는 표정과 손님에게 몰입하는 이에게 비싸니 얼마니 물을 수가 없다. 마치 이 아이의 발에 그 신발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듯 완벽하달까. 동네라 그 가게를 계속 지나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언니 있는지 쓰윽 보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 빨간 머리 언니는 우리 아이를, 아니 그 발을 사랑할까


Surfers Paradise  서핑하는 사람들의 천국

[서퍼스파라다이스]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로 돌아가는 호주에서도 골드 코스트(Gold Coast / 금빛 해안)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실제 황금빛 모래가 멋지게 이어지지만 금광이 발견되며 사람들이 모여들어 유명해졌다는 그곳. 그 정점에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있다. 실제로 찾아가 보면 생각보다 파도가 높은가 더럭 겁도 나고 수많은 사람들에 놀라기도 한다.(개인적으로는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간 버레이 헤드의 잔잔한 파도를 추천) 세계의 서퍼들이 모인다는 이곳은 이름만 들어도 몸 안에서 파도가 넘실 거리는 것 같다.

선샤인 코스트의 밀려오는 파도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가기 전, 우리는 서핑을 배우러 북쪽 바다인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햇빛 해안)에 갔다. 2시간 정도 서핑을 배우는 서핑레슨을 신청했지만, 오늘따라 바람은 세고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온다. 강습은 보조 강사까지 3명, 강사 중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는,


Sweetie 얘야 [스위티]

Lovely, Lovely, Beautiful, Beautiful!


실제 나는 어땠을까. 정말 러블리-하지 않았다. 계속 기우뚱. 파도에 휘말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모래사장을 뒹굴다가 엎어지고. 파도가 나를 미는 건지, 내가 파도를 미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어글리(ugly/못생긴)하고 낫굿(not good/별로)인 나에게 쉬지 않고 러블리 뷰티풀-이라신다. 아니요 저는 이미 바닷물여 절여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참 영어로 막막.


그 수많은 뒤집어짐 뒤에 딱 1번, 나는 보드를 딛고 파도 위에 서서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에 내가,라고 하며 모래 위에 뛰어내리는 순간. 나는 보았다. 높은 파도부터 모래사장까지 내 보드를 온몸으로 밀어주는 할아버지의 두 손을. 그냥 뒤에서 따라오시나 했더니 그렇게 온-힘을 다해 밀어주면서 러블리 뷰티풀을 쉬지 않고 외쳐주고 계셨던 거다.


우리가 아는 웰(Well) 굿(Good) 엑설런트(Excellent)는 사실 잘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생각엔 좀 과하다 싶은 러블리와 뷰티풀을 남녀노소 참 많이 쓴다. 가령

바삭하려다 타버린 나의 돼지

I tried baked Christmas crispy pork yesterday. 어제 크리스마스 바삭 돼지 구이를 했어요.

[아이 트라이드 배이크드 크리스머스 크리스피 포어크 예스터데이]


Wow, that's lovely. 와 그거 좋구나!

[와우, 댓즈 러블리]


좋네 잘했네가 다 러블리이다. 러브 들어간다고 오해하고 그러면 안 된다.


How do you like this shirt? 이 셔츠 어때요?
[하우 두 유 라익 디스 셔츠]


Oh, that's beautiful. 오 그거 좋구나!

[오우, 댓즈 뷰티풀]


좋네 멋지네가 뷰티풀이다. 아름다움 같은 거 생각하고 볼 빨개지면 안 된다.


아니, 오해하고 빨개져도 될 것 같다. 가게에서도 서핑에서도 동네 아줌마든 주유소 직원이든, 이들의 러블리랑 뷰티풀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든다. 실제 이들의 뉘앙스는 그냥 맞장구이며 대답이라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을 참 친근하고 다정하게 만든다.


Sweetie, where's the bowl that looks like this? 얘야, 요렇게 생긴 그릇 어디 있을까?

[스위티, 웨어즈 더 보울 댓 룩스 라익 디스]


Yes, it's on that corner. 네 저쪽 모퉁이에 있어요.

[예스, 잇스 온 댓 코어너]


맞다. 젊은 여직원에게 스위티라고 말하는 어르신을 보고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든 창구에 선 당신이든 조금 어린 사람에게 어른들이 스위티라고 말하는 게 이젠 이상하지 않다. 저기요 이거 어디 있어요? 보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스위티-라고 말하면서 성질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기도 어렵다. 정답게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그런 사람들의 표정이란.

 

Lovely, Beautiful, sweetie

[러블리 뷰티풀 스위티]


어쩌면 호주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반갑다 정답다 호호호.


스윗한 사람들은 수많은 종류의 달달한 것들 못 참지


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걸 잘 못한다. 더 잘하려면 이렇게 해야 돼, 요걸 바꿔봐, 그렇게 지적질이 나의 특기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아이들, 학교 끝나고 쪼르르 달려와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면 아이고 잘했네-라기보다는. 어 그건 왜 그랬어? 이건 어땠을까 하기 마련이었다. 그럼 팽- 돌아져서 "엄마는 왜 칭찬을 안 해?"라고 하던 아이들.


러블리 뷰티풀이 무조건의 칭찬은 아닐 거다. 평범한 말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예쁘고 곱게 말해주는 것. 내 마음속에는 그 말들이 예쁘게 남았으니 나도, 아이고 이뻐라, 아이고 잘한다, 너무 사랑스러워-부터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동네 산책로 저쪽에서 사람이 온다. 나는 입술을 풀고 미소를 장착한다. 십중팔구라는 말은 정답이다. 10중 8이나 9는 인사를 한다. 무어라고 할지 오늘도 순간 머릿속 복잡. 이것이 내일의 이야기다.

이전 02화 I dyed my hai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