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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Dec 17. 2024

멕시코인들은 헤비메탈 음악에도 춤을 춘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비행기 날개 아래의 몽실몽실한 솜구름을 붉게 물들인 일출과 함께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쿠바의 더위에 적응됐던 몸이 공항 출구를 나서자 파고드는 차가운 아침공기에 부르르 진저리 치며 닭살을 돋운다.

"어우.. 멕시코시티가 이렇게 추운 줄 몰랐네."

"그러니까 말야. 얼른 집에 들어가자."

 멕시코시티에서 우리가 지내게 될 집은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이반'이라는 친구의 집이다.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했지만, 너무 중심지와 가까운 곳은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안전 면에서 이반의 집은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소칼로 광장에 휘날리는 커다란 국기. 소칼로 광장은 중국의 천안문 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광장이라고 한다.


멕시코시티 번화가


멕시코 땅의 원주민을 표현한 벽화


멕시코 원주민 중 하나인 아즈텍의 복장을 하고 기도의식 같은 걸 하고 있는 사람들


  중남미 어디를 가든 변함없는 점 하나는 아침 눈 뜨자마자부터 늦은 밤이 되도록 거리에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바뀐 게 하나 있다면 멕시코에서는 음악풍이 확 달라진다. 쿵짜작 쿵짜작하는 리듬이 브라질의 삼바 쿠바서 주로 들렸던 살사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반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쿵짜작 쿵짜작 음악을 들으면서 가다 보니 나중엔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리듬과 멜로디였다.


 이반은 오늘 저녁 카우치서핑 모임이 있다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동네의 카우치서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이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 자리였다. 절할 이유가 없었다. 음 가보는 모임이라 궁금하고 설렜다.


 모임은 저녁 8시 즈음 도심의 작은 바에서 시작되었다. 멕시코 현지인 친구들도 있었고, 베네수엘라, 캐나다, 대만, 스페인 등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멕시코인 친구는 부모님이 한분은 멕시코인, 한분은 한국인이셔서 외모가 아시아인과도 비슷했고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다. 현재는 멕시코에 시 와 있지만 무려 15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약 없는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인 분들도 두 분 만났는데 한분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수년째 일하면서 살고 계시고, 다른 한분은 우리처럼 여행을 왔다고 하셨다. 행 오셨다는 분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셔서 깜짝 놀랐다. 유튜브로만 잠깐 공부하고 왔다고 하시던데 단기간에 그만큼 준비를 하고 오다니 대단했다. 나는 아까 멕시코 친구들이 할 줄 아는 스페인말 있냐고 물어보길래,

"응! 올라 아미고, 꼬모 에스따스(안녕 친구, 잘 지내?)!"

하고 자신 있게 딱 세 마디만 던졌었는데.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나도 공부 좀 하고 올걸.

 그렇지만 언어가 달라도 친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거기다 취기가 조금씩 오르니 다들 대담해져서 서로 더 빠르게 친근해지고 있었다. 병 두 병 마시던 테이블 한쪽에 맥주가 무더기로 쌓여갔다. 나는 '마르게리따'라는 술을 시켜 보았다. 킬라를 베이스로 하였으나 이 음료 저 음료를 섞어서 독하지 않은 술이었다. 망고맛의 셰이크가 위에 올라가 있고 잔의 가장자리에는 멕시코인들이 즐겨 먹는 매콤한 양념을 묻혀서 서빙해 준다. 멕시코 사람들은 술이든 아이스크림이든 사탕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양념을 곁들여 먹는다. 술에 양념이라니! 마시기 전엔 이 무슨 요상한 조합인가 했지만 입을 대고 한입 마셔보니 매콤 새콤한 맛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얘들아~~ 우리 2차 갈까?!"

 이상한 일이다. 평소 같으면 나는 이런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모임에 나가더라도 기가 잔뜩 빨려 얼른 집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성향인데. 남편도 파티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성격이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지치질 않았다.

"그래~~ 가자~~!"

그렇게 2차 장소인 클럽으로 다 같이 이동했다. 내 인생 처음, 또한 남편 인생에서도 처음인 클럽행이었다.

망고맛 마르게리따


 클럽의 이름은 미키마우스를 테마로 했다고 하여 '미키'였다. 가기 전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정신없고 선정적인 클럽이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도 됐는데, 이곳은 매우 건전하게 춤만 추는 곳이라 다행이었다. 이것이 카우치서핑 모임의 장점이기도 하다. 다 같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떨어지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를 챙겨주니 처음 오는 여행자도 현지인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현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나와 남편은 클럽이 처음이었지만, 우리가 또 춤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모로코와 대한민국 출신 아니겠는가. 그동안 추던 가락으로 열심히 놀다 보니 정을 넘기는 건 금방이었다.

"위험하기로 손에 꼽히는 멕시코시티에서 새벽까지 놀게 될 줄이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되도록 일몰 전에 가할 생각이었건만, 정신 차려보니 새벽 2시에 클럽이다. 그것도 처음 클럽에 와본 날인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 그대로였다. 국 모두들 클럽이 문을 닫을 때까지 놀았다. 집에 갈 때쯤엔 새벽 3시가 넘어 있었고 이반은 거나하게 취해서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반 어디 갔어?!"

놀라서 연락을 해보니 다행히 집에 무사히 들어갔다고 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우리랑 같이 들어가기로 한 것도 잊고 혼자 택시를 타고 간 것이다. 연신 미안해하는 이반이었지만 우린 그저 그가 어디 길에서 자고 있을까 봐 걱정했던 거라 '네가 무사한 이상 다 괜찮다'라고 독였다.

(재밌게 노는 건 좋지만 과도한 음주는 금!)


점점 달아오르는 춤파티. 우측 하단에 신난 소울이.


 다음날, 이반은 숙취가 심했을 텐데도 아침 7시부터 출근채비를 하고 나갔다. 주말에 잔뜩 마시고도 월요일에 멀쩡하게 출근하는 건 한국인들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만 멕시코인도 만만치 않게 강철체력이다..

 이반과 같이 놀면 좋았겠지만 주중이라 하는 수 없이 우리끼리 멕시코시티 중심가로 나갔다.

 멕시코시티엔 우리나라의 별마당 도서관처럼 독특한 내부 설계로 시선을 사로잡는 도서관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층에 걸쳐 위아래로 빼곡히 채워진 책들 사이에서 마치 거인의 책장에 들어온 난쟁이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굉장히 깨끗하게 관리되며 열람공간도 충분하고 휴식공간도 넉넉해, 만일 멕시코시티에 산다면 매일 와서 하루 종일 책 보고 잠시 엎드려 낮잠도 자고 매점에서 간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는 장소였다.

바로 이곳


도서관 내부

 도서관에서 메인 거리까지는 거리가 좀 있지만 도시 구경도 하면서 살살 걸어가기로 했다. 요즘 거의 매일을 이만보 가까이 걷고 있다. 오늘도 벌써 만보는 넘게 걸었나 보다. 슬슬 출출하던 차에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식, 타코스를 파는 노점이 보인다. 냄새에 이끌려 치킨 타코스를 하나 시켰다. 납작하고 동그란 빵 위에 치킨과 고수, 양파를 올려서 주면 그 위에 취향껏 살사(중남미에서, 특히 멕시코에서 요리에 거의 빠짐없이 곁들여 먹는 매콤한 소스)를 뿌려 반달 모양으로 접어 먹는다. 빵의 맛은 과자 나쵸와 비슷하고 고수의 향긋함과 양파의 알싸함이 닭고기에 잘 어울리며 그 틈에 살사의 톡 쏘는 매콤함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중심가인 레포르마 거리


망고맛 아이스크림. 오른쪽의 갈색 빨대는 양념이 묻은 빨대로 아이스크림을 빨아들일 때 양념을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멕시코만의 특이한 식문화이다.


 어제 카우치서핑 모임에서도 한번 경험했지만, 멕시코인들의 가무 본능은 정말이지 엄청나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 음악을 틀어주어도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며 두둠칫 두둠칫 박자를 탈 것이다. 규칙도 없고 딱히 장르도 없지만 멋만은 확실히 있는 '폼나는 막춤'을 그 언제라도 출 수 있는 진정한 춤꾼들. 그들이 바로 멕시코인들이다.

 버스커들의 공연 현장에서도 춤은 멈추지 않는다. 한 곳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몸 가는 대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기에 가까이 다가가니 어느 락밴드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밴드의 장르는 메탈, 연주되는 음악은 메탈리카의 대표곡 중 하나인 Seek and destroy. 세상에 난 이후로 메탈 음악에 맞추어 헤드뱅잉이나 슬램을 하는 관객들은 보았어도 춤을 추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기타 솔로가 시작되자 춤사위는 더욱 격해진다.

 멕시칸. 그들의 혈관 안에는 춤을 추기 위해 타고난 짙은 울이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심지어 연령대도 조금 있는 어른들이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계신다. 대체 어떤 음악이 흘러 나오길래..?


..하고 보았더니 강렬한 일렉기타 사운드의 메탈 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시민들의 멋진 춤과 함께 멕시코시티는 거리 곳곳에 볼거리가 넘친다. 다양한 전통의상, 때론 화려하고 때론 노련하게 춤추는 댄서들, 감정을 손끝에 듬뿍 담아 악기로 풀어내는 음악가의 이야기들.. 멕시코는 아마 세상에서 예술이 풍부한 것으로 따지면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신혼부부의 결혼식 행진을 장식하는 음악대의 연주


두 마리의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커플 댄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탭댄스


연주자의 환희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아름다운 첼로 선율


 그렇게 수준급의 거리 공연을 걷다 멈춰 서다 하면서 하나하나 감상하다 보면 금방 해가 진다. 밤이 찾아온 광장을 조금 더 걷다가 우리는 이반과의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오늘 저녁에는 이반이 우리를 특별한 공연에 초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전통 음악과 춤을 볼 수 있는, 외국인으로서 최고의 관심사가 될만한 공연이었다. 과연 어떤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화에 계속.


소칼로 광장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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