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감꽃 피는 집
한반도의 남쪽 끝,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 하나 있다. 산을 타고 내려온 물길은 그 중심을 가르며 유유히 흘렀다. 그것은 땅의 목을 축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그 춥던 겨울이 언제였을까. 포근해진 땅에는 푸릇한 잎사귀들이 한창이었다. 질퍽한 논 안에서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가며 모를 심느라 여념이 없었다.
앞으로는 탐진강이 흐르는 남외리 한구석 연순이네 집. 이게 마당일까 싶도록 빈약한 터의 감나무에도 하얀 감꽃 몇 송이가 기어코 피어났다. 그 집에서 이제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골목길을 따라 울려 퍼졌다.
“아야, 느그 아부지 또 막걸릿집 가셨다냐? 언능 가서 엄니 아들 낳았다고 말씀드려라.”
아기를 받아주신 순자네 할머니가 이 집의 둘째 딸 정순이에게 말했다. 위로는 딸 둘에 아들 둘이 있었으니 다섯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이 집 남자는 집사람이 해산하는 날에도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노래하며 지나가는 아낙이나 희롱하고 있을 것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한 칸짜리 오막살이에서 여섯 식구가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갓 태어난 아기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엄마는 산후조리랍시고 얼마 동안이나 누워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목숨이란 무서운 것. 붙어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지니. 연순이네는 내일이 더 나을 거란 기대는 못 하면서도 하루치 할당량을 꼬박 채워 살아가고 있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 젊을 적 기생에게 배운 창으로 하릴없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남자. 자식 하나 늘었다고 달라질까. 엄마는 애초에 바라지 않았다. 그저 술 한잔 걸치고 노래나 부르는 것으로 그쳤으면. 괜히 오가는 이 말 저 말에 기분이 상하는 날에는 없는 살림마저 풍비박산이 나고 마니까.
아무도 맞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면 그들에겐 그저 좋은 날이었다.
엄마는 해뜨기 전에 나갔다가 해가 지면 들어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장에 나갔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적만 해도 시장 여편네들 텃세에 서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지금은 서로가 동지였다.
“싸다~싸! 물건 좋~다!”
“아지매, 이거 얼매요? 쪼께 싸게 주쇼”
“와따― 물건이 좋은디 더 깎으면 안 되제. 대신 작은놈 한 마리 더 얹어 줄란께 들고 가브쇼”
워낙 순한 성품의 엄마였지만 긴 시장 생활을 하며 억척스러워졌다. 생선 한 마리라도 더 팔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그 장사를 아기가 나온다고 진통할 때가 되어서야 접었다. 하지만 네 아이를 낳고도 그랬듯 산후조리가 무엇이냐, 다섯째 아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며칠이고 쉴 수만은 없었다. 엄마는 과부도 아니건만 기댈 데가 없었다. 몸 푼 지 사흘 만에 다시 좌판을 열어야 했다.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식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 위해 생선을 팔아야 했다.
그래도 그녀에겐 귀한 살림 밑천이 되어준 두 딸이 있었다. 큰 딸 연순이는 잘난 아비의 인물을 쏙 빼닮아 고운 얼굴 하나로 어디를 가든 눈길을 끌었다. 그 아이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안 살림을 도우며 엄마와 함께 장사를 했다. 올해 열다섯이 된 연순이는 광주의 어느 돈 많은 가정집에서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그 일은 광주에서 살다가 장흥으로 내려와 막걸릿집을 하고 있는 광주이모의 소개였다. 번 돈은 쓰지 않고 모아 다달이 생활비로 부쳐주었는데 그것이 살림에 큰 보탬이었다.
올해 열한 살이 된 둘째 딸 정순이는 언니에 비하면 인물은 좀 떨어졌다. 단춧구멍처럼 작은 눈과 거뭇한 피부, 어딘가 모르게 주눅 들어있는 듯 마르고 작은 체구. 성격은 영락없이 지어미를 닮아 순하고 속이 깊었다. 애기 때부터 떼 한번 부린 적이 없어 손 갈 데가 없고 형제들 간에 늘 양보하고도 괜찮았던 아이였다. 이른 새벽, 다른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지만 정순이는 달랐다. 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일어났다.
“아야, 뭐단디 일어났냐. 더 자야, 잉?”
“그냥 잠이 안 와서라…”
정순이는 새벽마다 엄마가 채비하는 동안 곁을 왔다 갔다 하며 도왔다. 그러고는 리어카를 시장 앞까지 밀어주었다. 그것이 어스름한 새벽 집을 나서는 엄마에겐 한 가닥의 위로였다.
집으로 돌아온 정순이는 그 집의 하루를 열었다. 가장 먼저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안쳤다. 그리고서 동생들을 깨웠다. 아홉 살 창석이와 여덟 살 만석이는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올해 열 살 터울로 늦둥이 막내가 태어났으니 그 아기가 정순이의 차지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사 나간 엄마를 대신해 아기를 돌봐야 했다.
막냇동생의 이름은 동석이었다. 동글동글 반질반질해서 마치 맑은 구슬 같았다.
“없는 살림에 애기가 하나 더 늘어서 어쩐다냐.”
남들은 갓난아기를 애물단지처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정순이는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기가 너무나 귀해 보였다. 잘난 아빠를 닮았을까. 큼지막한 두 눈에 덜렁하게 큰 코, 바짝 선 귀까지 귀티가 흐르는 아기였다.
등에 업고 다닐 때마다 마을 어르신들이 아기더러 고놈 참 잘생겼다고 했다. 그때마다 정순이는 자신의 어깨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뻔질나게 업고 다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쁨은 아침이면 사라졌다.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그 걸어가는 논두렁을 바라볼 때였다. 그땐 동네 아이들도 왁자지껄 떠들며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을 뿐인데 아랫배 어딘가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가슴 한켠이 허전한 게 꼭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저 아이들 사이에 저도 있을 것만 같아 눈을 껌뻑이며 떴다, 감았다, 다시 뜨곤 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막둥이가 악을 쓰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멀리 걸어가는 동네 아이들의 그림자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정순이를 현실로 이끌었다. 먼저 우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았다. 젖 때가 되어 배고픈 걸까 싶으면 포대기로 업어 시장에 있는 엄마에게 데리고 갔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악을 쓰며 울던 아기는 엄마의 젖 냄새를 맡으면 더 다급하게 울어댔다. 엄마가 툭 내어준 젖을 입안 가득 문 아기는 허겁지겁 빨아대다가 허기를 채우면 곧 진정했다. 어느덧 순해져 눈을 감고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는 아기. 꿀떡꿀떡 젖 삼키는 소리에 정순이는 마음이 놓였다.
배부른 아기는 누나 등에 업혀 곤하게 잠도 잘 잤다. 아기를 등에 업고 엿장수의 각설이 타령도 보고 만물상에서 머리핀과 구슬 같은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면 제법 빠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정순이에겐 친구 미자가 있었다. 그땐 학교에 제때 들어가지 못해 일 년쯤 늦는 일이 흔했고 아홉 살에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정순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같은 학년이라고 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반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들 사이에서 섞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는 미자도 정순이처럼 아홉살에 입학한 아이였다. 저들만의 닮은 점은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했고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하러 점빵에 갔다가 친구 미자가 학교를 파할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우는 아기를 달랜다며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다가 기다린 적도 있었다. 저 멀리서 미자의 그림자가 보이면 쪼르르 달려 나갔다. 미자는 아기를 업고 기다리고 있는 정순이에게 재미난 이야기꾼이 되어주었다.
“춘식이가야, 배가 고팠든가 점심시간이 되도 안 했는디, 몰래 도시락 까먹다가 김치 냄새가 막 풍긴께 선생님한테 들켜브렀제.”
“반 애기들 몇이가 육성회비를 안 냈다고 선생님한테 손바닥을 열 대나 맞았어야. 정순이 너는 안 와서 다행이란께.”
“오늘은 분이랑 복자랑 같이 고무줄놀이하고 있었는디 현철이가 와가꼬 그 줄을 끊어가브냐. 화딱지 나서 디지는 줄 알았단께.”
미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재잘거려 주었다. 정순이는 그 이야기를 듣느라 아버지 심부름을 놓쳐 혼이 나기도 했다.
어느덧, 그 바쁘던 모내기 철도 지났다. 들판에는 푸른 이삭들이 무럭무럭 자라났고 가만히 있어도 콧잔등엔 땀이 맺혔다. 한낮의 더운 날씨를 이겨내려 동네 사람들은 사장 나무 그늘 아래로 몰려들었다. 매미도 우렁차게 노래하는 그곳에서 그들은 수박이며 참외를 나눠 먹었다. 그러다 보면 학교도 곧 방학을 했다.
모두 똑같이 학교를 가지 않은 방학. 그때가 정순이는 참 좋았다. 책보 멘 아이들이 삼삼오오 논두렁을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더 이상 아릿하게 아파져 오는 배를 느끼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잠깐 막둥이가 낮잠을 잘 땐 밖에 나가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했다. 아기를 업고 미자네 집에 가서 실뜨기도 하고 봉숭아 물도 들였다. 그러다가 이 계절이 끝나버리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이 한 번씩 올라오곤 했다.
더운 여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기를 고목에 달린 매미처럼 달고 다녔다. 늘 아기를 업고 다녔던 정순이는 마치 아기와 한 몸이라도 된 듯했다. 그렇게 여름을 버틴 그 여린 등으로 벌겋게 땀띠가 올라왔다. 낮에는 참을 만하던 것이 밤만 되면 더 가려워졌다. 엄마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긁어대는 정순이의 등에 땀띠 분을 톡톡 두드려 발라주었는데도 따갑고 가려워 그 밤이 참 길었다. 그럴 땐 어서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 버렸으면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번 방학이 지나면 그때는 동석이도 좀 크겄제? 그라믄 나도 학교에 나갈 수 있겄제?’
정순이는 그 뜨거운 여름을 갓난아기를 업다 생긴 땀띠를 어루만지며,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쓰다듬으며 그렇게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