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려서부터 쇼핑이 싫었다.
뭔가를 고르는 것도 두근대기보다는 귀찮은 일이었고, 옷 몇벌 사려고 몇시간을 서서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피곤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해서 뭘 사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하루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나오엘 언니를 따라서 끄사리야(전통시장)에 따라가게 되었다. 집근처 끄사리야도 아니고 카사블랑카에 있는 크디큰 끄사리야로 갔다. 그곳에 가야 다양한 선택지를 저렴한 가격에 고를 수 있어서였다.
오늘 사야할 것은 '시데리'를 장식하는 커버이다.
'시데리'는 모로코식 응접실에 빠질 수 없는 디귿자 구조의 소파와 쿠션들을 말한다.
집안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발을 들이는 공간이 응접실이라, 얼마나 화려하게 시데리를 꾸미는지가 모로코 여성들에게는 큰 관심사 중 하나요, 자랑거리이다.
전형적 시데리의 모습(사진의 장소는 시댁이 아니다)
수년 째 같은 디자인의 시데리 커버를 사용중이신 엄마(시어머니)는 간만에 산뜻하게 커버를 교체하고 싶어 하셨다. 기존의 붉은색에 꽃그림이 수놓인 커버는 장농 안에 넣어두고 이번엔 다른색에 새로운 질감의 커버를 골라보기로 했다.
카사블랑카의 끄사리야에는 수십, 아니 어쩌면 백군데도 넘는 시데리 커버 가게들이 있었다. 엄마와 나오엘 언니는 미세한 차이까지 꼼꼼히 따져가며 가게마다 비교를 하고 다니시던 반면, 나와 남편은 초장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 세번째 가게에서부터는 "괜찮은 거 아무거나 고르면 안되나. 여자들은 정말 복잡해.."라며 뒤에서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나도 처음엔 '이건 어때요?', '이건 좀 별로네요.'하며 같이 고민을 하다가, 뒤로 갈수록 "이것도 예쁜 것 같아요.", "이제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네!"하며 엄마가 빨리 고르시도록 은근히 유도(?)를 했다.
몇군데 더 발품을 팔고 나서 엄마는 드디어 아래의 것으로 마음을 정하셨다.
밝은 색감에 광택이 나는 천을 사용하여 화사한 느낌을 주는 커버 은은한 하늘빛을 띠는 커버라 집에 있는 붉은 톤의 시데리와 대조되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에 제격이었다.
커버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나와 남편은 '마침내 끝났다!'는 생각에 박수치며 환호했다. 주문과 에누리까지 마무리된 후 나는 아이처럼 찡찡대기 싫어 꾹 참았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냈다.
"엄마 배고파용! 밥 먹으러가용."
우리는 시장 안에 생선튀김을 파는 로컬맛집에서 일인당 모듬튀김 한접시씩 테이블이 가득하게 시켜서 푸짐한 점심식사를 했다. 좀 귀찮았어도 역시 따라오길 잘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 보이셨으니 그걸로 우리도 대만족이었다. 나와 남편은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없어 이해가 잘 되진 않지만, 모로코 여인들의 주요 행사라고도 할 수 있는 시데리 커버 고르기에 살짝궁 동참해 본 날이었다.
잘 꾸민 시데리에 손님을 앉히고 고급진 찻잔과 그릇으로 식탁을 차려 대접하는 일은 모로코 여성들의 자부심 중 하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