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Sep 25. 2024

라바트, 카사블랑카 나들이

오랜만에 가족들과 조금 멀리 외출을 했다. 엘자디다에서 수도인 라바트까지는 차로 3시간이 걸린다. 마침 남편이 비자 문제로 라바트 하이리야드(대사관이 줄지어 있는 구역)에 볼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다같이 놀러 나왔다.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는 카사블랑카일지라도 가장 끔한 도시를 꼽으라면 역시 수도인 라바트일 것이다. 모든 건물이 번듯하고 세련됐다. 왕이 사는 곳이라 경찰과 군인이 가장 많이 배치되어 안전하게 유지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반면 라바트와 강 하나만 사이에 둔 살레라는 도시는 바로 옆동네인데도 직 오래된 건물들도 많고 치안이 썩 좋지는 못하다.

살레 시장 근처의 어느 오래된 집


하산탑

라바트의 하산탑에 가면 탑 앞에 수많은 기둥들이 서 있는 장소가 있다. 이은 예전에 커다란 모스크를 지으려다 도중에 지진으로 무너진 뒤 미완성된 곳으로 지금은 기둥만 남아 있고 작게 지은 모스크가 그 에 있다. 다수의 신자들이 모일 때는 바깥의 기둥들 사이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아단이 울려 퍼지는 탑이 되었을 하산탑 꼭대기까지 세워지지 못한 채이긴 하지만 은 사람들이 걸음하는 명소로 남아있다.

하산탑 앞의 기둥들


하산탑 앞의 모스크 안에서. 기도를 하러 들어갈 땐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야신의 뒤로 모로코 왕실의 묘가 보인다.


하산탑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


말과도 말이 통하는 야신


다음으로는 레일라 언니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왕궁을 방문하였다. 궁 입구에는 군인들과 경찰들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다. 방문객은 여권을 제출하고서야 출입이 가능한데, 내국인에게는 이것마저 어렵다.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 국적의 나와 스페인 국적의 레일라 언니네 아이들이 동행했던 덕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모로코 국민들끼리만 방문을 요청하면 출입을 거부당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왕궁은 굉장히 넓어 차가 없이는 돌아다니기 어려워 보였다. 들어가는 길에는 여러 건물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데 그 중 군인들이 머무는 건물만 수 채가 되었다. 왕실 근위대는 하나로 통합된 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군대로 나뉘어 있다. 하나의 군대로만 결성된 근위대는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여러 팀으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모스크도 하나 서 있었다. 왕실 전용 모스크인데 그 크기가 엘자디다의 모스크보다도 커 보였다.

이런 왕궁은 비단 라바트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모로코의 큰 도시마다 있어 왕이 각 도시를 방문할 때 쉬어갈 수 있. 심지어 프랑스 파리 근처에도 모로코 왕의 궁전이 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내 전용 별장이 있는 삶을 상상해 본다. 평민들에겐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모로코의 왕은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다.


레일라 언니는 몇년 전 왕궁에 왔다가 입장을 거부당했는데, 이번에는 외국인인 내 덕분에 잘 들어갈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셨다. 사실 스페인 국적의 아이들만 같이 왔더라도 입장할 수 있었을테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외국인처럼 생긴 내가 있어서 좀더 도움이 됐으려나?

안으로 들어가려 다가가니 근위병이 호루라기를 불며 제지했다. 저 안에는 왕이 지내고 있어 보안상 출입이 불가능한 모양이다.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로 이동하니 해질녘이었다. 차를 세우고 산 2세 모스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스와 야신에게 '이곳이 붑커 삼촌이랑 이모가 처음 만난 곳이야'했더니 "오와웅~~"하면서 괜히 자기들이 부끄러워 한다.

한낮보다 저무는 햇빛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하산 2세 모스크


하산 2세 모스크는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만큼 지어지는 데에 적지 않은 자본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모스크는 국민들이 조금씩 모금을 한 돈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상관없이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아야 했기에, 모금이라기 보다는 국민들의 고혈로 지어진 모스크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산 2세 모스크는 인부들의 희생 위에 지어진 것이기도 하다. 시아버지는 이 모스크가 지어질 당시 건설 장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두명의 인부가 작업 도중 떨어져 사망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처치 없이 아무렇지 않게 작업은 다시 진행되었고, 그날부로 시아버지께선 일을 그만 두셨다고 들었다.

상아색과 옥색이 조화를 이루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산 2세 모스크는 카사블랑카의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지어지는 과정에서 비극적인 일도 있었고, 그 때문에 이곳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니 그것으로 조금은 위로가 되려나. 글쎄 잘 모르겠다.

한밤의 어둠 속에서 별처럼 환한 빛을 내뿜는 눈부신 모스크의 자태가 오늘따라 조금 슬퍼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