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고된 것이 시장 일이었지만 남의 집 일은 더 했다.
그만두라는 말이 나올까, 더 바쁘게 움직였다.
가게를 벗어나서야 잔뜩 긴장한 어깨에 힘이 풀렸다.
휘익-
휘파람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학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정순이를 보고 있었다.
“야, 너?”
구두가 참 반짝였다. 그 구두가 정순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너‥? 나, 몰라?”
소년은 뭔가 떠올리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짜고짜, 야라고‥? 예의는 밥 말아먹었나…”
정순이가 웅얼거리며 지나쳤다. 주춤거리며 뒤따라오던 그가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너… 기저귀, 그 똥, 맞지?”
무질서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똥’이라는 말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슬쩍 올라간 입꼬리와 깊게 팬 보조개가 꽤 즐거워 보였다.
“하핫! 맞네. 정순이었던가? 여기서 일하냐?”
그가 턱 끝으로 우리 상회를 가리켰다.
그 턱 끝을 따라간 시선이 이내 비린내가 가득 밴 옷으로 옮겨왔다.
그러다 다시, 반짝이는 구두와 새하얀 옷깃에 미끄러지듯 옮겨갔다.
가슴에 생선 가시 하나가 박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얼얼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를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래?”
“너, 나... 몰라? 현철이! 3학년... 7반! 내가 오랜만에 내려왔어도, 너는 기억난다!”
더듬대며 말을 잇는 소년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현철… 현철…?
그 이름을 몇 번, 입안으로 굴려보았다. 그러다가 뜨악한 조각들이 맞춰졌다. 기억 저편에 꽁꽁 묻어두었던 마지막 수업. 장난기 가득한 눈빛만큼은 그때 그대로였다. 앙다문 어금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데?”
다음 말을 기대하는 그 아이에게, 정순이가 돌려준 것은 차가움이었다.
소년은 명치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 멀어져 가는 정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시가 옷자락에 박힌 걸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뚜벅뚜벅 걸으면서도, 손끝이 자꾸만 올이 풀린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좌판에 도착했다. 동석이가 목소리를 길게 내빼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시장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했지만, 좌판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엄니, 저 왔어요. 식사는 하셨어라?”
“응, 어디 다녀오는 길이여?”
엄마는 힘없는 눈으로 정순이를 바라보았다.
“우리상회요...”
화들짝 놀란 엄마의 눈이 커졌다.
“오메! 뭣한디 거길 갔다냐? 가지 말어라!”
어린것의 처진 어깨와 젖은 옷이 두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몸을 바짝 당겨 정순이의 손을 두 손안에 움켜쥐었다. 여린 손이 빨갛고 퉁퉁하게 불어있었다. 딸의 손을 주무르던 엄마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놀믄 뭣한다요. 당분간 거기서 일 좀 할라 그라요. 째끔씩 갚아 나가면 되지 않겄어요?”
정순이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엄마의 달싹이던 입술은 끝내 토해내지 못한 말을 삼켰다. 남편보다 더 의지했던 딸.
그럼에도 속이 저민 것은, 차마 지우고 싶지 않았던 짐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정순이는 일찍부터 우리상회로 갔다. 사장은 본체만체했다. 정순이는 눈치를 슬슬 살피다가, 일꾼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빈 구르마로 상자를 옮기고 생선 위로는 얼음을 얹었다. 그간 시장 바닥에서 구른 잔뼈가 어디 가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정순이를 찾는 소리가 잦아들 틈이 없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도 그것이 고마웠다.
“따글따글 하니 여간 야무진 게 아니네”
“어릴 때는 삐쩍 말라 까무잡잡한 게 영 까시 같더만, 클수록 인물이 나는 것이 즈그 아부지 탁했구만?”
“아들만 하나 더 있으믄 며느리로 들이고 싶네이-”
“하아따! 할마씨는 손자도 다 본 양반이 뭔 욕심이다요? 정순이는 진작에 내가 점찍었소!”
“아직 피도 안 마른 아그를 두고 정순이를 며느리 삼을라고? 낄낄낄”
일꾼들이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그들의 말을 가만히 흘려들으며 정순이를 살펴보던 사장의 눈이 저도 모르게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때, 현철이 가게로 들어왔다. 아들을 아래위로 훑던 사장은 한숨부터 나왔다.
“뭔 일이다냐? 내려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몸이 근질거려?”
“아부지, 저 인제 정신 차렸다니까요?”
현철이 자꾸만 안쪽을 힐끔거리며 서성였다. 이 아이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사장은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현철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때, 일을 마친 정순이가 나왔다.
“인제 집에 가봐야 해서요. 내일 또 올게라.”
현철이 멍해진 얼굴로 지나가는 정순을 쳐다보았다. 사장은 헛기침하며 정순이를 향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 아부지! 저도 가볼게요!”
현철이 곧 허둥대는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사장은 사라지는 아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 야! 아니, 이정순!”
다급한 목소리였다. 돌아본 정순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여기, 우리 집인 거 알고 있었냐?”
그 해맑은 목소리에 내장 깊숙한 곳이 비틀릴 것만 같았다. 대꾸할 가치가 없었다.
“그것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몰랐네요, 도련님?”
돌아서려는 찰나, 현철이 정순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아니, 내가, 내가 너! 우리 아버지한테 잘 말해줄게!”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오는 순수한 그 말이, 속을 헤집었다.
정순이의 표정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갔다.
현철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어? 말만 해!”
“너랑 볼일 없거든? 이거 놔!”
정순이는 뒤로 한걸음 무르며 붙잡던 그 손을 탁, 쳐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옷깃을 잡았다.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이 애걸복걸하는 모습이었다.
잡고, 쳐내고, 또 잡히고- 실랑이는 한참 이어졌다.
그때였다.
“이거 놓지, 그래?”
영호였다. 현철이 한 뼘은 더 큰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정순이 잡혔던 옷자락을 털어내고 그의 뒤로 숨었다.
영호는 매서운 눈으로 현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 때문에 현철은 꼭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곧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 났다.
“으흠... 흠. 다... 다음에 보자!”
뒷걸음질 치던 그는, 정순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훤칠한 녀석이었다. 한참을 노려보던 영호가 고개를 돌려 정순이의 안색을 살폈다.
“누구야?”
“동.... 창?”
영호의 잔뜩 좁아진 미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얼굴을 보자, 갑자기 안도 같기도 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호는 벚꽃처럼 흐드러지는 그 미소에 잠깐 눈빛이 흔들렸다.
“너‥ 괜찮아?”
“괜찮아. 쫄 것도 없는 애여-”
정순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아까, 고등어 사러 갔거든‥ 가게가 비었던데…”
영호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곧 해결될 거여- , 혼잣말처럼 내뱉던 정순이 얼굴에 씁쓸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너‥ 진짜, 괜찮아?”
“왜 자꾸 물어봐- 진짜, 괜찮다니까?”
정순이는 영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치며 걸어 나갔다.
이십 년 가까이 지켰던 엄마의 자리는 며칠째 비어 있는데 시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떨이로 털고 정리하려는 상인들, 그 앞에서 더 싸게 사려는 행인들.
파장의 풍경이 왠지 물에 젖은 수채화 같았다.
영호는 생각에 잠긴 정순이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옆을 지키며 걷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