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실처럼 감긴 이름
그로부터 며칠 후, 여름은 한층 더 짙어가고 있었다. 신랑 종복이는 시아버지와 함께 물길을 트려고 윗마을에 갔다. 날씨가 더워져 논이 마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꾼을 써서 일했지만 그것을 남에게 온전히 맡기지 않고 꼭 보고 살피는 백 씨 부자였다. 백 영감댁네 논이며 밭은 셀 수 없이 많았으니 윗마을 논이라도 한 바퀴 다 돌려면 하루가 종일 걸렸다.
백 씨네는 장흥의 부자들 가운데서도 제법 실한 알부자였다. 대대로 농사꾼 집안이었기에 늘 흙과 노동을 가까이했고 함부로 쓰거나 과소비하지 않았다. 종복이도 아버지의 성품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지금껏 땀 흘리며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백 씨네의 행색만 보아서는 부자라고 짐작하는 이가 없었는데 이것은 오히려 사업 운영에 더 좋은 점으로 작용했다.
백 씨네가 지역의 유지로 가문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비옥한 토지 덕분만은 아니었다. 이들 핏줄에서 이어지고 있는 근면과 성실함의 힘이 더 컸다. 게다가 백 씨 영감은 사업수완이 좋았다. 장터 한복판에서 운영하는 쌀가게는 오가는 이들에게 사랑방처럼 열려 있었다.
백 씨는 그곳에서 들은 소문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그의 예리한 감각은 번번이 대박을 터뜨리는 투자로 이어졌고 콩알 같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재산이 모이면 다시 주변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땅 부자가 되어있었다.
백 씨는 그 많은 땅을 혼자서 관리할 수 없었고 그의 땅을 빌려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자연히 쌀가게에도 사람들이 더 몰렸다. 곧 그곳은 장터의 사랑방을 넘어 일자리 주선의 장소로 발전했다. 이것이 백 씨네가 일자리 소개소를 운영하게 된 그 시작이었다. 소개소는 점점 더 확대되었다. 근래에는 주변의 공사장과 논밭일이 백 씨네 손을 거치지 않기가 드물었다. ‘백 씨네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백 영감도 이제 나이가 들어 직원을 몇 두고 쌀가게를 소일거리 삼아 운영했다. 그 밖의 굵직한 일은 모두 종복이 몫이었다. 원체 밝고 강단 있는 성품 덕에 종복이는 그 모든 일을 야무지게 해냈다. 그래서 힘 있고도 바쁜 그의 절뚝거림은 오히려 그의 강한 존재감이었다.
연순이는 저녁거리를 핑계 삼아 장에 나섰다. 엄마도 보고 오자며 골목길을 나섰다. 요 며칠 연순이는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톡, 하니 터져버릴 봉숭아 꼬투리처럼 가득 부풀어 있었다. 자꾸만 울렁울렁, 뱃멀미가 나는 것도 같았다. 우연히 마주쳤던 그 남자 때문이었다. 며칠 전 놀러 온 강심이와 수다를 떨다 듣게 된 소문에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연순아, 위정남씨 댁 알지야? 그 집 외손주가 이번에 내려왔더라.”
“그래?”
“그 집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졌잖애. 평소에 그렇게나 아끼던 손주였다더라고. 서울에서 학교 다닌디, 이번에 뭔 야학 봉사를 한다나 뭐래나…”
“서… 서울?”
지나가는 말로 듣고 있던 연순이가 ‘서울’이라는 말에 그 서울 말씨를 쓰던 청년이 생각나 버렸다.
“이름이 유찬하라던가? 이름도 멋지지 않냐? 벌써 동네 애기들이 서로 점찍고 난리가 나브써야. 생긴 것도 훤칠하게 잘 생겼드라.”
유찬하.
단지 이름일 뿐인데 그 이름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부분만 도려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에겐 신랑이 있잖아…’
연순이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자꾸 싱숭해지는 마음을 달래려 장터로 향했다.
같은 시각, 유찬하 역시 연순이를 마주친 그날 이후로 둥둥 떠다니는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와 부딪혔던 그 골목부터 탐진강 다리 너머, 그녀의 그림자가 사라진 곳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전거를 타고 맴돌았다. 반듯한 이마에 오똑한 코, 짙은 속눈썹 아래로 머루 같은 눈. 그녀를 만났던 것이 꿈은 아니었을까. 며칠 동안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가 탔다. 신기루였던 걸까. 헛것에 홀렸던 걸까.
처음엔 외갓집에서 쉬면서 야학 봉사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복숭아같이 말간 그녀를 마주한 이후 혹시나 그 얼굴이 잊힐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 쉽게 가라앉을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타는 며칠이 지나고 할머니의 부탁으로 우체국에 들렀다 가는 길이었다. 찻길을 건너던 그의 눈에 저 멀리서 야채를 살피던 그녀가 들어왔다.
‘설마!’
찬하는 눈을 비볐다. 떴다가 감았다, 다시 떴다. 이제는 헛것마저 보는 걸까 싶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날의 그녀였다. 그토록 그리던 그 얼굴이었다.
어딘가로부터 쏘여오는 따가운 시선에 연순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쳤다. 유찬하. 서울에서 야학 봉사를 하러 왔다는 자전거의 그 남자. 그는 수려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연순이를 향해 걸어왔다.
‘설마, 나를 보고 웃는 걸까?’
연순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시장의 소란스러움이 흐릿한 배경처럼 뒤로 물러났다.
시끄러운 상인들의 흥정소리,
닭과 돼지의 울음,
사탕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
그리고 뻥튀기 기계가 ‘뻥!’하고 터지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그 순간 정지된 듯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연순의 귓가엔 오직 자기 심장 소리만 쿵, 쿵, 들렸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다. 연순이는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가 오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급한 걸음으로 뒤쫓아왔다. 골목 어귀에서 결국 연순의 팔이 그에게 붙잡혔다. 연순이는 고개를 숙이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해요, 놀랐죠? 저번에 그 자전거… 기억나죠?”
“네에…”
찬하는 숨을 고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놀란 듯 달아나던 그녀. 찬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다급함이 올라왔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때 다친 곳… 괜찮은지 걱정됐어요. ”
찬하는 연순이의 무릎과 손바닥을 살펴봤다. 연순이는 말없이 손바닥을 뒤집어 그에게 보여줬다. 찬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고 살폈다.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걸까? 그가 그녀에게 남겼던 상처가 어느덧 희미해져 있었다.
“벌써 다 나았군요. 다행이에요. 저… 서울에서 내려왔거든요. 이 근처에서 야학 봉사를 하려고. 그런데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네에…”
“부탁 좀… 해도 될까요?”
“…….”
‘부탁’이라는 말에 의아해진 연순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혹시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을까 해서요. 아무래도, 나보다는 그쪽이 더 잘 알 것 같아서.”
연순은 자신의 손이 아직도 그의 손안에 잡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곤 천천히 손을 빼내 허리춤 뒤로 감추었다.
“야… 학이요? 동생이랑 친구 동생들이 있어요. 말해 볼게요.”
찬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시원해져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길게 들어보는 그녀의 목소리가 산속에서 흐르는 시냇물 같았다.
“정말요? 고마워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었는데… 잘됐어요. 실례지만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은 유찬하에요.”
찬하.
이미 알고 있었던 그 이름을 그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연순.
“제 이름은 연순이에요. 이연순.”
“연순… 연순. 이연순. 하하하.”
찬하는 연순의 이름을 되뇌다가 이유 없이 웃었다. 연순은 시원하게 웃는 그를 한 번 더 쳐다봤다.
“아, 아니. 이름도 예뻐서요. 이름도. 하하. 연순 씨, 그러면 우리 서로 이름도 아니까 친구예요. 친구.”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예쁘다, 라는 말이 본인 보고 예쁘다, 한 것 같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보통 이때 장에 오는 거예요?”
“네… 저녁거리 사야 해서. 근데…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연순이 꼭 새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이 작은 새를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찬하의 심장 한쪽이 저릿했다.
“미안해요. 오래 붙잡아 둬서… 다음에, 다음에 만날 땐 도망가지 않기! 알겠죠? 여기엔 친구도 없어서 정말 외롭다구요. 연순 씨가 처음 생긴 친군데…”
“네…”
찬하는 마음이 다급해져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제야 피식 웃는 연순. 오늘 한 걸음 다가갔으니 다음에 또 한 걸음 다가가면 되겠지.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연순은 사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아득해져 빈 바구니를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그 남자의 온기, 목소리, 눈빛… 수려한 얼굴에 시원하게 새겨지던 그 미소.
‘유찬하’
그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연순은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미 알고 있던 이름이었는데도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보이지 않는 실로 심장을 칭칭 감는 기분이었다.
‘아, 바보 같은 생각 하고 있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다시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럼, 왜 이렇게 자꾸 떠오르는 건데?’
누군가 그 다짐을 비웃기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들이 잡히지 않은 공처럼 계속 마음속을 튀어 다녔다. 친구라고 했으니 인사 정도는 괜찮을까? 왠지 다음에도 이어질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부정하고 싶은 기대감. 장을 나설 때보다 더 심란해져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정순이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장 보러 다녀온 거여?”
“으응. 엄니 보러 간다는 걸 깜빡하고 그냥 왔네이.”
“안 그래도 엄니가 언니 기다리던디. 근디 왜 장바구니가 빈 통이란가?”
그제야 연순이는 손에 들린 빈 바구니를 보았다.
“아 그러게. 내가 돈을 안 들고 나갔더라…”
“참, 언니도 바보 같을 때가 있네. 엄마한테 가서 잠깐 빌리면 되지.”
“그러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정순이는 작은 실수 하나에 얼굴이 발그레해져 당황하는 언니가 참 싱겁다며 웃었다.
“근디, 정순아.”
“응?”
“너… 혹시, 야학 가볼래?”
“야학? 서울서 누가 한 명 내려왔다더만. 그건 왜?”
“장에 갔다가 그 선생님을 만났거든. 동네에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있으면 알려달라더라고. 너도… 니 친구들도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아아, 안 그래도 한번 가보려고 했어. 저녁에 하는 거니 애들한테 아부지 잠깐 봐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아서.”
“으응, 잘 생각했다이. 너도 공부해야지.”
“언니는? 언니도 공부하면 좋잖아. 형부한테 말하고 잠깐 나오면 안 돼?”
“나는… 니네 형부가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정순이는 언니도 같이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한 언니가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좀 아쉬웠다. 정순이는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연순이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장터에서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다음에 만날 땐 도망가지 않기!’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가 자꾸 마음속을 톡톡 건드렸다. 왜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걸까.
바람이 붉게 물든 하늘을 타고 살며시 불어오자, 연순이 마음도 괜히 간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