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 비위가 약한 분들을 위해. 약간의 더러움 주의.
모로코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 있다. 집 안에 한개, 옥탑에 한개.
그날은 온 식구가 바다에서 놀고 들어온 저녁이었다. 나는 슬리퍼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러 옥탑에 올라가 호스로 발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때 옥탑 화장실에서 '으악' 소리가 나더니 문을 열고 오마르(27세, 남편의 형제 중 막내)가 뛰쳐나왔다.
"변기가 막혔어!"
밖에서 샤워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오마르와 같이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확인했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엔 두 목소리가 '으악' 비명을 지른다.
두 남자는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와 변기를 뚫을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뚫어뻥이 있으면 금방일텐데 보이질 않았다.
내가 나설 차례인가.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페트병 하나를 집어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뚫어줄게."
두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막아섰다.
"아니야 아니야. 들어가지 마."
"너무 더러워요. 들어가지 마요!"
특히 오마르는 본인이 큰일을 본 직후에 변기가 막힌 터라 나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괜찮아. 이걸로 금방 해결할 수 있어."
내 손에 들린 페트병을 본 남편과 오마르는 '이걸로 뚫는다고?' 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칼만 하나 줘봐."
나는 작은 칼로 페트병의 중간지점을 잘라내고서 밑부분 절반을 가지고 화장실로 성큼 들어갔다.
용감히 들어가는 척 했지만 오마르가 하도 기겁을 하길래 얼마나 더럽길래 저러나 속으로 조금 걱정도 했다.
오만가지 똥의 형상을 상상하며, 최대한 냄새를 마시지 않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에이 뭐야.
상상만큼 더럽지 않았다. 똥은 동글동글 가지런히 변기구멍에 모여있었고 변기물도 밖으로 넘치지 않은 상태로 얌전히 변기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오마르 너, 이슬만 먹니?
여차하면 위생장갑을 껴야지 했는데 이정도면 맨손으로도 가능하겠다. 나는 두 사람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페트병을 변기구멍에 맞춰서 팍팍 수차례 압력을 가했다.
가득찼던 물이 꼬르륵 대며 서서히 내려갔다.
"이 정도면 됐겠어."
나는 두손에 똥물이 묻은 상태라 남편에게 물을 한번 내려달라고 했다.
콰르르르르르륵.
시원하게 물이 내려갔다.
"오오오오오!"
남편과 오마르는 구원자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옆에 계시던 엄마(시어머니)도 신기해 하시며 방법을 물어보셨다.
"페트병 안에 있는 공기의 압력으로 막힌 변기구멍을 밀어서 뚫어주면 돼요."
나는 비누로 싹싹 손을 씻어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후훗. 어느날 변기가 막혔을 때 유튜브에서 봐두었던 지식을 이렇게 써먹는구나.
붑커>> 질투나. 내 똥보다 오마르 똥을 먼저 만지다니.
그러네. 어쩌다 보니 시동생의 똥에 손을 대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 나였다.
남편은 온 식구들에게 내가 옥탑 화장실 변기를 뚫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똥 하나로 그날 저녁에만 몇번의 칭찬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댁에서 똥박사가 되었다.
며칠 후. 오마르는 직장이 있는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와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조카 일리야스가 오마르에게 키득키득 웃으며 슬쩍 물었다.
"삼촌, 그날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어땠어요?"
그말에 우리는 그날의 잊지못할 기억이 떠올라 또 한바탕 웃었다.
나>> 오마르. 혹시 프랑스에서 변기 막히면 연락해요. 출장 서비스 갈게요.
오마르>> 으악 하하하. 아니예요. 이제 제가 뚫을 수 있어요.
잠깐. 그날 변기는 정말 오마르 때문에 막혔을까?
"이모. 사실 제가 새벽에 똥 쌌는데 그때부터 물이 안 내려가더라구요. 쉿. 이거 비밀이에요."
변기가 막힌 사실을 오마르가 발견한 바로 그때, 조카들 중 한명이 나에게 다가와 소근소근 귓속말로 한 이야기다.
비밀로 해달라고 했기에 여기서도 익명으로 하겠다.
불쌍한 오마르.
범인은 따로 있었다.
다들 오마르 때문에 막힌 줄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