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어른의 맛

by 라라

제 6 장 어른의 맛


결혼식을 치르고 두 사람을 신혼 여행길로 보내놓은 날 밤, 백 씨 영감 부부는 큰 숙제를 해결한 것 같아 두 발 뻗고 편히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장가를 안 가 부모 속을 썩이던 아들이 소원해 마지않던 연순이와 짝을 지어주었으니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맞았다.


그러나 같은 밤, 정순이는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 옆자리에서 누워 자던 언니가 없으니 허전했던 것일까. 아니, 결혼식 내내 눈물만 쏟아내던 언니가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우리 언니. 그러다가 마지막 차에 오르면서는 퉁퉁 부은 얼굴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고쳐 짓던 그 언니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언니는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


같은 시각, 신혼여행지에 도착한 부부는 그제야 여관방에 들어섰다. 피곤한 하루였다.


“딸이랑 아부지가 같이 여행한갑네~”


“와따메! 뭔 말이라요? 지들 오늘 결혼한 신혼부부인디, 말이 쪼까 실례 되시구마이.”


여행을 다니는 내내 버스에서고 식당에서고 그들을 부부로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앳된 연순이와 나이보다도 더 들어 보이는 종복이. 그들은 아버지와 딸, 혹은 삼촌과 조카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운 여자를 향해있는 늙은 남자의 느끼하고도 집요한 눈빛을 감지하고선 그들이 아무래도 이상한 관계임을 눈치챘다. 여관방에 들어오면서도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함께 열쇠를 건네받았다. 연순이는 얼굴이 홧홧해질 만큼 모든 것들이 느껴져 숨고 싶었으나 첫날밤이 그저 기대될 뿐인 신랑은 머저리 같은 잇몸을 훤히 드러냈다.


여관방에 단둘만 있게 되자 연순이는 더럭 겁이 났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머리가 백지장이 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종복이의 느글거리는 눈빛을 외면하며 바닥을 보고 앉아 애꿎은 치마만 만지작거렸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종복이 소주병과 잔을 소반 위에 올렸다.


“연순이도 한 잔 할텨?”


“아… 아니요. 저는 술은 못해서라.”


“그래도 한 잔 받아 보제.”


그는 연순이 앞에 있던 잔에 술을 따랐다. 연순이는 그 잔을 받아넘겼다.


처음 맛보는 술.

화하고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훑고 저 창자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쓰다.

이게 바로 어른의 맛인 걸까.


종복이는 술 한잔에 얼굴이 발그레해진 연순이를 앞에 두고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연순이가 오늘의 안주였다. 술 한잔 마시고 한번 쳐다보고, 또 한잔 마시고 한번 쳐다봤다. 그토록 기다렸던 오늘이 안주가 되었으니, 그에게 소주가 달고 또 달았다.


그러다가 예고도 없이 달려들었다. 성난 짐승이었다. 그 짐승은 자비 없는 손길로 더듬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냈다. 지난날 식모살이, 잊고 싶었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거친 손길 안에서 얼어버린 그녀는 저항도 없이 무너졌다.


입술 위로 역한 소주 냄새가 훅, 하고 끼쳐왔다. 목을 따라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훑고 내려가는 뜨거운 입술. 연순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리고 이 몸에 새겨진 더러운 상처들도 이 짐승의 흔적으로 사라져 버리기를. 굶주린 포식자처럼 한참을 핥고 빨고 마시던 그. 그 아래에서 남몰래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던 그녀. 그러고서도 주린 배가 다 채워지지 않은 그는 그 밤 내내 몇 번이고 탐하고 또 탐했고, 그때마다 연순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지난날의 치욕과 조금도 다름이 없던 그들의 첫날밤이 더운 신음과 흐느낌으로 한데 엉켜 흘러갔다.

신혼여행을 하고 온 후, 시어머니에게 집안 살림을 배웠다. 어린 나이부터 식모살이를 했기에 그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부모님 앞에서건 동네 사람 앞에서건 끈적끈적한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남편이 부담스러웠다.


“에라이, 이 머저리 같은 놈! 그러다 연순이 닳겠다, 닳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때리며 한마디 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걸 나보고 어짜란 말이요. 나는 장흥 바닥에서 우리 연순이보다 더 이쁜 여자는 보덜 못 했는디. 내 색시가 젤루 이쁘구만! 내 색시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지껄이는 그는 뭐하나가 부족한 사람 같았다. 잠시라도 연순이가 혼자 있을 때면 그때를 노려 그의 투박한 손이 여지없이 그녀를 탐했다. 연순이의 남자가 되고서도 애가 닳은 그는 자꾸만 틈을 비집고 들었고 그 손길이 스칠 때마다 자꾸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러니 체력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시집간 언니가 걱정된 정순이가 동석이의 손을 잡고 백 씨네 집으로 들어섰다.


“언니야, 장에 왔다가 언니 보고 자파서 왔네.”


“응, 밥은 먹었냐?”


동생의 기척에 부엌에서 나와 반기는 언니의 얼굴이 결혼식 때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응, 폴새 먹었제. 아까 엄니랑 보리밥집에서 먹었네. 언니는 요즘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제?”


정순이는 걱정스레 말했다.


“응, 글제. 아저씨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다 주고… 시어머니랑 시아부지도 날마다 좋은 거 갖다 주신께…”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근디 얼굴이 왜 그라고 못쓰게 되았어? 누가 보믄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이라 하겄네. ”


“인제 결혼 했는디 아무래도 적응하는 데 시일이 걸리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 나는 창석이가 더 걱정이다야.”


동생의 걱정을 물리치고 창석이에 대해 물었다. 지난 설에 중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한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일이 걱정되었다.


“잉. 창석이가 아부지랑 계속 실랑이하다가 인자는 중학교 다니고 있제. 절대로 언니 집에서 준 돈은 안 받는다 해서… 엄니가 사정사정했제. 아부지도 속이 좀 드셨는가 뭔 일로 논일을 다닌당께. 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겄지만…”


“그거 잘된 일이구만. 아부지가 일 안 하시믄 내가 아저씨한테 아그들 학교는 보내 달라고 할라니께 너무 걱정하지 마러.”


“뭔 소리 단가. 언니나 그런 것 하나도 걱정하지 마소. 잠도 잘 자고 맛난 것도 많이 먹고 해서 살 좀 올라야제. 얼굴이 영 못 쓰겄네. ”


정순이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들어오자 어색해져 그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서부터 처제와 처남을 알아본 형부가 손을 흔들며 기분 좋게 다가왔다.


“형부, 저 이제 막 언니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어라.”


“응, 그런가? 나는 요새 연순이가 통 입맛 없다고 해서 참외가 나왔다길래 사서 들어가는 길이네. 연순이 참외 좋아하제?”


“언니가 어릴 때부터 참외는 없어서 못 먹었지라. 참외 귀신이어유.”


“그런께. 내가 연순이 고것이 참외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제. 참외 많이 샀는께 이거 한 봉지는 처제 가져가.”


형부는 웃으며 정순이에게 봉다리 하나를 건넸다. 작은 처남 동석이에게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었다. 이제 돈이란 것을 알게 된 동석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공손한 태도로 받고 감사합니다, 인사도 잘했다. 입이 찢어져라 웃는 형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름이 가득 잡혔다. 다음엔 새로 생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형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좋은 것 같은디…’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뒷맛이 썼다.

정순이와 동석이가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 탐진강 위로 은어가 뛰는 걸까,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위로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모습이 별똥별 같다고 생각했다. 저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짙게 올라오는 모습에 마음이 일렁였다. 그때, 덕철이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왔다.


“아야, 아야! 정순아! 크… 큰일 났다이. ”


아저씨의 말에 정순이는 덜컥 소름이 끼쳤다.


“뭔 일이다요?”


“느… 느그 아부지가, 논에서 일하다가 쓰러지셨어야. 급한 대로 사람들이 이고 백병원에 갔는디 어짜 쓸란가 모르겄네이.”


“어짜다가 쓰러지셨다요?”


“그것을 모르겄다야. 점심때 새참으로 막걸리도 한잔 맛나게 드시더만. 생전 일 안 하던 양반이 몸을 써서 그랬던가. 인자 연순이도 시집 갔응께 정신 차리겄다고 술도 딱 한 잔만 드시더란 마다. 근디 갑자기 어지럽다믄서 쓰러지셨어야.”


“그냥 술에 취한 것은 아니고요?”


“술에 취한 것이면 그것을 모르겄냐. 느그 아부지가 막걸리 한잔으로 취할 사람도 아니고. 그것이 아니더란께. 여튼간 동네 사람들이 병원에 모시고 갔응께 너도 얼른 한번 달려가 봐라.”


“아… 알았서라. 엄니는 아실란가요?”


“잉, 아마 그럴 것이다. 아까 창석이랑 만석이 집에 있길래 엄니한테 말씀드리라고 했은께 병원으로 바로 가셨을 것이다.”


정순이는 동석이를 옆집 콩새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그 길로 백병원까지 뛰어갔다. 응급실 앞에는 눈가가 붉어진 엄마와 굳은 표정의 창석이, 만석이가 앉아 있었다.


“엄니, 아부지 뭔 일이다요?”


“응. 아부지가 정신은 깼는디… 말을 전혀 못 하고 왼쪽으로는 마비가 왔어야.”


“말을 못 하신다고요?”


“그런께 말이다. 병원에서 좀 더 지켜 보잔께… 기다려 봐야제. ”


의사가 다시 한번 다녀갔고 아버지가 중풍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저세상 사람이 됐을 거라는 말을 듣고 힘없이 축 늘어져 바늘을 꽂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언젠가는 산처럼 커 보이기도 했고 호랑이처럼 무섭기도 했고 신물이 나도록 밉기도 했던 사람.

그 사람이 병실의 좁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지금 저 작고 허약한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아버지가 맞는 걸까.

이토록 약한 존재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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