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지키고 싶던 날들

by 라라

제4장 지키고 싶던 날들


연순이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아버지는 그녀를 볼 때마다 꼭 돈봉투를 맡겨놓은 사람처럼 굴었다.


“망할 년아, 집에서 자빠져 있지만 말고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란 마다!”


언니는 대꾸도 못 하고 아버지의 면박을 오롯이 삼켰다.


“아부지는 객지서 이제껏 고생한 언니한테 왜 그러시오!”


정순이는 참지 않고 아버지를 막아섰다.


“저년 봐라, 저것이 키워 놨던 만은 눈에 뵈는 것이 없어야!”


아버지는 정순이가 대들 때마다 성을 냈다. 하지만 그 불같음이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소리만 한번 꽥 지르고 구시렁대다가 집 밖으로 나가버리는 싱거운 끝이었다. 그래서 정순이가 더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남의집살이하며 먹던 눈칫밥이 오죽이나 했을까. 몇 년의 식모살이를 하는 동안 생긴 허기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커져 있었다. 그 허기를 연순이는 허약한 감나무의 그 집에서 허겁지겁 채웠다. 동생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앙상하게 말라 젓가락 같던 종아리에도 포실하게 살이 올랐다. 푸석하던 피부에도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순이와 함께 장으로 논으로 다니면서 건강한 그을음도 생겼다. 그제야 연순이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더위도 한풀 꺾인 늦여름 저녁이었다. 건넌 마을에 사는 중매쟁이 금천 댁이 연순이네를 찾아왔다.


“계시오.”


“금천 댁이 뭔 일이다요? 얼른 들어오쇼.”


엄마는 마루로 안내하고 간단히 마실 냉수 한 그릇과 옥수수 두어 개를 꺼내왔다.


“여그 큰 딸 연순이, 누가 중매 좀 서 달라고 해서 왔는디…”


“…”


엄마는 뭐라 말을 못 하고 듣고 서 있었다.


“아따, 연순이 엄니, 연순이가 얼매나 이쁘요? 나도 가만히 두고 보기가 아까운디. 저쪽에 쌀장수 하는 백 씨네 있소? 그 집 아들이 연순이 애기 때부터 좋아 했든갑든마. 이번에 내려온 것을 알고 지 아부지한테 그렇-게 중매를 서 달라고 난리가 나브렀단께.”


연순이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쌀집 아들. 뱃속에 있을 때 그 엄마가 개고기를 잘못 먹어 그랬다던가, 태어나서부터 한쪽 다리를 저는 종복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쌀집과 함께 인력 소개소도 운영하며 소문으로는 그 집의 논과 밭이 셀 수가 없더라고 했다.


돈이 많은 것은 분명한데 다리를 절어 그랬나, 인물이 못나 그랬나,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장가를 안 가고 있던 노총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두 자매가 장에 가면 느끼한 눈으로 연순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는데 그게 정순이는 늘 기분이 나빴다.


“우리 아그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여태껏 고생만 하다가 집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았어라. 그라고 우리 집 형편이 이라고 기운디…”


좋다 싫다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그 집 아들이 다리를 좀 절고 나이는 서른 서넛이나 됐을런가. 연순이랑은 나이 차이가 나긴 한디 그래도 그 집이 돈도 꽤 있겄다, 연순이가 그 집으로 시집만 가면 팔자는 피는 거제.”


“우리 연순이가 맘에 들어 할지도 잘 모르겄고…”

엄마는 영 내키지 않은 기색이었다.


“연순이 엄마, 잘 들어보쇼. 연순이 아래로 동생들이 몇이여? 아들들만 해도 줄줄이 사탕인디, 내년에 창석이는 중학교 들어갈 거고 만석이랑 동석이까지 못해도 고등학교까지는 나와야제. 아들들이 이 집 딸들처럼 학교도 못 댕기고 그라믄 되겄소? 근디 이 집 남자가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순이 어매 혼자 벌어가꼬 어째 이 소만 한 것들을 다 먹여 살리겄소? 연순이 그 집으로 시집만 가믄 처남들 절대 나 몰라라 할 사람들이 아닌께 잘 생각해 보쇼.”


금천 댁은 조만간 다시 오마하고 대문을 나섰다. 방 안에 있던 아이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마치 남의 일인 양 그 얼굴 위로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정순이만 언니 눈치를 살피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금천 댁을 배웅하고 난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자, 집안에는 더욱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보다 못한 정순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엄니! 진짜로 언니를 그 집에 시집 보낼라는 것은 아니지라?”


“…”


엄마는 아니란 말도 하지 못했고 그것은 정순이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왜 말을 못 하시오! 언니가 왜 그 집 아저씨한테 시집가냔 말이오!”


“그라믄 우리는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있다냐? 듣기 싫은께 고만 이야기 하고 어여 잠이나 자자이.”


불은 끄고 누웠는데 아무래도 잠이 안 왔다. 이제야 물기가 촉촉한 꽃망울처럼 어여쁘게 다시 피어나는 언니. 나랑은 안 닮아서 예쁜 언니. 그래서 어딜 가도 자랑하고 싶은 사람. 종복이 아저씨에게 시집간다니! 말도 안 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없게 하리라 생각했다.


싱숭생숭한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엄마와 두 남동생은 학교로 장으로 나갔다. 전날 밤늦게서야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아버지가 늦은 아침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언니를 불렀다.


“연순아, 어제 아부지가 누구랑 술 마셨는지 아냐?”


아직도 지난밤의 꿈에 젖은 표정이었다.


“지가 그것을 어찌 알겄소?”


“저쪽에 쌀 집 하는 백 영감 알지야? 그 짝이랑 술을 마셨단 마다. 그 집 아들이 너를 영 맘에 들어 해가꼬 나한테 사돈 맺자고 함서 아주 대접을 거하게 하드라고. 사돈만 맺으면 우리 집도 이제 살판 날 거라고 옆에서 떠들어 싼데, 허허허”


정순이는 속도 없는 아버지의 말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그런데 대꾸도 못 하고 앉아 있는 언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속이 더 쓰렸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돈’ 운운하니 속에서 끓던 게 터졌다.


“아부지, 언니가 언제 그쪽이랑 결혼한다고 했다고 벌써 사돈이란 말이요?”


“정순이 너 보고는 사돈 맺자고도 안 하니께 암말 말고 있어!”


“나보고 하자고 해도 나는 안 할란디, 언니가 뭣이 부족하다고 그 집에 시집을 가냔 말이요?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오!”


정순이가 대꾸했다.


“뭣이 너무해야? 느그 언니가 나 닮아서 인물이 좋제, 누구를 닮았냐? 배우기를 해, 뭐를 해. 가진 것은 반반한 인물밖에 없는디. 오라는 사람 있을 때 어여 가야제!”


아버지는 그 꿈이 깨질까 두려웠는지 잔뜩 화를 내며 몰아붙였다.


“아부지가 이날 이때껏 술이나 자셨제 뭘 했다고 언니를 팔아넘길라고 하냔 말이오!”


“아니, 이년이!”


덜커덕 쨍그랑.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밥상을 뒤엎었다.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부지를 뭘로 보고 기어오르는 것이여!”


아버지의 손이 정순이의 얼굴을 향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그는 넘어진 아이를 발로 밟아 재꼈다.


“아버지! 아버지! 그만하시오! 이러다가 애 죽겄소!”


언니는 눈이 뒤집어진 아버지를 동생에게서 뜯어말렸다.


“이 잡것들이, 애비 무서운 줄을 모르고!”


그는 귀해진 큰 딸은 차마 때리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더니 집을 나갔다.


“흐흐흑… 언니 절대 그 아저씨한테 시집가지 마. 언니가 왜 팔려 가냔 말이여! 흐흐흑…”


정순이가 터진 입술의 피를 삼키며 애원했다.


“앞으로 내가 알아서 할텐게 너는 괜히 나서지 말어라. 알았지야?”


연순이는 눈물을 흘리며 정순이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이후, 연순이는 예전처럼 정순이와 함께 장에도 가고 논에도 갔다. 가끔은 강심이 집에 함께 가서 수다도 떨었다. 그것만 보면 꼭 웃음을 되찾은 것 같아 정순이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깊은 생각에 빠져 옆에서 한참을 불러도 모를 때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정순이는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은 언니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이후로 더는 언니의 결혼에 대한 말이 오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영 잊힌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정순이는 언니가 그 결혼을 하지 않고 계속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빌었다.


늘 한밤중이 되어서야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주 들어오지 않거나 했던 아버지가 웬일로 이른 저녁 집에 들어왔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술 한 모금도 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사 들고 왔다. 동생들은 기분이 좋아 웃었는데 정순이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그날은 아버지가 사 오신 고기를 올려 푸짐한 저녁을 차렸다. 온 가족이 상에 둘러앉았다. 아들들은 오랜만에 뱃속에 기름칠을 하니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아버지가 이제야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일까. 이제는 가장 노릇을 하려는 것일까. 며칠 전의 파란은 아주 잊기라도 한 듯 제법 화기애애한 가족 식사였다.


“국물이 겁나 시원한 게 여간 맛난 게 아니다. 이제 느그들도 다 컸구만. ”


소고기뭇국을 한 숟갈 입에 넣은 아버지가 말했다.


“다 크긴 뭣이 다 컸다요? 아직 애기제.”


엄마는 나무라는 듯 아버지에게 면박을 주었다.


“열아홉이면 다 큰 거제. 이제 연순이도 시집갈 때가 되았제. 자네, 그 쌀장수 백 영감 알제?”


영영 잊기를 바랐던 그 이야기를 아버지가 다시 꺼내자, 정순이는 턱, 하고 목이 막혔다.


“알지라. 안 그래도 열흘 전엔가 중매쟁이 금천 댁이 와서 이야기합디다. 그란디 우리 형편도 너무 기울고… 연순이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았는디.”


껄끄러운 이야기인 양 아버지 말을 받았다. 정순이의 그 작은 눈이 더 땡글 해졌는데 언니는 여전히 눈을 내리

깐 채 밥만 꾸역꾸역 퍼먹었다.


“그 집이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디. 우리 동네 저쪽 논들은 다 그 영감 것이여. 오늘 읍내에 가니 아주 나를 반갑게 맞더란께. 벌써 사돈 되아브러써. 허허허.”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웃었다.


“아니, 당신은 지금 이날 이때깟 한 것이 뭣이 있다고 우리 연순이를 이라고 급하게 시집 보낼라 그라요! 절대 안 되지. 내 딸, 나도 나이 많은 다리 병신한테는 절대 시집 못 보내겄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된다, 안된다를 확실히 말 못 했던 엄마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버지의 이른 김칫국물 같은 말에 사납게 대꾸했다.


“내가 지금까지 안 한 것이 뭣이여! 그라고 연순이만 보내주믄 우리 집도 사람 사는 것처럼 해주고! 아들들 학교도 다 졸업시케 준다고 한디, 왜 안 보내! 집에서 밥벌레만도 못한 년을 왜 안 보내!”


예상치 못한 반격에 화가난 아버지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이 집의 장남 창석이가 밥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라믄 학교 안 다닐라요. 누님 팔아서 학교 가놓고 내가 뭣이 되것소?”


만석이와 동석이는 불편해진 집안 공기에 오랜만에 신나게 먹던 고기를 더 입에 넣지 못하고 입안의 음식만 우물거렸다.


“앞으론 애들 앞에서 연순이 시집 야기는 꺼내지도 마쇼! 나는 절대로 안 보낼란께!”


엄마는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놓았다.


“뭣이 어쩌고 어째!”


아버지는 더 이상의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밥그릇을 집어 던지더니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고는 무서운 기세로 엄마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그 결혼, 내가 하면 되는 거 아니겄소! 그란께 인제 엄마 그만 괴롭히시오!”


연순이가 아버지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정순이는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니가 왜 그 결혼을 한다는 것이여!”


“정순이 너는 더는 말하지 말어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 나도 돈 많은 집으로 시집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여.”


자신의 결혼 따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대답을 듣고서야 움켜쥐고 있던 머리채를 놓았다.


“흐음… 흐음. 어서 밥들 먹어라.”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국물을 퍼 입안에 욱여넣었다.

고기가 한껏 올려져 있는 먹음직스러운 밥상 위로 더 이상 다정스러운 말이 오가지 않았다. 숟가락이 밥그릇을 삭삭 비워내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이 여름이 다 끝났음을 알리는 듯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 처량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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