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열흘째 되는 날

by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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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쉽글과 같은 글입니다. 읽으셨던 분은 건너뛰기 해주세요 ^^


‘열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나갔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여기저기로 돈을 꾸러 다니는 것을, 별 소득이 없다는 것도 엄마의 지친 표정과 긴 한숨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잠이 든 깊은 밤이었다. 정순이는 엄마를 기다리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깬 정순이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부엌 한켠에서 짠지 하나만 꺼내 놓고 찬물에 말은 밥을 후루룩 들이마시고 있었다.


“엄니는, 내가 밥 차려 준단께는, 꼭 그렇게, 밥을.”


울컥,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아이, 됐다 됐어. 입맛도 없어야. 그냥 배만 채우면 되제, 뭔 이 늦은 밤에 밥을 차린다고.”


밥 한술을 겨우 말아 뜬 엄마는 앞치마를 벗어 놓고 고단함에 절은 양말도 벗었다.

씻고 들어와 눕고도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 소리에 정순이 부스럭, 일어나 엄마를 들여다보았다.


“엄니― 어디가 안 좋은디 그라요?”


“에구구… 뭘 좀 들다가 삐끗 했는가봐, 허리가 좀 안 좋다야.”


정순이는 찬장에서 파스를 꺼내왔다.


“그란께 뭣 한디 이라고 무리를 한다요.”


돌아누운 엄마의 허리에 파스를 붙이며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니, 인제 우리는… 엄니까지 없으믄… 천애 고아요. 건강을 제일 먼저로 생각해야 된디, 이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믄 어짠다요? 지발 몸 좀 생각하란 말이오.”


목덜미로도 파스를 붙이는데 엄마의 굽은 등이 왜 그리도 아팠는지, 기어코 뜨끈뜨끈한 눈물이 차올랐다.


“아이고― 니는, 뭣이 어짠다고 그라냐. 이라고 짱짱하게 있는디. 걱정하덜 말어. 하나도 안 아픈께. 느그들 두고 어디 못간다. 잉?”


엄마는 정순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독였다. 엄마의 부르트고 갈라진 손이 등으로도 느껴졌다.


다음날, 밤새 앓던 것이 꿈이었냐는 듯, 엄마는 새벽같이 나가고 없었다. 정순이는 엄마의 빈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밥을 안치고 동생들을 깨웠다. 모두가 밥상머리에 앉자,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꺼냈다.


“느그들, 잘 들어. 오늘부터는 어디 싸돌아 댕기지 말고 학교 끝나믄 바로 집으로 와라. 엄니가 빚 갚는다고 혼자서 일하고 계신디,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큰일 나게 생겼어야. 나라도 뭘 하든 해야 쓰겄어. 알았지야? 그라고 동석이는 학교 끝나믄 바로 엄니한테로 와. 엄니랑 같이 밥 묵자.”


만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석이는 할 말을 삼키며 정순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순이는 그런 창석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 또? 뭐? 또 돈 번다고 학교 안 갈 생각은 하지도 말어라이! 니 또 그라믄 진짜 엄니 쓰러지신다.”


“알았네… 대신, 학교 끝나면 나도 엄니한테로 갈게. 그건 괜찮제? 누나가 동석이 데리고 들어가믄, 그 담부턴 내가 있을텐께.”


정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석이도 나섰다.


“누나, 집은 걱정하지 말어. 설거지랑 다 해 놓을란께.”


코끝이 시큰해졌다.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동생들 덕분에 당장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순이는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장터로 나갔다. 엄마는 허리를 굽혀가며 생선 손질을 하고 있었다.


“나 왔어라. 엄니는 저 짝으로 가서 허리 좀 펴고 쉬시오.”


그러나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손에 든 것을 다 빼앗기고서야 굽은 허리를 한번 젖혔다.


“자식 농사 하나는 진짜 잘 지었구만?”


나물 아줌마가 말했다. 엄마의 시선이 생선 손질을 하는 여리디 여린 등으로 가닿았다.


“이것들 때문에 살제.”


“정순이가 인자 몇 살이여? 시집 갈 때 된 거 아니란가?” 젓갈장수 아줌마였다.


“인자 열일곱인디, 아직 멀었제.”


“워따 워따― 열일곱이믄 폴쌔 애기 낳고 살림하고 살제. 저기 닭집 있잖여? 그 집 딸 금순이가 올해 열여덟이라던가? 이번에 본께 배가 만삭이여? 뭔 군인이랑 눈이 맞았다 더라고― 살림을 차렸드만.”


“오메― 시방 정순이를 닭집 딸한테 갖다 대고 있는가! 모셔간다고 해도 마다할 판에, 그것이 뭔 소리여?”


부애가 치밀어 오른 엄마가 젓갈 장수를 쏘아붙였다.


“워따, 워따- 말이 그렇다는 거제― 정순이는 부잣집 맏며느릿감이네! 모셔갈 것이여!”


젓갈 아줌마가 실실 웃으며 엄마 눈치를 살폈다.


“근디, 아까 사장님 왔다 가든만. 어째 해결은 잘 되았어?”


“그것이… 돈이 좀 모질라서 부탁 좀 했는디, 안 봐준다고 난린께 성가시네…”


“그 양반이 회진 배에 투자를 했는갑드라고. 중간에서 투자받은 사람이 튀어브렀는갑서. 그 집도 한바탕 난리가 나브렀재. 영 사정이 안 좋은가 보드라고.”


“뭣이 그래? 망해도 부잣집 삼 대가 간다는 말 있잖나? 배 하나 투자했다고 망할 집 아니대. 이번에 아들 대학 보냈다고 서울에 집 샀다든만‥ 어디서 죽는소리여?”


“여지껏 거래한 것이 이십 년 아니라고? 갑자기 사정을 못 봐준다고 한께 영 막막 하더란께…”


쑥덕이는 소리가 정순이에게까지 들렸다. 못 들은 척 생선 손질하면서도 손아귀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바쁜 시간이 지났다. 창석이가 오자, 정순이는 동석이를 데리고 장터에서 빠져나왔다. 동석이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면서도, 정순이의 머릿속에는 돈 벌 궁리가 쫓아내도 자꾸만 달라붙는 파리 한 마리처럼 윙윙 맴돌았다.



드디어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정순이도 모르게 절로 눈이 떠졌다. 엄마가 누워있던 자리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이불을 정리하면서도 마음이 자꾸 덜컹거렸다. 동생들을 학교로 보내고, 후들거리는 손끝을 다잡으며 장터로 뛰어갔다.

좌판에는 엄마도, 생선도 없었다. 나물 장사 아줌마는 정순이를 보더니,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엄... 니는요?”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가 나브렀다. 징할 것들. 있는 것들이 더 한다고. 피도 눈물도 없드라야. 느그 엄마, 돈 꾸러 갔는갑서야.”


생선이 없는 좌판에서 할 일은 없었다. 포를 뜰 대구라도 있었으면……. 순간,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순이는 곧장 우리상회로 뛰어갔다.


그곳은 얼음이 가득 찬 상자를 나르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 사이로 허리춤에 손을 얹은 사장이 보였다. 죄인처럼 서 있던 엄마가 떠 올랐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정순이는 아랫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그 앞으로 뛰어가 꾸벅 인사했다.

사장은 고개만 까딱하고는 일꾼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는디요…”


“이야기는 다 끝났는디?”


“거래를 끊으면... 우리 보고 나가 죽으라는 것인디, 어떻게 안 될까라?”


“느그 엄니랑 똑같은 말 할 것이믄 가그라. 아그들한테까지 소리 지르기 싫은께. 얼른 가.”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고요. 제가 일이라도 해서 조금씩 갚을란께요.”


사장은 일꾼들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지가 손은 야무지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라. 어릴 때부터 시장 일을 해놔서 웬만한 일꾼들 못지 않단께요. 후회 안 하실텐께요,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라?”


말을 마친 정순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고선 장갑을 주워 끼고는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야, 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란 말이다!”


“사장님! 여기 할 일이 지천이네요. 저, 잘할 수 있어라.”


사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었다. 정순이는 창석이가 올 시각이 되어서야 일터에서 빠져나왔다. 사장은 지나가는 정순이를 불러 지폐 몇 장을 쥐여 주었다.


“니가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건께, 오늘 일당이니 이것 받고,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어라.”


“빚 다 갚을 때까지 만이라도 계속 일 할게요. 그것만은 허락해 주세요.”


정순이는 사장이 건넨 돈을 물리더니,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사장은 아이의 뒷모습이 참 고집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밀물처럼 스며드는 묘한 신뢰를 애써 외면했다.




****멤버쉽이고 뭐고... 그냥 공개할게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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