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햇살은 들었지만

by 라라

제5장 햇살은 들었지만



그해 가을, 추수가 시작되기 전에 연순이는 백 영감 아들과 선을 보았다. 나이도, 생김새도, 사는 형편도 어찌나 달랐던지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을 보러 나가 앉아 있는 그 다방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종복이의 허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절대로 감출 수 없었던 웃음과, 느끼하게 연순이를 핥던 그 눈빛에서 이들의 결혼은 절대로 물릴 수가 없겠다는 강압적인 예감이 들었다.


하루빨리 장가들고 싶던 종복이었으나 그들의 결혼을 엄마는 다음 해 봄으로 겨우 미뤘다. 겨울이 가기 전 두 집안은 상견례를 했고 길한 날도 받았다. 그리고 그 겨울, 연순이네는 허름한 오막살이를 떠나 연탄불이 들어오는 멀쩡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은 마당이라 당당하게 이름할 수 있을 만한 터가 있었다. 그 터에 허약했던 감나무도 옮겨 심으니 어울리는 게 볼만 했다. 방도 세 칸이나 되었다. 연순이네는 그들 부부가 쓰는 안방 하나에 아들과 딸 방까지 나눠 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연순이가 눈 질끈 감고 뛰어든 그 결혼 덕분이었다.


정순이는 언니 결혼을 앞두고 말도 못 하게 우울했다. 객지 살아 오래 떨어져 지냈던 언니와 이제야 함께 살려나 싶었다. 그 언니가 시집을 가게 된다니. 이제 영영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했다. 무엇보다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이 쓰렸다. 결혼을 준비하는 새 신부는 설렘으로 가득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단꿈에 젖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언니의 모습은 모든 희망과 기대를 내려놓은 노인 같았다.


“나, 종복이 왔네이.”


애가 닳은 종복이는 맞선을 본 이후로 하루가 멀다고 절뚝이는 그 다리로 연순이를 찾아왔다. 정순이는 언니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어 나가서 놀고 싶다고 떼쓰는 동석이를 달래 언니 옆을 꼭 지켰다. 그는 마루에서 언니를 앞에 두고 이글거리는 욕정을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새빨간 잇몸을 숨기지 않고 탐욕스럽게 웃는 모습이 꼭 동네 머저리 같았다. 그 앞에서 언니는 반가운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순이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결혼에 대해서 다시 묻지 못했다.


결혼을 앞두고 가장 신수가 훤해진 사람은 아버지였다. 소문난 한량에 놈팡이라 지금껏 누가 사람대접이나 해줬을까? 그런 그가 이름난 알부자 백 영감과 사돈을 맺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를 대하는 대접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늘 술에 절어 살았지만 술집에서라도 인물 잘난 큰딸 덕분에 목에 힘을 주고 위세 아닌 위세를 떨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연순이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명절, 설날이 되었다. 정순이 열여섯, 창석이 열넷, 만석이 열셋, 막둥이 동석이는 여섯이 되었다. 어찌 살아갈까 싶던 날이 엊그제인데 그 연순이네에도 세월이 흘렀고 그 보답으로 아이들이 자랐다. 설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난 엄마가 연순이더러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제 너 시집가면 그 노인들이랑 니 서방 모시고 그 집에서 할 일이 천지삐까리일 것이다. 오늘이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인께 너는 아무것도 말고 가만히 있그라.”


엄마는 명절 대목이라고 설 전날까지 허리가 부러지도록 생선을 팔았다. 뜨끈한 바닥에 등 좀 지지고 싶을 만도 한데 엄마는 시집가는 큰딸에게 마지막 떡국은 손수 끓여 먹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연순이는 별다른 말 없이 나물을 무치고 미리 부쳐놓았던 전을 지져 데웠다.


가난한 집에도 죽은 조상을 위해 바치는 차례상은 걸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차례를 지낸 후, 한 상에 모여 앉아 떡국을 먹었다. 먼저 떡국 한술 뜬 아버지가 새해 덕담을 했다.


“올해는 연순이도 시집을 가고 창석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지야? 중학교 들어가서는 인제 공부도 좀 해야 된다이.”


장남 창석이에게 건넨 덕담이었다.


“나는 중학교 안 다닐라요.”


창석이가 툭 대답했다.


“니, 육성회비 못 낼까 봐 그러냐? 인제는 그거 못 낸다고 느그 선상님들 쫓아오는 일 없을 텐게 걱정하지 말그라.”


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안 그랬소? 누님 팔아가면서까지 나는 학교 못 다닌다고.”


창석이는 오랜 결심을 뱉어냈다.


“뭣이! 느그 누나가 누구한테 팔려 간다고 그라냐! 잉?”


어버지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갑자기 성냈다.


“연순이 누나도 중학교 안 갔고, 정순이 누나는 국민학교도 못 나왔는디, 나라고 별 수 있겄소? 저쪽 마을 칠성이 아저씨 따라 댕김시로 일이나 배울라요. 이미 다 말해놨어라.”


칠성이는 공사판을 따라다니는 일꾼으로 페인트칠하는 기술자였다. 평소 종이만 있으면 끼적거리던 창석이가 그를 따라 페인트 기술을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느그들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학비고 뭐고 다 대준다는디 왜 안 간단 말이여!”


아버지는 창석이에게 돌연 화냈다.


“그런께 내가 안 간단 말이지라. 안 그래도 이쪽저쪽에서 누나 팔려 간다고 쑥덕인디 누님이 그 집에서 우리들 뒷바라지하고 있으믄 며느리가 이뻐 보이겄소? 나는 그렇게는 학교 안 다닌께 더는 말 마시오.”


마지막 말까지 뱉은 창석이는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기가 찬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눈길에 정순이가 잡혔다.


“정순이 너도 인제 다 컸은께, 올해부터는 돈 벌러 나가그라. 공장에 들어가든가, 식모살이하든가 해서 동생들 학교 보낼 생각 하그라.”


그 말에 동석이가 떡국을 떠먹다 말고 대꾸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일 안 하는 사람은 아부지 같은디…”


이어서 정순이가 대답했다.


“아부지, 지가 배운 것이 있어야 공장에도 들어갈 것 아니오? 어느 누가 국민학교도 못 나온 일자무식을 공장에서 써주겄소? 그라고 나는 식모살이는 절대로, 절대로 안 할라요.”


“연순이 아부지, 정순이 없으면 애기들 밥이며 살림을 누가 해준다고. 아직 동석이는 학교도 안 들어갔는디라… 그라고 이것이 철마다 장에 와서 장사를 도와준디 내가 이것 노는 꼴을 지금까지 보덜 못했소.”


엄마도 거들었다.


“와따! 집안 가장이 말 한디 애미부터가 말대꾸를 이리 해싸니 아그들이 뭘 보고 배우겄냐고! 집안에 질서가 아조 엉망이 고만! 엉망이여!”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문짝이 부서져라 차고 나가버렸다.

연순이가 처녀로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고 말았다.


시간은 탐진강물처럼 흘렀고 그렇게 봄이 되었다. 들에는 쑥과 냉이와 봄동들이 지천으로 올라왔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지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이 매서웠다.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이 참 요상스러운 날씨였다. 읍내에 새로 생긴 신식 결혼식장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날, 백 씨 영감네 다리 저는 아들이 장가를 갔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연순이는 누가 보아도 꽃다운 새 신부였다. 하지만 늙다리 종복이는 말끔하게 차려입어도 그 못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환이 즐비하게 세워진 결혼식장 앞에서 백 영감과 그 할멈은 하객들을 맞이하며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애를 녹이던 하나뿐인 아들을 이제야 장가를 보내니 오래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영감님은 인제 이쁜 며느리 들이셔가꼬 손주 볼 날만 기다리면 쓰겠소”


“인자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오늘부터는 두 발 뻗고 잘 수 있겄소. 허허”


동네 사람들이 백 영감에게 한마디씩 덕담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저들끼리는 다리 저는 노총각에게 예쁜 처녀가 팔려 간다느니, 연순이네는 돈줄을 잡았다느니 하며 수군댔다. 그 소리는 언니 시중을 들며 오가는 정순이 귀에까지 들어왔다.


신부 대기실에서 앉아 있는 연순이의 모습은 한 마리의 백조처럼 우아했다. 정순이는 언니가 아직 다 피지 못한 백합 같다고 생각했다. 대기실엔 강심이와 정순이 친구, 미자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결혼을 남 일처럼 대하던 언니는 동기들을 보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흐흐흑…”


“아야, 이 좋은 날 니가 왜 우냐…”


“내가, 내 인생이 하도 기가 막혀서… 그러제…”


친구들도 말은 이리했지만 언니를 달래며 저들도 손수건으로 눈을 찍어 눌렀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해서 신랑과 맞절하는 순간, 결국 그 눈물은 엉엉 통곡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두고 신랑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며 신부의 등을 두드리고 달랬다. 그 모습은 마치 아버지가 울음을 터뜨린 딸을 어쩌지 못하고 다독이는 듯했다.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배꼽이 빠지도록 재미졌고, 또 다른 이들에는 함께 눈물이 날 만큼 짠했다.


그 많은 눈물을 어떻게 그동안 참았을까? 그간 이악물고 참아왔던 설움을 한꺼번에 쏟아 버렸다. 고장 난 수도꼭지가 되어 다 쏟아냈더니 눈은 퉁퉁 불었고 결혼식은 끝나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말개졌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달래던 새신랑이 눈에 들어왔다.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그 하루가 그도 버거웠던지 고개가 자꾸만 연순이의 어깨로 꾸벅꾸벅 떨어졌다. 그의 얼굴을 자신의 작은 어깨에 쉬게 하며 얼굴도 쳐다보기 싫었던 종복이가 조금은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남자에게 인생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결혼,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기로.

그 눈물을 다 쏟고 나서 마음먹었다.

이전 04화04. 지키고 싶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