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 여름의 끝

by 라라

제2장 그 여름의 끝




누가 약속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간 기차가 빛을 보듯 정순이에게도 학교라는 세상이 펼쳐질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못내 불안해질 때면 술에 취한 아버지가 기분이 좋아 보일 때를 기다려 가만히 말을 꺼냈다.


“아부지, 9월 1일이 개학인 거 알지라?”

“으응, 그러냐?”


정점을 찍은 여름의 내리막과 함께 땀띠의 가려움이 가라앉자, 정순이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아부지 저 내일모레 학교 가는 거 알지라?”


정순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노래만 흥얼거릴 뿐이었다.

어느덧 9월이 되었다. 기다리던 개학 날 아침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엔 제법 선선함이 배어있었다. 전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좀체 잠이 들 수 없었는데도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그렇게 일어난 정순이는 창석이와 만석이를 깨워 흰죽을 나눠 먹고 학교 갈 채비를 했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장사를 나갔다. 아버지는 술에 곯아떨어져 여태 잠을 자고 있었다. 막둥이는 누나 형님들이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있으니, 지도 깨어서 부지런히 기어다녔다.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집을 나서는 소리가 골목 골목으로 들려오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아부지, 아부지이… 저 오늘 학교 가는 날 이란께요…”


자그마한 손으로 아버지를 흔들었다.


“이 년이! 애비가 자는데 깨워! 니가 학교 가면 어짠단 말이냐? 딸년이 배워서 뭣한다고!”


잠에서 깬 아버지가 갑자기 성을 냈다.


“으아아아앙!!!!”


그 소리에, 막둥이가 경기하듯 울어 재꼈다. 정순이는 어깨에 메고 있던 책보를 얼른 내려놓고 우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 둘러업었다. 흔들흔들, 애기야 울지마라, 토닥토닥 흔들었다.


“누나, 우리가 인제 막차여. 놈들은 다 가 븟는디.”


“아무래도 너거들 먼저 가야겄다. 나는 좀 있다가 갈게”


하는 수 없이 동생들을 먼저 학교에 보냈다. 아버지는 다시 드르렁, 코를 골며 잠들었고 막둥이도 진정했다. 그리고… 골목의 떠들썩한 소리도 끊기고 조용해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달려갈까.

정순이는 아기를 내려놓고 다시 책보를 메고 신발을 꿰신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대문을 나섰다.


“으앙… 앙앙… 앙앙…”


누나가 등을 돌리자, 막둥이가 본능처럼 울기 시작했다. 동석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자꾸만 발걸음을 잡았다.


“드르렁… 쿠울― 드르렁… 쿠울―”


아버지의 무책임한 코 고는 소리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쩌지, 아랫입술만 연신 깨물던 정순이는 결국 결국 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쌀미음을 꺼내왔다. 막둥이는 배가 고팠는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이 참 흐뭇했을 텐데 오늘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쩍쩍 벌려대는 동석이의 입안으로 쌀미음을 넣어주면서 자꾸만 애가 탔다.


“동석아~얼른 먹자이. 얼른 먹어야 누나도 학교를 가제. 잉?”


그 말을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입에 넣어주는 숟가락마다 쪼옵쪼옵 받아먹고는 더 달라, 더 달라며 입맛 다시는 동석이. 얼굴이 빨개지도록 용을 써대더니 똥도 푸짐하게 싸놓았다. 먹이던 것을 치우고 솥 안에 있던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아 엉덩이를 씻겼다. 기저귀도 갈고 옷도 새로 꺼내 입혔다. 벌써 반나절은 지난 듯한 아침을 보내고 나니, 정순이 이마로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드르렁… 쿠울…”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는 변함없는 리듬으로 더욱 조용해진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있었다. 오늘을 포기하면 영영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아득함이 밀려왔다. 마음이 조급해진 정순이는 동석이를 포대기로 업어 싸맸다.


어쩔 수 없다.

개학 첫날, 아기를 둘러업고 학교에 갔다.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 모두가 교실로 들어갔는지 그 떠들썩하던 골목엔 개 짖는 소리만 띄엄띄엄 울렸다.


‘미자가 지난번에 담임 선생님 바뀌었다고 했는디…’


정순이의 담임 선생님은 교직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여자 선생님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아기를 낳아 들어가셨다고 했다. 정순이도 3학년이 되자마자 동석이를 본다고 학교를 못 나갔으니 얼마 못 뵈었다. 그 반은 새로 오신 남자 선생님이 가르치시는데 호랑이 선생님으로 소문이 자자해서 더 걱정됐다.


‘미자는 같은 반이 아닌디… 인자 학교 가면 또 누가 있을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도 없는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학교였다. 복도는 숨죽인 듯 고요했고 쥐새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창 너머로 학생들이 반듯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3학년 3반. 교실 문 앞에 섰다. 그런데 문을 열 생각을 하자, 그 문이 남산의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걸까. 쿵쾅쿵쾅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등에 업힌 동석이는 배부르게 먹고 똥까지 누고 난 후 누나 등이 따뜻했는지 얌전히 자고 있었다.


‘동석이도 자고… 애들도 공부하고 있고… 이대로면 아무도 모르게 들어갈 수 있겠지?’


정순이는 숨을 한번 깊게 고른 후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가만히 문을 열었다.


스르륵―


“니가 이정순이냐?”


칠판에 글씨를 쓰던 선생님이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흐음. 개학 첫날부터 지각하면 안 되제. 어째 늦었냐?”


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쏘아오는 듯한 눈빛에 정순이는 구겨진 깡통처럼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


“…….”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 정순이는 두 눈만 끔뻑거리고 서 있었다.


“아야, 그란디 니 등엔 뭐다냐?”


등에 업힌 막둥이에 관해 물어 오자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제 막둥이 동생인디요, 엄니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가셔서…….”


정순이의 뺨이 붉은 홍시가 되었다. 귓바퀴까지 찌르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웅성웅성. 아이들이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도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만이다. 내일부터 애기는 데리고 오지 말어라.”


선생님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말하고 다시 칠판으로 가 글씨를 썼다. 정순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빈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흘렀고 곧 쉬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자, 교실 안은 떠들썩해졌다. 등 뒤에서 잠자던 동석이도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이 깼다. 기분이 좋은지 발을 까딱이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형님, 누나들을 구경했다.


“요게 니 동생이여?”


아이들이 정순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응, 울 어매가 낳았어. 인제 쌀미음도 먹고, 기어다녀.”


정순이는 귀여운 동생 이야기를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엄청 귀엽게 생겼다이. 꼭 왕자님 같네.”


그러다가 아이들이 막둥이와 정순이를 번갈아 보았다.


“근디 왜 니랑은 하나도 안 닮았다냐? 너는 눈이 단춧구멍인디 니 동생은 왕방울이구만!”

“그런께, 정순이 니는 느그 언니도 겁나게 이쁘던디… 니는 누굴 닮은 거여?”


여자아이들이 눈치도 없이 그것을 정순이에게 물었다. 그때, 개구쟁이로 소문난 현철이가 끼어들더니 한마디 던졌다.


“니는 어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냐?”

“와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에 반 아이들이 배꼽을 잡는다며 웃어댔다.


“얼레리꼴레리~얼레리꼴레리~정순이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대요~주워 왔대요~”


남자아이들이 정순이를 빙빙 돌며 놀렸다.


“야아― 너거들 저리가아!”


옆에 있던 여자아이들이 놀리는 개구쟁이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거머리 같은 녀석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놀려댔다.


“정순이 아부지는 다리 밑에 각설이래요~각설이래요~”


정순이는 당황해서 얼굴이 탄 고구마처럼 빨개졌다.


‘나도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에 왔는디…’


눈물이 저도 모르게 똑똑 떨어졌다. 미자라도 있었더라면 이 녀석들쯤은 다 쫓아내 주었을 텐데 외롭고 서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이 들어오자 놀려대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제야 정순이도 눈물을 닦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참 기분 좋게 구경하던 동석이는 그제야 누나 등이 답답해졌을까? 누나 등에 엽혀서 앵알대던 동석이가 선생님의 근엄한 목소리를 따라 옹알이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큰 소리로 옹알이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키득댔다.


아기의 목소리가 커지니 정순이는 더는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순해지길 바라며 흔들고 토닥거렸다. 초조한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뻗대며 더욱 용을 썼다. 그러기를 몇 번, 곧 뜨뜻한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지더니 쿰쿰한 냄새가 올라왔다.


“으악! 이거 무슨 냄새야?”

“똥 냄새 아녀?”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코를 틀어막았다. 더는 못 참겠는 동석이도 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수업 내내 정순이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선생님이 분필을 내려놓고 짜증스럽게 돌아봤다.


쾅! 쾅!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교탁을 내리치자, 아이들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느그들 조용히 안 하냐! 방금 웃고 떠든 녀석들 누구여! 다 뒤로 나가!”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금세 교실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눈치코치 없는 동석이는 계속 울어 재꼈다.


“애기가 왜 그라고 운다냐! 언능 집에 데려가서 기저귀 갈아 줘라이!”


벼락같은 선생님의 소리에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꾸욱 깨물고 조용히 짐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왔다. 작은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맺혔다. 화가나 등에 매달린 막둥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몇 번이나 때렸을까.


“니 때문에! 내가 니 때문에!”

“으아아아앙!”


누나가 화가 난 것을 저도 느꼈을까. 동석이는 더 크게 울었다. 그러다가 지쳤는지 곧 잠들었다.

정순이는 단 한 번도 막둥이가 태어난 것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애기를 보느라 학교를 몇 달이나 못 가면서도, 매일 아침 동네 아이들의 뒷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봐야 했으면서도, 애기 때문에 미자와 마음껏 못 놀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치 예쁜 막둥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속도 모르고 울고 싸대는 아기가 너무나 밉고 또 미웠다.


“정순아, 오늘 학교 가는 날 인디 너는 안 간 것이여?”


장에 다녀오는 길인지 보따리를 머리에 인 미자네 엄마가 물었다.


“… 아니요. 오늘 갔는디요. 애기가 울어가꼬요…”

“오메메, 딱한그. 저 어린것이 막둥이를 아주 키우네, 키워. 느그 엄니 아부지는 뭣 한디 니가 애기를 업고 있어야.”

“엄니는 시장에서 장사하시지요… 아부지는…”

“하이고― 느그 아부지 아까 보니 저 짝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있드라. 쯧쯧. 저 어린것이 다 고생 이구만. 아줌마가 풀빵 한 개 줄텐게 이거 먹고 가그라.”


미자네 엄마는 정순이 손에 풀빵 한 개를 쥐여 주었다. 그것을 꼭 쥔 채 돌아서는데 왜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타박타박 시장으로 향했다. 엄마는 분주한 손놀림으로 명태를 손질하고 있었다. 정순이는 식어버린 풀빵을 손에 든 채 엄마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었다. 그 순간, 엄마는 보았다. 멀리서 원래도 작은 아이가 더 작아진 모양으로 서서 울고 있던 것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가슴이 미어진 엄마는 한달음에 정순이에게 달려갔다.


“아가, 뭔 일이다냐. 왜 울고 있는겨? 언놈이 우리 정순이를 울렸다냐.”


정순이는 엄마가 묻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좋아하는 풀빵을 입에 대지도 않고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더는 묻지 못했다. 대답을 들었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때는, 마음의 허기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으니까.


한참을 울던 정순이는 엄마에게 동석이를 넘겼다. 축축하게 젖은 기저귀를 간 아기는 엄마의 젖 냄새를 맡고는 또 배가 고팠는지 앙알거렸다. 입에 젖을 물리자 탐욕스럽게 꿀꺽꿀꺽 삼켜대는 막둥이. 정순이는 입안에 젖을 가득 문 아기가 턱을 움직일 때마다 그 목구멍으로 젖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가 누나만큼이나 서러웠을 아기는 엄마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젖을 빨았다. 그 손가락이 유난히도 연해 보였다.


정순이는 그날 이후로는 아버지가 기분 좋은 날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동생들을 보내고 논두렁 너머로 사라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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