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카우치서핑은 소니아와 함께 해서 더 특별했다. 첫 만남에 그녀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을 하던 중이었다. 활기 가득한 목소리와 시원시원한 미소가 우리에게까지 그 에너지를 나눠주는 듯했다.
"오늘 밤에 시에서 주최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같이 갈래? 내 친구들도 놀러 올 거야."
"그래 같이 가자!"
남미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이젠 정말 대답을 못하겠다. 헤비메탈 밴드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던 멕시코 사람들, 걸음마를 떼자마자 홈스쿨링으로 춤부터 배우는 콜롬비아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 아르헨티나에도 그 못지않은 춤꾼들이 가득했으니! 아무렇게나 막 추는 것 같은데도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막 흔들고 싶어지는 춤사위에, 표정까지 얼마나 다양한지 얼굴 근육으로도 춤을 추는 것 같은 아르헨티나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져 추는 군무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축제의 장을 꽉 채웠다.
축제의 한편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북을 매달고 또 다른 공연을 준비 중이다. 곧 지휘자의 장단에 맞추어 수십 개의 북이 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다양한 패턴으로 느려졌다 빨라지기를 반복하며 변형시켜 가는 리듬이 우리나라의 사물놀이와 난타를 연상케 했다. 관람객들은 북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지휘자는 공연만 이끄는 게 아니라 관람객들까지 그녀의 리듬 속에 동화시켜 버린다. 나중엔 누가 연주자이고 누가 구경꾼인지도 모르게 뒤섞여 모두가 같이 공연을 왼성시켰다.
한쪽에선 간식과 주류도 판매하고 있다. 사람들은 술병을 부딪히는 와중에도 들썩이며 춤을 이어간다. 보통 모두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면서 슬슬 분위기가 고조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벌써 한바탕 놀고서 목 좀 축이고 더 놀려고 물 대신 술을 마시는 느낌이다. 술보다 사람들이 더 강렬한 나머지 사람이 술에 취하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에 취하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소니아와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축제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역시 노는 데에 한계가 없는 남미 사람들 다웠다.
"으으으.."
다음날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끼긱대는 관절을 펴며 기지개를 켰다. 주말이라 우리 셋 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전날에 마신 술은 얼마 되지 않는데 온몸을 흔들어 재껴서인지 마치 고강도 운동을 한 다음날처럼 몸 구석구석이 쑤셨다.
우린 부스스 일어나 과일과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상을 차렸다. 소니아네 집에 오기 전 후후이의 루이스 할아버지 댁에서 배운 아침 상차림이었다.
"소니아, 먹어 봐. 후후이에서 배워 온 아침식사야."
할아버진 매일 아침 이렇게 과일을 잘게 썰어서 우유에 시리얼과 함께 말아 드시곤 했는데, 맛도 좋고 상큼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 맘에 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드셨냐고 여쭤보았더니 언젠가 할아버지댁에 왔었던 어느 스웨덴 여행자가 알려준 아침식사법이라고 하셨다. 스웨덴에서 후후이로 전해진 아침상이 이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차려져 있다.
"오늘 우리 어디갈까?"
소니아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으음.. 산 텔모 시장 어때? 일요일에 열린다는데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잖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검색하던 중 보았던 일요 시장이 떠올라서 제안해 보았다.
"오, 산 텔모 시장 좋지.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목적지가 정해졌고 각자 나갈 채비를 했다. 나와 남편은 옷 입고 돈만 챙겼는데 소니아는 주섬주섬 뭔가를 만들고 있다.
소니아가 만든 건 찻잎에 향긋한 꽃잎과 강황 등의 향신료를 조금씩 더해 만든 마테차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테차란 바늘 가는 데 항상 따라가는 실처럼 떼놓을 수 없는 동반자이다. 페루 마추픽추에서 쉼터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마테차를 마시던 한 여행자를 만났던 게 생각난다. 그녀의 앞에 놓인 보온병과 구암빠(마테차 전용 컵)만 보고서 물어보지 않고도 아르헨티나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죽과 털실로 멋지게 장식된 구암빠에 한컵 가득 차를 따라 우리에게 건네주던 그녀 역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욌다고 했었다.
소니아가 만든 건 찻잎에 차가운 물을 부어서 만든 '테레레'라는 차로, 더운 날씨에도 마테차를 포기할 수 없기에 뜨거운 물 대신 찬물로 우려 마시는 파라과이식 마테차라고 했다. 오늘처럼 맑은 여름 날에 제격이다. 그렇게 한손에는 차가 담긴 소니아의 보온병을, 다른 한손에는 구암빠를 들고서 아르헨티나 사람 흉내를 내며 집을 나섰다.
산 텔모 시장엔 각종 수제 공예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악세사리, 옷, 칼, 구암빠, 머리끈, 그림액자 등등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종류도 다양하다. 수공예품인데도 가격이 비싸지 않은 편이라 구매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구경하던 중 심플하면서도 시선을 끄는 디자인의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저 티셔츠 봐봐. 귀엽다."
"아~ 저 그림은 아르헨티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야."
"아, 정말? 아르헨티나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있었구나."
"응, 1970년대였지 아마."
군부독재 시절 정부에 맞서 싸우다 잡혀가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죽어간 자식들을 애도하고 또한 이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머릿수건을 두른 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광장에 나와 모여섰다. 그분들이 서 계셨던 장소가 바로 '오월 광장'이며, 머릿수건 그림은 지금까지도 시민들의 삶 구석구석에 장식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날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오월 광장을 걸으며 우리나라의 광주 민주화 운동이 떠오르기도 했다. 군부의 계엄과 탄압속에 가두어져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시민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면서도,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사건이기도 하다. 소니아와 우린 각자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오월 광장을 걸었다. 이때만 해도 11월이라 12.3 계엄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 뒤 뉴스를 통해 우리나라에 또다시 계엄내란사태가 터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과거에 바로 잡았다고 해서 그 과오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는 걸 체감했다. 그렇기에 항상 우리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가 밟아온 길을 되새기며 언제 어디서 탈선할지 모르는 민주주의라는 열차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더라도 끊임없이 그 길을 닦아야 함을 깨달았다.
"오.. 저건, 참.. 인상적이네."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마주한 한 광경에 우린 동시에 멈춰섰다. 어느 커플의 탱고 공연이었다. 여성 댄서의 두 다리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파트너와 함께 움직이는 그녀의 춤은 마치 다리 대신 날개를 단 새와 같았다.
탱고라 하면 스페인의 정열 넘치고 힘있는 춤을 떠올리곤 했는데,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탱고에 대한 관념을 부수었다. 우수에 찬 멜로디에 맞춰 추는 부드럽고 절제된 동작은 춤을 추는 두 사람이 마치 실제로 비극적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도 된 듯 상상하게 만든다.
오래 걸었더니 배가 고파온다. 번화가의 먹자골목에 들어가면 빵과 생과일주스 같이 간단한 먹거리부터 고기구이까지 많은 선택지가 있다. 커피숍도 있어서 식사와 커피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린 엠빠나다를 먹기로 했다. 엠빠나다는 만두처럼 생긴 빵 안에 고기나 야채나 치즈 등 여러 재료를 넣어 구워낸 빵이다. 소니아는 소고기, 남편은 양파치즈, 나는 고르곤졸라 치즈 엠빠나다를 시켜 나눠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양파치즈가 달콤짭짤 고소한 것이 내 취향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지겹도록 먹게 되는 것이 엠빠나다이지만 맛있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가서 먹어보면 보통의 엠빠나다와 그 차이가 꽤 크니, 이왕이면 줄 서서 먹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하루를 늦게 시작해서인지 금방 해가 졌다. 우린 서둘러서 소니아의 집 근처로 차를 몰고 돌아갔다. 저녁에 소니아네 동네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이냐면, 어제 축제에 갔다가 소니아의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친구의 여자친구분이 탱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고 하였다.
"마침 내일 여자친구가 공연을 하거든요. 시간이 되면 보시러 오세요."
우리가 탱고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걸 어찌알고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약속을 잡은 것이다.
공연은 The patriotas 라는 레스토랑 겸 바를 빌려 진행되었다. 소니아의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도 보였다. 우린 인사를 하고 마실 것을 주문한 다음 음악을 감상했다. 무대는 가사가 없는 탱고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무대 중반쯤이 되자 드디어 우리의 가수가 등장했다. 무대 아래에서 수수한 차림으로 인사를 주고 받을 때와 180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는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우와.."
탱고에 가사가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 곡절이 이토록 애절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엇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였지만 그 감정만큼은 또렷하게 전달되는 것 또한 신기했다. 그만큼 가수의 호소력이 뛰어났다는 뜻일 거다.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보냈다. 소니아와 그 친구를 만난 덕에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
짧지만 알찼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소니아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우리는 오늘 또 늦잠을 잤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한다. 오늘은 바로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날이다. 소니아와는 어젯밤에 미리 작별인사를 했지만 가기 직전에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다. 하루이틀만에 정이 들었는데.
인사를 대신하여 소니아가 퇴근하고 먹을 저녁밥을 만들어 두고 나왔다. 당근과 양파를 잘게 썰고 다진 소고기를 넣은 볶음밥이었다. 소니아는 독일인의 피가 흐르는 아르헨티나인인데도 동양의 향신료가 취향인 입맛을 갖고 있었기에 그에 맞추어 마무리로 참기름도 한숟갈 둘러주었다. 다된 볶음밥 위에는 울퉁불퉁 못나게 부쳐진 계란지단을 덮어서 완성시켰다.
다음 이야기는 파타고니아에서 이어서 풀어보겠다.