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낙화

by 라라

제3장 낙화


여러 계절이 지났다. 길가에 핀 민들레 한 무더기가 노오란게 보고 있자면 아찔해져 와 어지러울 정도로 완연한 봄이었다. 정순이는 동석이의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솥단지 가득 고구마와 감자를 삶았다. 학교에 다녀올 동생들에게 줄 것이었다. 아버지는 늦게나 일어나서 밥 한술을 뜨더니 어디론가 나갔다. 늘 그렇듯 엄마 좌판에 들러 깽판을 쳐서라도 돈을 타 냈을 것이다. 그러곤 읍내로 나가 술을 마시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보답으로 동석이는 제법 사람 같아졌다. 야무지게 걷고 뛰며 쫑알쫑알 웃긴 말도 곧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일 년 내내 콧물을 달고 다녔지만 크게 아픈 곳 없이 단단하게 자라났다. 새벽에 나가 밤이 돼서나 들어오는 엄마보다 정순이를 잘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 누나가 더 가깝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올해로 열다섯이 된 정순이도 어느덧 키가 두 뼘이나 더 컸다. 깡말랐던 얼굴엔 제법 살이 올라 소녀티가 흘렀다. 손이 야무져 먹성 좋은 남동생들의 끼니며 도시락을 알뜰하게 챙겼다. 한량 아버지의 수발도 잘 들었다. 덕분에 엄마는 장사를 하러 오가는 길이 덜 고된 듯했다.


정순이는 집안일을 돌보면서도 대목 철이 되면 시장에 나갔다. 대구포를 뜨거나 생선 내장 손질을 하며 엄마 장사를 도왔다. 농사철이 되어 동네가 일손이 바빠지는 시기에는 이 집 저 집으로 잔심부름하러 다니며 용돈벌이를 했다. 그러다가 좀 한가해진 날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강심이 언니 집으로 놀러 갔다. 강심이 언니는 연순이 언니의 친구로, 서울에 있는 방직 공장에 다니다가 건강이 나빠져 집에 내려와 쉬고 있었다.


“아야, 서울 가믄야, 남자들이 얼매나 잘생겼는지 아냐? 여그 촌구석 남자들이랑은 차원이 달라븐다이. 피부가 아조 하얘가꼬는 길거리에는 신성일 같은 남자들이 겁나브러. 이 언니도 몇 번 만나봤단 마다.”


“그래서 그 남자랑은 어떻게 됐는디?”


“으흠, 흠.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야는, 참. 여자들은 자고로 조신해야 하는 거다이. 우리 엄니, 아부지 알믄 난리가 나븐께, 내가 도망 다녔제.”


그 말을 하며 지난날을 떠올리던 강심이 언니의 주근깨투성이 볼 위로 홍조가 깊어졌다. 늘 마지막엔 조신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강심이 언니가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와 남자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예쁜 스커트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옆구리에는 두꺼운 책을 끼고서 도시의 어느 거리를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 그러다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미래의 내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한번 시작한 상상은 끝이 없었다. 상상은 돈 안 들고 할 수 있는 정순이의 유일한 취미였다.


강심이 언니와 한참 수다를 떨고 왔더니 학교에 다녀온 미자가 마루에 앉아 정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순이는 미자얼굴을 보자 그제야 숙제 생각이 났다.


“정순아, 내가 내준 숙제는 다 했냐? 오늘은 받아쓰기 시험 본다이”


깐깐하기도 한 미자는 학생의 숙제를 잊지 않았다.


“나 오늘은 강심이 언니 집에 놀러 갔다 오느라 공부를 얼매 못 했는디… 쫌 봐주믄 안될까?”


“아따, 그래가꼬 어느 세월에 3학년을 띤 다냐. 지금 몇 년째 그 책만 공부한디…”

느린 학습 진도에 미자는 애가 탔다.


“강심이 언니한테 들은 야그가 겁나 재밌었는디, 그거 해줄게. 잉?”

오늘도 정순이에겐 깐깐한 선생님을 넘어갈 좋은 수가 있었고 그것은 늘 먹혔다.


“그라믄 오늘만 봐준다이. 얼른 이야기혀 봐! 히힛”


마루에 엎드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소녀는 학교는 함께 다니지 않았지만 여전한 단짝이었다. 미자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헤실헤실 웃으며 들어주는 정순이랑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했다. 정순이는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미자가 참 든든했다.


미자는 정순이를 여러 가지로 도왔다. 틈이 날 때면 집에 놀러 와 애기도 봐주고 반찬 만드는 것도 도왔다. 때로는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산수도 가르쳐 주었다. 꾸준하게 이어지기가 어려웠지만 정순이도 좋은 선생님의 애씀에 보답해 보려는 학생이었다. 미자가 한 번씩 채근할 때면 그날은 국어책을 들여다보며 찢은 달력 뒷면에다 문장을 따라 써보곤 했으니 말이다.


“정순아, 느그 집에 상추가 겁나 잘 자랐다야.”


“응, 안 그래도 너 오면 좀 따가라고 할라 그랬제. 봄배추로 된장국 끓여 먹은께 달큰하니 맛나더라. 그것도 좀 싸줄란께 가져가라이.”


느지막히 집으로 돌아가는 미자에게 상추며 봄배추며 열무 같은 것들을 가득 들려 보냈다. 그러고 보면 볼품없는 작은 터에서 푸릇한 채소를 수확하기 시작한 것은 정순이 덕분이었다. 터를 구역별로 나눠 정성스레 가꿨고 어느덧 텃밭 구색을 갖추었다. 그곳에서 상추며 부추며 파와 당근까지 온 식구가 먹고도 남을 만치 거둘 수 있었으니 가꾸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날은 포근하기만 한 것이 이상하리만큼 평화롭다 느껴지던 날이었다.


“동석아, 오늘 날씨가 겁나 좋다야. 그제?”


“응, 누나야! 우리 두꺼비집 짓자!”


정순이가 흙장난하는 동석이를 앞에 두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텃밭의 풀을 매고 있었다. 그때, 곧 떨어져 나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허름한 대문 밖으로 때 이른 인기척이 들렸다.


“창석이, 만석이 벌써 학교 갔다 왔냐? 땡땡이친 것은 아니 지야?”


“…….”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정순이는 흙을 털고 일어나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광주에서 식모살이하던 연순이 언니가 보따리와 함께 서 있었다. 바쁘다며 작년 추석과 올 설에도 못 내려왔었는데 기별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언니야! 우리 언니 진짜 맞는가?”


정순이는 오랜만에 보는 언니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와락 안겨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언니가 이상했다. 가타부타 대꾸도 없는 것이 꼭 뭐에 홀린 사람 같았다. 정순이의 반김에도 멍하니 서 있던 언니는 보따리를 들고는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정순이도 그 뒤를 따라갔다.


가만히 언니를 들여다봤다. 탐스러운 복숭아 열매처럼 보오얗던 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부성부성한 얼굴, 눈가는 시퍼렇게 멍 들었고 입술은 부어터져 있었다. 언니의 그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언니야! 무슨 일 있었는가? 얼굴은 왜 그란 거여?”


언니는 말이 없었다. 귀머거리가 된 건지 벙어리가 된 건지 초점을 잃은 눈빛이었다. 언니는 겉옷을 벗고 이불을 깐 다음 피곤한 듯 누웠다. 잠이 든 듯 누워있는 언니의 감은 그 눈 아래로 투명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언니야, 내가 엄니 모시고 올게.”


정순이가 나가려고 하자 흙장난을 치던 동석이도 따라 일어났다.


“누나― 나도 데리고 가아! 나도 나도―”


“금방 다녀올게! 자꾸 떼쓰면 누가 물어간다고 했지?”


“잉― 호랭이…”


“착하게 놀고 있어이. 얼른 엄니 모시고 올란께! 알았지?”


누나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순이는 대문을 나와 숨이 턱까지 차도록 뜀박질했다.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와 주워 신고는 또 달렸다. 한창 바쁘게 장사 중이던 엄마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뛰어오는 딸을 보았다. 엄마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눈짓했다.


“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언니가 집에 왔단께요!”


“온다는 말도 없었는디?”


“언니가 좀 이상해라.”


“……”


“언니가 얼굴이 막 시퍼렇게 멍들어서… 집에 와서는 뭔 말도 안 하고 누워서 울고만 있는디… 물어봐도 말이 없은께 겁이 나서 엄니한테 달려온 것 아니오.”


잠자코 듣던 엄마는 급하게 좌판을 접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급하게 집으로 뛰어가 방문을 열어 보았다. 언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연순아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제. 왜 누워 있는 것이여?”


엄마는 뒤집어쓴 그 이불을 벗겼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언니의 험한 몰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충격에 빠져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오메… 얼굴이며 몸이며 왜 그런 것이여?”


“흐흐흑… 엄니… 나 죽고 싶소.”


“오메메… 니가 왜 죽어야!”


죽고 싶다는 딸의 그 말에 순하고도 억척스레 삶을 버텨온 엄마가 무너졌다. 엄마는 속절없이 우는 딸아이를 두고 집을 나왔다. 그 부잣집에 식모살이를 소개해 주었던 광주 이모, 읍내에서 막걸릿집을 하는 동생에게 뛰어갔다. 점심 장사를 마친 막걸릿집은 한산했다. 이모는 사색이 되어 들어온 언니의 얼굴을 보고는 손에 쥐고 있던 그릇을 허둥지둥 내려놓았다.


“아야, 우리 연순이가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어서 인제 막 왔는디 애기가 뭔 일이 있었던 갑서야.”


한참을 망설이던 이모는 계속된 물음에 앞치마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연순이 그것이 그 집 사장님이랑 뭔 일이 있었던 갑서. 그것을 그 집 사모님이 알아서는…”


“뭐… 뭐라고? 우리 연순이가… 그 집 사장님이랑 뭔 일이 있었다고야?”


“언니야, 나도 연순이 그것을 그 집에 소개해서 지금 가운데서 얼매나 난감한지 안가? 아니 그것은 얌전하게 밥하고 빨래나 할 것이제…”


“그것이 시방 뭔 소리 다냐? 알아먹게끄름 똑똑히 말 좀 해봐야!”


“어린 것이 벌써 화냥기가 있어서 못 쓰겄대. 반반한 것만 믿고 벌써부터 몸을 함부로 굴리면 쓰겄는가? 언니

는 그것 교육 좀 단단히 해야 하겄대. 그 집 사모님이 머리 끄댕이 잡는다고 여까지 내려온다는 것을 말리느라 내가 아조 혼이 다 나가브렀네.”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는 하늘이 노래지며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했다.


“우리 연순이가 그럴 리가 없는디…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면 못쓰제! 머리채는 니가 잡혀야겄다! 이년아!”


어디서 그렇게 억척스러운 힘이 나왔을까. 이십 년 가까이 시장바닥에서 굴러먹은 손아귀는 동생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순하디순한 엄마는 시장판에 나섰지만, 장사를 하면서 단 한 푼도 속여서 받은 적이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을 해코지 한 적이 없었다. 그녀에겐 부모덕과 남편 덕이 없었을 뿐 양심에 떳떳하게 살아왔고 내 새끼들 나 몰라라 하며 살지 않았다.


막걸릿집에서 그 난리를 쳤지만, 엄마에게 남은 것은 이모의 머리카락 한 줌과 상처뿐이었다. 걸어오는 발걸음마다 암담함이 가득했다. 집에 도착하니 속없는 아들들은 엄마가 그저 장사를 일찍 끝내고 온 줄 아는 모양이었다. 장사가 잘되는 날이었을까, 손에 먹을 것이 들리진 않았나 자꾸 살펴보았다. 정순이는 누워있는 언니 옆에 앉아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엄마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엄마는 언니를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이나 바라봤다.


“니가! 뭣을 잘했다고! 그라고! 누워 있냐!”


갑자기 부아가 치민 엄마는 소리를 지르더니 언니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치우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엄니! 언니한테 왜 그라시오!”


갑작스러운 광경에 동생들은 겁에 질렸고 정순이만 실성한 듯한 엄마를 울먹이며 뜯어말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엄마는 그 말갛던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말았다.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볼품없는 등짝을, 온몸에 퍼져 있는 멍 자국들을 보고야 말았다. 그 모든 것을 본 엄마는 연순이와 함께 무너져 울음을 터뜨렸다.


“니가… 부모 잘못 만난 것이 죄제…”


“엄니… 흐흐흑… 지가 다 잘못했어라… 달거리를 몇 달째 안 하니 너무 겁나고 무서웠어라.”


“우리 연순이가 뭔 일이다냐… 흐흐흑”


그렇게 뒤엉켜 얼마나 울었을까. 격한 울음 뒤에는 평온과도 같은 쓸쓸한 고요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오늘도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지 귀가 소식이 없었고 다 울어버린 그들은 늦은 저녁을 차려 꾸역꾸역 삼켰다. 평소라면 한 그릇 더 달라고 했을, 뒤돌아서면 배고파하던 녀석들도 눈치껏 먹고는 각자의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좁은 방안에 여섯이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그렇게 그들의 무거운 밤이 느리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거르지 않던 시장엘 그날은 나가지 않았다. 대신 아침 일찍 언니를 챙겨 읍내에 있는 큰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에 다녀온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가 누워있는 방안에 뜨뜻하게 불을 때 주더니 장에서 비싼 소고기 한 근을 떠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아낌없이 다 넣어 미역국을 한솥 가득 끓였다.


“몸에 열난다고 차게 입지 말고… 옷 따숩게 입고 이불도 꼭꼭 덮고 있어라이. 그것이… 애기 낳는 거랑 똑같단다. 나중에 골병 안 날라믄 몸조리를 잘해야 쓴께 입이 써도 한술 떠먹어라.”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도 어느샌가 하나둘 지고 있었다.

언니의 열아홉 봄도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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