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자기 몫의 삶

by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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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곰탕, 흑염소탕, 쑥즙에 고려당에서 지어온 한약까지― 날마다 코를 막고 삼켰다.

그러나 백씨네가 그리도 바라던 손주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역한 그것은 삼킬 때마다 쓴물만 치밀어 올랐다.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매서워졌다.

종복이조차 연순이에게 데면데면했기에 할멈의 타박은 날개를 달았다.


남들 가진 것 하나쯤은 쥐여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자식을 안겨주는 것은 할멈의 사명 같았다. 할멈은 연순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종복이를 안방으로 불렀다.


“느그들, 애는 쓰고 있는 것이냐?”


“아직 연순이가 젊은디, 곧 들어서겄지라.”


“니가 연순이를 쥐가 닭 보듯 해싸니, 그것도 속 시끄랍다야. 어째 그란것이냐?”


“그라믄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쓰겄소?”


“아무래도 연순이 저것이 씨를 못 받는 갑다야. 둘째 각시라도 들여야 것다, 이 말이여.”


할멈의 그 말에, 종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시방 그것이 뭔 소리다요?”


“대를 이어야 할 것이 아니냐? 백씨 집안의 종손이 너 하나 뿐인디, 더 나이 묵기 전에 자식을 봐야지야!”


할멈의 언성이 더 높아졌다.


“하아따! 그놈의 대를 잇네 마네, 듣기싫소!”


종복은 악을 내는 할멈을 뒤로하고 안방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연순이를 맞닥뜨렸다.

길을 잃고 서 있는 사슴 같았다. 종복을 보자 화들짝 놀란 연순이 눈물을 훔치며 방으로 들어갔다.


종복은 백 씨 집안의 여인들을 더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길로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연순이를 색시로 들일 때만 해도 온 세상이 제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녀를 볼 때마다 광주 이모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싸늘해졌다.


연순은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둘째 각시’라는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마음이 부서져 내렸다. 시어머니의 구박과 냉대보다 더 힘든 것은 종복의 무관심이었다. 전과 달리, 그는 데면데면했고 연순은 그 무관심을 온몸으로 삼키고 있었다. 사랑 없이 한 결혼이었을지라도 그녀는 버티고 또 버티려 했다. 그것이 지난날, 찬하를 끊어 보내고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자기 몫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시어머니의 종용을 박차고 나간 종복. 그것이 그의 진심일 것이다.

풀꽃은 더 이상 그의 손에 들려오지 않았지만, 연순이 믿고 싶은 것은 어딘가에 실마리로 남아있을 그의 진심이었다.


그에게 따뜻함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부숭부숭한 얼굴을 단장하고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그러곤 부엌에 들어가 국을 올리고 반찬을 다시 손보았다.


그날 종복은 자정이 지나서야 술에 절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화장품 꾸러미가 잔뜩 들려있었다. 술기운에 거칠게 연순을 헤집어 놓은 그는, 세상 아무 일 없다는 듯 드르렁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연순은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하는 종복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 고마워요.”


종복은 난데없는 그 말에 의아한 눈으로 연순을 쳐다 봤다.


“안 그래도, 로션이랑 똑 떨어져 갔는디‥”


거짓말이라는 듯 화장대는 꽉 차 있었다.


“아아- 그, 그거‥ 오는 길에‥”


종복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급히 양말까지 신고는 절룩거리며 나가버렸다.

이미 가득 차 더 이상 놓을 데가 없는 화장품.

이것도 그의 진심일까.

왜 애틋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을까.





그날 장에서 산 노란 구두는 마음에 꼭 들었다. 구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일렁였다.

그러나 방 안에서만 한 번 신어 볼 뿐, 장농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아무 때나 신고 싶지 않았다 할까. 구두가 꼭 필요할 날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상상만으로도 나비 한 마리가 마음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장롱위의 구두를 보고 있을 때였다.


“누나! 이거 봐바! 창석이 형아가 그린거거래!”


동석이가 가져온 것은 그림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었다.


“그림에서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아! 남산에 벚꽃보다 더 이쁘다. 그제?”


정순이는 넋을 놓고 그림을 보다가, 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창석이를 보았다.


“창석아, 너는 진짜 화가 되어야 쓰겄다잉. 뭔 그림을 이라고 잘 그린다냐?”


창석이는 별 대꾸가 없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순이는 바짝 다가가, 그것을 구경했다. 슥슥 움직이는 대로 꽃이 피었다.

그런데 몇 장이나 똑같은 그림이었다.


“근디, 왜 똑같은 그림만 그리는 거여?”


창석이 그제서야, 정순이 손에 있던 그림을 낚아챘다.


“친구가… 그려달라 해서…….”


그림을 가방 안에 넣은 창석은 또다시 쉬지 않고 그렸다.


“친구들이 화가로 인정하는 갑다이. 근디 너무 무리하지 말어라. 얼른 자야제”


엄마 일 도와드리느라 늦게까지 고생한 녀석이… 그렇게 그림 그리는 것이 좋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무섭게 돈을 쓰던 일은 없었던 것처럼, 악착같이 또 장터에 나가 돈을 벌었다. 정순이도 좌판에서 엄마를 도왔다.

저 멀리서 현철이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기웃대고 있었다.

그것이 정순의 신경을 긁었다. 엄마도 그걸 보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집에 갈 때 분명히 따라올 것 같은데…’


저 거머리를 어떻게 떼어낼지 궁리하고 있을 때, 영호가 왔다. 반가운 손님이었다.


“어머니, 고등어 한 손 주세요.”


“영호, 오랜만이네. 엄니는 잘 계시지야?”


반갑게 맞으며, 친구 귀녀의 안부를 물었다. 고등어와 함께 도다리 한 마리도 비닐봉지에 넣었다.


“봄에는 도다리가 맛난 거 알지야? 엄청 실하다이. 느그 엄니 생각나서 쑥도 좀 넣었은께, 같이 넣어 끓여 봐.”


영호는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아 들었다.


“영호 오빠! 인제 집에 가는 거여?”


“어어-”


“나도 인제 갈 때가 되아서, 다리께 까지만 같이 가!”


정순이는 후다닥 앞치마를 벗고 영호 옆에 섰다. 영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철이는 멀리서도 다정해 보이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뜨거운 것이 자꾸만 올라와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재잘대며 영호와 걷다가, 형부 종복이 다방 앞 평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형부를 향해 뛰어가려던 순간, 그와 함께 웃고 있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원피스에 화려한 잔꽃무늬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형부의 한쪽 팔을 찰싹찰싹 때리며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고 있었다.

정순이는 묘한 기시감에 발걸음을 멈추고,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리 쪽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살 게 생각나서.”


어색하게 웃는 얼굴에서 낯선 기운을 느꼈지만, 영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정순이와 장터를 빙빙 돌고 있는 지금이 좋았을 뿐이었다.


영호가 결국 정순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왔을 땐, 일을 다녀온 엄마 귀녀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영호는 장터에서 사 온 생선을 내밀었다.


“오늘도 연순이네 다녀온 것이냐?”


“도다리랑 쑥도 챙겨 주시더라고요. 엄니가 생각났다믄서‥.”


엄마는 비닐을 펼쳐 생선을 꺼냈다. 물리지도 않는지, 하루가 멀다고 고등어를 사다 나르는 아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쏠려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오늘도 저녁 먹고 어디 나가려고? 인제 시험이 코앞인디, 공부해야제?”


얼마 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영호에 대한 학교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실하기까지 했으니, 이대로만 한다면 집안에서 판검사를 기대해 볼만했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하나 남은 아들은 귀녀 인생의 전부였다. 지금껏 크게 속 썩이는 일이 없던 영호가, 지난겨울부터 고등어를 사다 나르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밤에도 자주 나가곤 해서 걱정이 되던 차였다.


“내가 알아서 해요.”


영호는 말을 끊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에도 밥을 먹고 책상에 좀 앉아 있는가 싶더니 소리도 없이 또 나갔다. 워낙에 말수가 없는 아들이라, 무슨 속 사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야학이 끝나고 정순이는 저도 모르게 교회 앞을 둘러보았다. 영호가 서 있었다. 그게 어느새 당연했다.

4월의 밤은 조용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가로등 아래로 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발걸음에 맞춰 겹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너, 야학 계속 다닐 거야?”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래?”


“너 모르는 건 내가 가르쳐 줘도 되잖아.”


“자기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 사람이?”


“이제 시험 기간이라 못 나올 것 같거든. 걱정돼서…”


진지한 표정의 그를, 정순이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여태껏 혼자서도 잘만 다녔어. 나는 야학에 가는 시간이 너무 좋아. 그곳에선 그냥 학생이거든. 나도 학생… 하고 싶어.”


“그럼… 나 시험 치를 때까지만 참아주라.”


“이 오빠가 오늘따라 말이 기네. 됐거든? 이제 나한테 그만 신경 끄고, 공부나 해!”


더 이상 묶어둘 말이 없었다.

골목길 한구석에, 남들 다 질 때 떨어지지 못한 벚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바람에 일어난 작은 꽃보라 속에서, 꽃잎 한 장이 정순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 꽃잎을 살짝 떼주며, 영호의 마음은 왜 그리 아려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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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정순이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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