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 장 한 여름의 솜사탕
읍내의 작은 교회에서 야학이 열렸다. 찬하를 비롯한 동네 청년들이 모여 봉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이면 나이든 학생 앞에 섰다. 구색은 갖추지 못했지만 가르치려는 열정과 배움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곳보다도 뜨거웠다.
야학의 이름은 별빛 학교였다. 사람들은 별이 뜨는 시간에 모여 글을 배웠다. 늦깍이 학생들의 눈빛은 별보다 더 반짝였다. 글자를 몰라 늘 움츠러들었던 어른들도 편지 한 장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앉아 공부했다. 낡은 책과 연습장, 그리고 연필뿐이었지만 그곳에는 배움이라는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정순이도 별빛 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밤에는 동생들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공부를 하러 나갔다. 미자는 근처 여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정순이와 함께 야학에 나갔다. 별빛 학교에 잘생긴 선생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미자처럼 나와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잘생긴 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그러다 ‘이정순’이라는 이름을 부르고는 피식 웃었다. 왜 그랬을까? 자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가만히 오더니 정순이에게 물었다.
“혹시… 정순이 너, 언니 있니?”
“네… 어떻게 아셨어라?”
“혹시 언니 이름이 뭐야?”
“제 언니 이름은 이연순인디요…”
“아, 이연순. 이연순. 맞구나!”
“네? 혹시 선생님이 우리 언니한테 야학 말해주신 그 분이시단가요?”
“아, 맞아. 나야.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보자.”
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순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지나갔다. 선생님이 지나가자, 옆에서 이를 가만히 보고 있던 미자가 물었다.
“야, 저 선생님이 어떻게 느그 언니를 안다냐?”
“언니가 장에서 야학 얘길 저 선생님한티 들었다던디?”
“야, 방금 저 선생님, 느그 언니한테 반한 거 아니여? 언니가 시집만 갔을 뿐이지 누가 봐도 너무 이쁘잖어?”
미자는 선생님 쪽을 힐끗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야! 소설을 써라 아주 소설을 써! 머리에 무슨 똥만 찬 애기처럼 왜 그런다냐?”
“아~ 왜에~ 그럴 수도 있지 않겄냐고~”
“야! 공부하는 데서 그런 말 할 거믄 너는 오지 마! 학교도 댕기믄서 선생님 얼굴 쳐다 볼라고 오냐?“
정순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왜 자꾸만 언니의 발그레한 뺨이 생각 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연순이에게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는데 기다리던 비 소식이 없어 시아버지와 남편이 논일을 보느라 더욱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 많은 땅을 본인들이 다 관리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땅을 빌려주기도 하고 일꾼들을 사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날이 가물어가니 직접 나가 살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 시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일하는 사람들의 새참을 챙겼다. 하지만 종복이는 연순이가 닳을까 하여 절대 그 근처로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것이 색시를 아끼는 자기만의 방법이었다. 연순이는 더운 날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하고 들어올 남편과 시부모를 위해 맛있는 저녁상을 차릴 요량으로 장에 나섰다.
“연순 씨!”
익숙한 목소리가 발길을 잡았다.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고 했던 그 목소리, 그 사람. 부정했던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연순이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선 신발만 쳐다보았다.
“에이, 뭐예요. 그게… 우리 이제 친구라고 했잖아요. 친구면 인사해야죠!”
“아, 네… 안녕하세요. ”
“저는 안녕해요! 덕분에 야학에 사람들이 많이 왔거든요. ”
그의 얼굴에 쾌활한 미소가 햇살처럼 부서졌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조근거렸다.
“고마워요. 꼭, 말하고 싶었어요. ”
꼭, 이라는 그 말에서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찾았다.
“장에 가는 거죠? 나도 지금 장에 가는 길이에요. 할머니께서 아주 이것저것 사 오라고 하신 게 많아서. 하하”
“…….”
“연순 씨, 같이 장 봐요. 아직 여기가 낯설어서 어디서 뭐 파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연순 씨가 좀 도와줘요…”
찬하는 또 달아나 버릴 새 같은 그녀를 붙잡았다. 할머니의 심부름도, 사 오라고 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그저 붙잡고 싶었다. 그녀 옆에서 조금만 더 걷고 싶었다.
“아, 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장 다 보고 맛있는 거 사줄게요!”
찬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연순은 슬쩍 찬하를 올려다보며 그가 솜사탕 같다고 생각했다. 한입 넣으면 너무나 달콤한 맛으로 금세 스르르 사라져 버리는 그 솜사탕.
“정순이가 연순 씨 동생… 맞죠?”
무슨 이야기를 꺼내볼까 머리를 굴리던 찬하는 정순이를 꺼냈다.
“아, 정순이 봤어요? 맞아요. 동생 잘 부탁해요. 정순이가 고생만 많이 해서…”
이 여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녀의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내가, 잘할게요. 걱정하지 마요.”
그 말이 꼭 연순이에게 잘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둘은 시장 구석구석을 다 돌고도 또 돌았다. 찬하가 사겠다고 우겨 식혜도 한잔 마셨다. 그랬더니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찬하의 두 손에는 살 필요가 없던 물건들이 가득 들려있었다. 오늘 이것을 들고 가면 할머니께서 무슨 말을 하실까 싶다가 그저 지금 이 순간, 연순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것 같았다.
“저…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녀는 이번에도 착실하게 마감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조급하지 말자,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기로 했잖아, 다급해지는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짐을, 연순 씨 집까지 들어주면… 안될까요? 무거워 보이는데.”
“아, 아니에요. 혼자 갈게요.”
주저하면서도 단호히 그의 친절을 거절했다.
“그럼… 우리 또, 만날 수 있어요?”
지금껏 가득했던 미소를 단숨에 거둔 그의 얼굴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
그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는 연순이 또 신발만 쳐다보았다.
“아이, 왜 또 그래요. 저 가끔 강변 산책하거든요. 여기 경치, 진짜 좋더라구요. 다음에 같이 산책이나 할까 하고 꺼낸 말인데…”
“…….”
“에이, 친구 부탁 안 들어줄 거예요? 내가 이래 봬도 정순이 선생님인데?”
찬하는 정순이까지 들먹이며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 알겠어요. 다음에… 같이 가요.”
“와아! 정말이죠? 약속했다! 그러면 다음에는 나랑 장도 보고, 강변도 걷기로!”
찬하는 그녀의 확답을 듣고서야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 얼굴을 보는 연순의 심장이 곧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 심장 소리가 혹시라도 찬하에게 들릴 것 같아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네… 저, 그럼 이만. ”
연순이는 겨우 대답을 꺼내놓고 바쁜 걸음으로 뒤돌아 그에게서 멀어졌다. 찬하는 사뿐사뿐 멀어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달려가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녀가 다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걷는 내내 연순이는 자꾸만 방망이질하는 심장 때문에 어지러웠다.
‘내가 잠깐 미쳤을까? 왜 그 말에 약속을 해버린 거지?’
그와 걸을 때는 그저 소풍이었는데 혼자 남게 되니 이유 모를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유 모를 죄책감이 그녀 마음을 옥죄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늦게 들어올 줄로 알았던 종복이가 마당 평상에 앉아 있었다. 종복이는 연순이를 보자 절뚝이며 다가왔다.
“연순아, 어디를 그렇게 다녀온 거여? 너가 하루 종일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야. 와따메, 뭐를 이라고 많이 사왔냐? 서방 맛난 거 해줄라고! 우리 연순이가, 아이구 이쁜 내 색시!”
연순의 손에서 짐을 뺏어 든 종복은 몸이 달아 그녀를 껴안았다. 더운 여름, 하루 종일 절뚝거린 그에게서 노동의 진한 냄새가 났다. 연순은 무거운 마음을 이겨내려는 듯 남편을 보고 힘을 내 웃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 많으셨지라? 지가 묵은지 넣어서 아저씨 좋아하는 고등어조림 해서 저녁밥 드릴게요. 아버님, 어머님도 금방 오시겠지요?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셔요.”
“니는 언제까지 서방보고 아저씨라 할거여? 흐흣. 그래도 우리 연순이가 해주는 고등어조림, 내가 제일로 좋아하제. 니가 해준 것은 다 맛나드라.”
연순은 그저 좋다고 웃는 남편을 얼른 물리치고 주방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도마 위에서 무와 고등어를 썰고 부산스럽게 고등어를 지졌다.
지금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고등어조림뿐이라는 듯이.
그것뿐이라는 듯이……
그러다가 유난히도 누나가 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맛있다고 잘 먹던 넷째 만석이에게로 생각이 옮겨졌다.
며칠 전 탐진강에서 친구들과 물놀이하던 만석이를 보았다. 여름이라고 새카맣게 타 더욱 말라 보였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