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봉숭아 물든 마음끝에
아버지는 보름 남짓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하지만 중풍이라는 것이 그렇듯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었다. 엄마는 사흘도 안 되어 퇴원 시키려 했지만 사위의 만류로 보름을 채울 수 있었다.
의사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재활을 위해 부지런히 운동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라고 했다. 퇴원한 아버지는 꽤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정순이도 그 옆에서 열심히 거들었다.
“아부지, 힘들어도 계속 움직이고 걷는 연습도 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하신 거 들었지라?”
“으으으”
나이가 들었어도 그 잘생겼던 아버지. 풍을 맞고 입과 눈이 못나게 비뚤어지고 발음마저 어눌해졌다.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왼쪽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하지만 쉴 새 없이 침을 흘러 손수건으로 때마다 닦아 줘야 추잡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리에는 힘이 없어 제대로 된 거동이 어려웠다.
엄마가 장에 나가 생선을 팔아야만 여섯 식구가 먹고 살 수 있었다. 창석이, 만석이는 학교에 다녔으니,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은 오롯이 정순이 몫이었다. 동석이가 이제 좀 커서 수월해질 만하니 아버지의 병수발이었다.
갑자기 노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마른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껴 부축하며 정순이는 아버지가 미웠던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약해진 아버지의 젊은 날이 그리웠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부르던 구성진 가락의 진도 아리랑이나 육자배기를 다시 듣고 싶었다.
한참 마당을 느린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정순이가 물수건으로 그 땀을 닦아 드릴 때였다. 옆집의 콩새 할머니가 담 너머로 지켜보다 훈수를 두었다.
“아야이, 정순아! 저 짝에 서동길이한테 가가꼬, 자라 한 마리 사서 아버지 잡수시게 하란 마다!”
“안 그래도 엄니가 말씀하셨어라. 좀 이따가 한번 가 볼라고요.”
지지리 복도 없는 콩새 할머니. 젊어서는 개차반 같은 남편 때문에 그 고생 다 하더니 그 남편이 이제는 늙어서 중풍에 들었다. 그래도 콩새 할머니는 그가 밉지도 않은지 리어카에 싣고 따글따글 잘도 다녔다. 할아범이 풍 맞은 지 올해로 삼 년째, 자라를 여러 번 고아 먹였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콩새 할머니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늘은 정순이가 자라를 사러 갈 참이었다.
“아부지, 저 윗마을 서동길 씨 댁에 좀 다녀올께라. 동석아, 아부지 심부름 좀 하고 있어이. 누나 얼른 갔다 올란께.”
동석이가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아이는 도깨비라며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 옆으로 가지도 못했다. 이제는 적응이 된 걸까. 얼른 나으시라고 작은 손에 힘을 주어 다리며 팔을 정성스레 주물렀다. 그러고 보면 동석이는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야 술에 취하지 않은 그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얼굴이 비뚤어져 잘생김은 사라졌지만 어쩌면 동석이는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눈길에서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순이는 엄마가 새벽녘에 준 돈을 챙겨 서동길 씨 댁을 찾아갔다.
“아저씨, 정순이 왔어라. ”
“오냐, 아버지는 좀 괜찮으시냐?”
그물에서 말라붙은 물풀과 피라미 새끼들을 떼어내던 아저씨가 일손을 멈추고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예에. 그저 열심히 걷기 운동하고 계시지라.”
“그렇구만. 얼른 좋아지셔야 할 것인디. 그것이 참 어렵더라이.”
“그런께요… 아저씨,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자라 좀 잡은 거 있나요?”
“으응, 안 그래도 느그 엄니가 자라 얘기 해싸서 남겨놨제.”
자라가 없었더라면 잉어나 사서 갔을 텐데, 남았다니 다행이었다. 아저씨는 탐진강에 나룻배를 띄워 투망이나 그물을 쳐 민물고기 잡이를 했다. 심심치 않게 걸려든 자라는 날이 더울수록 찾는 이가 많았다. 기력 회복에 자라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 자라를 푹 고아 용봉탕을 한 솥 끓여 아버지께 드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란디 정순아, 느그 집 창석이는 학교 안 다닌 갑서야?”
자라를 양동이에 넣고 붕어 새끼들을 한 바가지 더 챙겨주시던 아저씨가 물었다.
“창석이 읍내에 있는 중학교 다니고 있는디라? 오늘도 학교 간다고 도시락 싸서 나갔어라.”
“아닌디? 내가 엊그제도 창석이가 칠성이랑 같이 있는 것을 봤더란 마다. 분명히 창석이었어야.”
“어디서 보셨소?”
“저 짝 보건소 옆에 건물 올라가는 데 있냐? 거기서 노가대하고 있든만. 꽤 오래되았어. 너는 여태껏 몰랐던 말이여?”
“예?”
아저씨의 말을 듣던 정순이는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졌다. 아침저녁으로 교복 잘 입고 다니던 창석이가 학교를 안 갔다니, 말도 안 된다 싶다가 밤만 되면 잠을 안 자고 마당 수돗가에서 빨래하던 창석이가 스쳐 지나갔다. 아저씨 말대로 창석이가 결국 칠성이 아저씨를 따라다니는 것일까? 벌써 수일이 지났다고 하니 마음이 무직하게 내려앉았다.
‘이것이, 나는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닌 학교를 왜 안 다닐라는 것이여!’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오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집에 와보니 언제 왔는지 언니가 동석이와 함께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반듯한 이마 아래로 이어지는 연한 복숭앗빛의 두 뺨, 머루 같은 눈망울 사이로 조화를 이루는 오똑한 콧날, 결혼을 해도 어리디어리며 곱디고운 연순이. 그 고운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시집가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쓰러진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출가외인이라고 친정집을 자주 들여다볼 수 없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정순이는 언니에게 동석이와 아버지를 그대로 맡기고 부엌에 들어와 재료를 손질해 용봉탕을 끓였다. 그러면서도 창석이 생각에 부글부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나 보다. 부엌을 오가던 언니는 동생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음을 눈치챘다.
“정순아, 무슨 일 있다냐? 니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여.”
“창석이 말이여. 그놈이 학교를 안 가고 칠성이 아저씨랑 노가대 다닌다잖여.”
“그것이 뭔 소리여. 아버지랑 다 야그 끝난 것 아니었어?”
“그런께. 오늘 창석이 들어오면 어찌케 된 일인지 들어봐야겄어. 아부지도 아프신디 장남이란 놈이 이런께… 나는 배우고 자파도 못 간 학교를 왜 안 다닐라는 건지 도대체가 모르겄당께.”
연순이도 동생의 말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 목이 빠지게 각시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에 더 머무를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친정집을 나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연순이는 창석이가 정말 왜 그럴까, 걱정이 되었다.
철커덩―
“아얏!”
넋을 빼놓고 걷던 연순이가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자전거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자전거의 청년은 얼른 일어나 까진 무릎의 흙을 조심스레 털어주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속도를 미리 줄여야 했는데…….”
청년은 연순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주면서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쌍꺼풀은 없으나 맑고도 큰 눈이 명석해 보이는 남자.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처음 듣는 서울 말씨에 까진 손바닥이며 무릎이 아프면서도 문득 궁금했다.
“어디까지 가나요? 그곳까지 들어줄게요.”
중저음의 서울 말씨가 자꾸만 달큰하게 감겨왔다. 연순이에게도 심장이 있었던 걸까. 생전 처음 뛰는 사람처럼 쿵, 쿵 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아… 아니어요. 저… 혼자서 갈 수 있어요… ”
남자의 서울 말씨를 따라 사투리도 사라졌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젓는 볼이 봉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무… 무릎이 깨져서 짐 들기가 어려울 거예요. 가는 곳까지 들어줄게요.”
청년도 자전거로 안겨 온 아가씨에게 사로잡히고 있었다. 복숭아 같기도 코스모스 같기도 한 여인이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청년은 기어코 짐을 뺏어 그 자전거 뒤에 얹었다.
“그러면 저쪽 다리까지만… 들어 주세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연순이 수줍게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박자에 맞춰 춤을 추듯 나란히 걷는 그들. 청년은 은은한 복숭앗빛 향기에 취할 것 같았다. 그러다 곧 다리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하다니, 시간은 왜 이럴 때만 빠르게 흐를까.
“저는 이제 가볼게요. 고마웠어요.”
연순이는 짐을 뺏어 들고 총총 걸어갔다.
청년은 그녀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이름조차 묻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일렁이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