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림 퍼즐이 맞춰질 때

by 라라

제11장 그림 퍼즐이 맞춰질 때




연순이네 집 오 남매 중 넷째 만석이는 참 신기한 아이였다. 다섯 아이 중에서 가장 영특했을 뿐만 아니라 그 근방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 개, 고양이, 닭 하고 있을 때 만석이는 큰누나의 국민학교 교과서를 봤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읽고 썼다.


동네 사람들은 신동이 태어났다고 했다. 집에서는 글자 한 자, 책 한 권을 읽지 않았는데 시험만 봤다 하면 전교 일 등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고 할까. 그러나 먹고 사는 게 가장 급했던 연순이네로서는 아이들 공부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특별히 칭찬할 만한 일이 되지 못했던 연순이네였다.


똑똑한 만석이는 동네에서도 늘 골목대장을 하더니 학교에 들어가서도 대장 노릇을 했다. 늘 만석이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였고 그 누구도 공부하라는 사람이 없었으니, 학교는 놀러 가는 곳이었다. 가방을 메고 왔다 갔다 했지만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놀기에 바빴다.


남산에 올라 벌집 통도 잡고 전쟁놀이, 비사 치기도 했다.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꼽자면 바로 ‘서리’였다. 봄에는 딸기 서리를 했고 여름에는 참외를 서리했다. 참외가 질리면 수박, 수박이 질리면 옥수수였다. 남의 고구마밭에서 캔 고구마로 강변에서 불을 피워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참 꿀맛이었다.


배고파서 할 때도 있었지만 그저 장난으로 할 때도 많았다. 동네 사람들도 혼내기보다는 그저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하는구나 하고 지나갔으니. 배는 고팠지만 인정은 넘쳤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참 뜨거운 날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숨조차도 쉬기 힘들었다. 만석이는 학교를 파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옷을 벗고 탐진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참 물놀이를 하고 나면 자연스레 더위가 가시고 배가 고팠다.


그러면 작살로 고기를 잡아 젓가락에 끼워 구워 먹었다. 메뚜기도 잡아다 구워 먹었다. 그래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으니 당연하듯 참외를 서리했다. 용남이가 망을 보고 잽싼 봉식이와 경철이가 참외를 땄다. 만석이는 그늘에서 쉬다가 친구들이 따온 참외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난 후에도 친구들과 떼거리로 모여 읍내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 만석아, 쩌―기 느그 형 아니냐?”


함께 시시덕거리던 용남이가 보건소 옆 공사장을 가리켰다.


“뭔 소리여? 우리 형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인디…”


“저기 창석이 형… 맞은 것… 같은디?”


만석이는 무심코 용남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가 눈이 커졌다. 찌는 듯한 더위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 소년. 땀에 젖은 목덜미, 꾹 다문 입술, 삽자루를 잡은 손. 학교에 있어야 할 형이 지금 왜 공사장에 있는 걸까.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진 만석이는 친구들을 보내고 형이 일하는 곳을 몰래 훔쳐봤다.

형은 이미 공사장이 익숙한 듯 벽돌도 나르고 쓰레기도 치웠다.

형은 이미 이 여름의 더위가 익숙한 듯 그렇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형을 보고 나서 도망치듯 집에 들어온 만석이는 더운 방안에 문을 닫고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만석아, 밥 먹어라이!”


“나, 밥 안 묵어. 피곤해서 일찍 잘 거여.”


누나의 밥 먹으라는 소리도 넘기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창석이 형이 아까 거기서 뭐 하고 있던 거지?’


며칠 전 까진 무릎에 빨간약을 바르던 형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밤마다 끙끙, 신음하듯 잠꼬대하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빨랫줄에 걸려있던 낡은 옷.

형의 그 옷.

이 모든 그림의 퍼즐이 맞춰지니 만석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새벽마다 장에 나가시는 어머니, 팔려 가듯 시집간 연순이 누나, 동석이를 키우느라 학교도 못 다닌 정순이 누나. 거기에서 끝인 줄로만 알았는데 창석이 형까지 그 고생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 집에서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어떤 존재인 걸까. 모두가 고생하고 있을 때 나는 친구들이랑 시시덕거리고 다녔구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동안 만석이는 아버지가 미웠다. 부끄러웠다. 엄마에게 돈을 뜯어 술만 마셔댔던 아버지가 늘 원망스러웠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가 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껏 해온 잘못 때문에 천벌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와 내가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형은 해가 뉘역뉘역 지는 즈음에서야 집에 들어왔다.


“누나, 만석이는 벌써 자네이.”


형이 누나에게 물었다.


“그런께 말이다. 하루 종일 친구들이랑 놀다 와서 피곤한갑제. 밥도 안 먹고 저라고 누워 있드라.”


“어디 아픈 거 아니믄 되제. 인제 나는 누가 아프다는 소리만 들어도 무섭단께.”


형은 오히려 만석이를 걱정했다.


“창석아, 그 옷 주라. 누나가 빨란께. 오늘도 힘들었지야? 그러지 말고 나는 니가 핵교 댕겼으면 좋겄다이. 돈은 언니한테 꿔도 되잖애.”


“누나, 그런 소리 하덜 말어. 글고 애들 앞에서 말조심하란께. 나, 하나도 안 힘들어. 인제 아자씨들도 나보고 한몫 제대로 한다고 하네. 다음 달부터는 제대로 된 돈도 받을 수 있을 거여.”


형이 입단속하는 그 말에 만석이 또다시 눈물이 났다.


“알았다이. 너도 쉬엄쉬엄해라. 어린것이 벌써 그래서 골병들까 무서운께. 요령 봐감서 쉬엄쉬엄해. 알았지야?”


“이잉, 걱정하덜 말어. 내가 다 알아서 할란께.”


“알았다. 얼른 밥이나 묵어라. 아까 엄니한테 가서 갈치 받아왔어야. 살이 실해. 겁나 맛나게 구웠응께 씻고 얼른 와라이.”


곧이어 식구들이 한데 모여 저녁밥 먹는 소리가 들렸다.

후루룩 국물을 들이마시는 소리, 달그락 밥그릇을 긁는 소리.

그 소리에도 만석이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밤은, 형이 들어오는 소리에 잠을 자는 척할 수밖에 없던 부끄러운 밤이었다.

끙끙 앓는 형의 그 소리에 몰래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던 슬픈 밤이었다.


그날 밤, 뒤척이던 만석이가 조용히 일어나 장롱 위에 쌓아둔 문제집을 꺼냈다. 언젠가 중학교에 올라간 이웃집 형이 물려주었던 것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쓰윽― 닦아냈다.


‘나도 이제 뭐라도 좀 해봐야제.’


만석이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쉬운 것은 공부였다. 하려면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석이가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결심을 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 복도 벽면에 붙어 있는 종이가 만석이의 눈길을 끌었다.


“수학 경시대회 – 전교 1등 장학금 수여 / 군 대표 선발”


만석이는 그 벽을 두고 한참을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꼭 뭐에 홀린 사람처럼 벽보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만석아, 너 저거 나갈라고?”


용남이가 만석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어. 나 이제 공부 할란다이. 느그들도 이제 놀지 말고 공부해라. ”


“야, 갑자기 뭔 공부여? 공부 안 해도 맨 일등만 함시로.”


용남이가 대꾸했다.


“만석아, 니가 안 놀믄 재미없는디…”


눈이 휘둥그레진 봉식이도 한마디 했다.


“확! 씨. 느그들은 언제 철들래? 인제 공부하라고 공부! 느그들도 싹 다 공부해. 안 그라면 인제부터 친구 안 한다이. 알았냐?”


“아, 알았어…”


친구들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만석이가 아무래도 더위를 먹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며칠이나 가겠어, 생각도 했다. 어떻게 놀아야 재밌을까 궁리만 하던 녀석이 갑자기 공부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런 만석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정순이었다.


‘저놈이 무슨 바람이 들었을까?’


정순이는 마루 끝에 앉아 빨래를 개면서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만석이를 바라봤다.

친구들과 노느라 해 질 녘에나 들어오던 녀석이 며칠 내내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에 와서 공부를 했다.

잠이 올 것 같으면 냉수로 등목하고 들어가서 또 공부하고 있으니 나쁜 데 빠지지 않고 집에서 연필을 쥐고 있는 게 어디냐 싶다가도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만석아, 시험 보기 전날에도 책 한 번을 안 떠들어 보던 녀석이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다냐?”


“으응, 이번에 수학 시험이 있는디 일등 하면 장학금 준다잖어. 군 대표로 대회도 나갈 수 있다더라고. 남외리 신동 만석이가 거기 안 나가면 누가 나간단가? 안 그래?”


만석이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오메, 진짜로? 장학금 받으믄 어따 쓸라고?”


“장학금 받으믄 고생하신 우리 엄니 다― 드릴 거여. 참, 누나 맛난 것도 쪼까 사줄게. 히히”


“오메― 이쁜 내 동생! 너 먹고 자픈 거 있으면 다 말해봐. 누나가 다― 해 줄란께!”


“히히. 알잖여! 나는 누나가 끓여준 된장국을 제일로 좋아하는 거!”


그렇게 말하고 만석이는 다시 연필을 잡았다. 정순이는 동생의 손등을 바라보다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애가, 어쩜 저리 속이 깊을까…’


그날 저녁, 정순이는 만석이가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였다. 낮에 냇가에 나가 동석이와 함께 잡은 다슬기랑 우렁이를 가득 넣었다. 구수하고도 시원한 냄새가 보글보글 끓여졌다.

그러다 문득, 정순이는 언니 생각을 했다. 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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