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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14. 2024

천오백 년을 거슬러 과거와 마주하는 시간

8일 차: 부산->경주

며칠 만에 일기예보에서 다시 비소식이 보인다. 부산에서 경주로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예보에는 밤부터 비가 온다고 나와 있었다.

"이따가 저녁에 비 온대! 그니까 비 오기 전에 언능 가, 알았지?"

숙소 사장님은 우리 엄마 정도의 연세로 보이는 여사님이셨는데 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숙소를 예매할 때 주차장이 없는 걸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와서 바이크를 댈 데가 없다는 걸 도착해서야 알았다. 그런 우리를 안 좋게 보실 수도 있었을 텐데 '괜찮아 괜찮아. 여기 문 앞에 우리 cctv 있는데 여따 대면되겠네.' 하시면서 오히려 배려해 주셨다. 나갈 때에도 비 오기 전에 얼른 가라는 평범한 그 한마디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정말 고마웠다.  



보성에서 이미 따끔한 비맛을 본 터라 길을 더욱 재촉하였더니 경주에 오전 중에 도달하게 되었다.

전날, 내가 다음 적지는 경주라고 했을 때 남편은 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낯설어했다.

나>> 아무래도 서울이나 부산처럼 세계적으로 이미 유명한 곳들보단 생소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골 수학여행지라구. 나도 여기로 수학여행을 왔었는데..

붑커>> 아~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라 그랬나 보다.

나>> 그렇지!

아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는 경주가 가장 흔하면서도 인기가 없는 수학여행지였던 기억이 있다. 학교 밖에서까지 역사공부라니. 리는 바다나 계곡으로 가고 싶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 커서 이렇게 다시 와보니 경주만큼 우리나라 고유의 미내는 고장도 없다. 남편은 도시 초입부터 이미 경주와 사랑에 빠진 듯 보였다.

붑커>> 왜 여태 이런 곳을 몰랐지? 너무 예쁘다.


경주는 시 전체가 역사 유적이나 다름없다.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얘기도 들어본 것 같다. 전통 경관을 망치지 않기 위해 고층건물을 짓는 데도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타 도시들과 달리 눈앞을 가로막는 게 아무것도 없이 탁 트인 산과 들을 감상할 수 있어 정말 옛날로 시간이동을 한 것과 같은 착각도 든다.

전주 한옥마을을 좋아하는 남편이 이곳이라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번 여행 필수 코스로 넣은 곳인데,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경주는 스타벅스도, 편의점도, 주유소도 외관을 한옥으로 꾸며놓았다.


경주 황리단길


선덕여왕 때의 천문대인 첨성대(좌), 신라왕궁의 별궁이었던 동궁과 월지(우)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산책하다 마주친 풍경들


빌딩이 없으니 푸른 지평선 따라 솟은 나무들과, 산과 구름이 맞닿는 능선이 훤히 드러난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


고즈넉한 교촌 한옥마을의 야경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다는 월정교의 야경

남편은 월정교가 오늘 본 유적 중 가장 인상적이라며 오랫동안 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월정교는 목재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다듬고 칠해져, 름다우면서도 고하게 지어진 다리였다. 천년도 더 전의 유산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손기술이었다. 거의 모든 것이 기계화하여 철저히 효율 위주로 진행되는 오늘날 달리, 순전히 눈으로 계측하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재단하 쌓아 올렸을  고와 장인정신이 놀랍다.



문화유적이란 참 묘한 것이다. 과거의 조상들과 살고 있는 시간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 서서 같은 장소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으로 잠시 그들과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경주의 문화재 발굴 및 복원 작업은 2051년까지를 목표로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향후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모습 얼마나  가깝게 재현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여행 8일째. 90km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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